1970년대는 이소룡의 시대였다. 외팔이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왕우의 뒤를 잇는 초대형 액션스타의 탄생이었다. 그는 외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결기가 넘치는 무술연기와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기합소리를 융합하여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후 청룽, 홍금보, 이연걸, 견자단이 등장하여 무술영화의 계보를 이어간다.
이소룡의 최고작으로 알려진 <용쟁호투>는 무술대회를 가장한 마약왕과의 사투를 벌인 작품이다. 이미 <당산대형>과 <정무문>에서 시나리오, 무술지도, 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이소룡은 <용쟁호투>에서도 무술지도를 담당한다. 영화에는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하는데 실제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약왕 한(석견 역)은 800편이 넘는 액션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다. 후일담에 의하면 영화제작진이 만장일치로 찬성한 유리방 결투신을 이소룡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용쟁호투>를 전세계에 알리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필자는 이소룡이 사정없이 쌍절곤을 휘두르는 <정무문>과 장신의 압둘 자바와 결투를 벌이는 <사망유희> 모두를 좋아한다. 아쉽게도 <당산대형>과 <맹룡과강>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용쟁호투>는 제작과정에서 벌어진 우여곡절과 달리 완성도 면에서 언급한 4개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작품이다.
여기에 영화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포스터 왼편에 등장하는 라로 슈프린은 1960년대 첩보드라마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음악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이후 수십 편에 달하는 영화음악을 완성했는데 <용쟁호투>에서도 인상적인 OST를 들려준다. [Theme from Enter the Dragon (Main Title)]에 등장하는 기합소리는 라로 슈프린의 전성기가 여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라로 슈프린의 음반으로는 CTI에서 발매한 ((Towering Toccata))와 Pablo에서 발매한 ((Free Ride))를 추천한다. ((Towering Toccata))에서는 스티브 겟, 랄프 맥도날드, 어비 그린, 에릭 게일이 세션으로 참여한다.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완성한 ((Free Ride))는 어니 와츠, 리릿나워, 와 와 왓슨 등이 사운드를 빛내준다.
이소룡은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무술보다도 더 소중한 건 창조적인 인간이라고. 그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망 직전에 겪은 건망증과 육체적 고통은 불세출의 승부사였던 이소룡에게 닥친 먹구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용쟁호투>에서 보여준 장면들은 배우이자 무도인을 초월한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승부보다 소중한 것.
이는 <용쟁호투>의 시작과 끝을 장악해버린 영춘권 후계자의 눈빛이 아닐까.
이소룡은 5편의 후속 영화계약을 마친 상태로 1973년 여름에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