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rdon Haskell 고든 해스켈
It Is And It Isn’t (1971년)
지구에는 고수가 산다. 먹는 고수 말고 특정 분야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 말이다. 당연히 음악감상에도 고수가 존재한다. 문제는 고수판별법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상대방의 내공을 인정해주는 고수도, 대결을 원하는 고수도 존재한다. 다음은 필자가 정리해본 음악고수백서다.
1번 타자는 ‘자뻑형 고수’다. 묻지도 않았는데 “음악은 내가 제일 잘 알거든”을 남발하는 사람이다. 고수의 반열에 올려놓기가 곤란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20대에 들었던 음악으로 자신을 고수의 반열에 올려놓고 모르는 음악은 무조건 시시하다고 우긴다. 몰라도 아는 척, 알면 더 아는 척. 일종의 ‘나홀로 고수’다.
‘칩거형 고수’도 있다. 말을 섞다 보면 내공이 엄청난데 도무지 속내를 노출하지 않는다. 당연히 음악편식증세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나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초절정 고수가 이에 속한다. 익을수록 알아서 고개를 숙여주니 자연스럽게 경외감이 증폭한다. 이런 분들, 언제나 환영이다.
‘수집형 고수’는 어떤가. 일단 보이는 대로 음반을 사들인다. 지갑의 두께가 영향을 끼치겠지만 좋다는 음반은 카드론을 받더라도 일단 지르고 본다. 사재기한 음반을 그대로 보관만 하는 일도 발생한다. 듣지 않는 판이 쌓여만 간다. 하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도 인터뷰에서 6만권의 장서를 소장했지만 이를 전부 읽지는 않았다고 했으니까.
‘장르형 고수’도 떠오른다. 수십 년간 특정 장르의 음악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일편단심형 고수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수의 기품이 넘쳐흐른다. 내공으로 따지면 상급에 속하지만 장르의 편식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어쩌랴. 음악 감상이야말로 개인의 즐거움이 우선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만나거나 SNS에서 소통하는 음악고수를 세어 보았다. 대충 계산해도 100명이 넘더라. 여기에 소문으로만 듣던 고수에 은둔고수까지 합치면 수백 명은 족히 될 테다. 어쩌면 이들이 한국인의 음악취향에 크던 작던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필자 역시 중학교 시절 소위 고수라 불리던 친구한테 음악적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늦었지만 녀석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소개하는 고든 해스켈은 숨이 멎을 듯한 비강사운드가 필살기다. 그래서인지 그는 1집 솔로음반 를 발표한 이듬해인 1970년에 슈퍼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에 합류한다. 킹 크림슨의 명반 ((In The Wake Of Poseidon))과 [Lizard]의 보컬이 바로 고든 해스켈이다.
그의 초반기 솔로음반 2장을 꼽으라면 ((Sail In My Boat))와 소개하는 ((It Is And It Isn’t))가 먼저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고든 해스켈의 경우 ((It Is And It Isn’t))가 먼저 발매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Sail In My Boat))가 다듬어진 후속작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리라.
고든 해스켈은 21세기에도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간다. 2002년작 ((Harry’s Bar))에서는 재즈가수로 변신한 그를 만날 수 있다. 스타일이 변해도 변함없이 팬심을 불살라주는 음악가가 바로 고든 해스켈이다. 런던의 후미진 펍에서 필자의 추천곡 [Could Be]를 부르는 내성적인 음악고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