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8일, 칼라 블레이가 머나먼 길로 떠났다. 음악 감상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장르에 관한 고정관념이다. 이는 모든 음악이 장르 구분 짓기가 가능하다는 관념을 의미한다. 칼라 블레이에게는 이런 분류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어떤 음악평론가는 그가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지식의 전수를 이유로 자유의지와 상상력을 응고시켜버리는 단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음악에서 재즈로 전향한 그는 뉴욕의 재즈클럽에서 담배를 팔면서 음악인생을 꿈꾼다.
칼라 블레이는 버드랜드 재즈클럽에서 폴 블레이와 조우한다. 10대 시절부터 칼라 블레이는 재즈에 빠져든다. 그는 1959년에는 피아니스트 폴 블레이와 결혼한다. 뉴욕에서 웨스트코스트로 이주한 그들은 아방가르드 재즈에 심취한다. 당시 교류했던 재즈맨이 색서퍼니스트 오넷 콜맨,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트렘페터 돈 체리다. 이들과 음반 작업을 하면서 칼라 블레이는 ‘컨템퍼러리 키보드’라는 별칭을 얻는다. 그의 음악 인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64년부터는 작곡가로 활동하며 마이클 맨러와 함께 오케스트라 활동을 펼친다.
칼라 블레이의 두 번째 배우자는 작곡가 겸 트럼페터 마이클 맨틀러였다. 1973년에 자신의 독립 음반 레이블 Watt를 만든 그는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과 함께 연주활동을 이어간다. 1975년에는 전설적인 록 밴드 크림의 베이시스트였던 잭 브루스와 밴드와 유럽투어를 함께 한다.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라는 영역을 거친 그는 1977년 칼라 블레이 밴드를 창설한다. 이때부터 칼라 블레이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한다. Watt 레이블 이후에는 ECM 레이블에서 음반을 출시한다.
1987년에는 명반 [Sextet]이 등장한다. 필자가 제일 먼저 접했던 칼라 블레이의 음반은 라이선스로 나왔던 [Social Studies]였다. 재즈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사운드를 접했던 당시의 놀라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Sextet]은 1980년대 발표 음반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수록곡 ‘Lawns’에서 보여주는 피아니즘은 장르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연주 미학을 보여주는 징표다. 원곡에서 실제 연주자는 밴드 멤버였던 래리 윌리스였다. 칼라 블레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갈기머리를 흔들며 ‘Lawns’를 연주하는 공연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칼라 블레이는 2018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서 앵콜로 이 곡을 연주한다. 그의 세 번째 피앙새는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였다. 3명의 배우자 모두가 음악가였던 셈이다.
칼라 블레이 트리오는 마지막 앨범 [Life Goes On]을 발표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트리오가 펼치는 연주는 매번 다르다고 말한다. 그날의 식사, 기분, 순간적인 상황에 따라서 같은 곡일지라도 색다른 사운드가 펼쳐진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재즈의 매력이자 정체성이다. 칼라 블레이는 2018년 뇌종양 수술을 받는다. 그는 이후 절대음감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한다. 그럼에도 2020년에는 트리오 멤버인 스티비 스왈로우, 앤디 셰퍼드와 함께 [Life Goes On]을 발표한다. ECM에서 나온 칼라 블레이의 마지막 앨범이다. 피아노에 앉아 허공에 휘날리는 악보를 바라보는 음반 사진은 언제 보아도 매력적이다. 그는 2023년 지병으로 10월 18일 세상을 떠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