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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대 UNI-Q가 연 메타의 시대

케프 R3 Meta

R Series lifestyle R3Meta Walnut S3 SlateGrey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그저 소리가 나오는 정도의 스피커가 아닌 녹음 원본의 소리를 충실히 재생할 수 있는 하이 피델리티 사운드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커의 디자인에 주목해보자. 그저 박스형 인클로저에 유닛을 장착해놓은 간단한 디자인도 있지만 무척 기이한 모양을 한 디자인도 있다. 처음엔 소리도 소리지만 그저 멋있어 보이는 디자인의 스피커에 끌려 구입하기도 하고 그런 디자인이 그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인식되어 나만의 애장기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디자인은 단순히 멋있거나 예뻐 보이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다. 정확한 사운드를 내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흘린 피와 땀을 기반으로 디자이너가 이를 충실히 서포트하기 위해 고안해낸 모양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요즘 많이 듣고 있는 윌슨 오디오의 사샤는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로봇을 연상시켜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지만 알고 보면 진동이 가장 강한 베이스 우퍼를 별도의 캐비닛에 가두어 저역이 중, 고역을 훼손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고안된 설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sasha

한편 락포트 아트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사샤 또한 전면 배플이 뒤로 기울어져 경사가 있다. 이는 진동, 즉 소리의 출발점인 진동판과 청취자의 귀까지 거리를 일치시키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모두 개발자가 철저히 계산 하에 설계해 디자인된 것이다. 바워스 앤 윌킨스 같은 경우 그 둥그런 터빈헤드가 우주인을 연상시켜 사람들이 좋아한다. 단순히 그런 흥미 요소를 위해 디자인된 것일까? 아니다. 사샤와 마찬가지로 베이스 우퍼의 진동으로부터 미드레인지를 보호하는 한편 배플 반사로 인한 회절을 억제하기 위한 설계에 바탕을 둔 디자인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그 유명한 말은 하이파이 오디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kef reference

케프

또 하나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케프의 디자인은 어떤가? 과거 BBC에 스피커를 납품하던 시절 케프는 상당히 보수적인 형태의 박스 타입 스피커를 만들어내면서 시작했다. 하지만 레이몬드 쿡은 이후 BBC 라이센스로부터 벗어나 독창적인 유닛을 개발했다. 그것은 트위터와 미드레인지를 하나의 축 안에 설계한 동축 드라이브 유닛이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베이스 우퍼를 별도의 캐비닛에 가두고 이 동축 드라이브 유닛을 분리해냈다. 마치 가상의 로봇처럼 생긴 이 케프 디자인의 대표 격으로 모델 105에서 107까지 이어지는 전설적인 명기들의 디자인이 생각난다.

이후 2천 년대 들어 만들어진 레퍼런스 라인업도 마찬가지다. 인클로저는 위에서 볼 때 둥글게 디자인되었다. 이는 내부 정재파를 줄여 노이즈를 낮추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여기에 더해 왜 상단에 둥근 헤드를 만들고 그 안에 동축 유닛을 장착했을까? 이는 바워스 앤 윌킨스가 의도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이유다. 여기에 더해 케프는 한 술 더 떠서 이 헤드 위에 조그만 슈퍼 트위터까지 탑재해 고역에 대한 갈증을 끝까지 해소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했다.

R Series lifestyle R3Meta IndigoGlossSpecialEdition S3 IndigoMatte Portrait

R3 Meta를 마주하면서

이후 케프는 다양한 진보를 해왔다. 영국 출신으로서 아마도 케프만큼 진지하고 깊은 음향 관련 연구를 진행해온 스피커 메이커도 흔치 않을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BBC 라이센스 디자인에 더해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형태의 설계를 보여온 그들 역사를 볼 때 케프는 어찌 보면 양면적인 모습을 모두 내보인 브랜드다. 과거 BBC 시절부터 시작해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의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인 동축 유닛을 대중화시켰고 뮤온, 블레이드, LS50, LS60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새로운 역사는 이전의 케프에선 절대 상상하지 못할 미래를 보여주었다.

R11 Meta Uni Q Driver Exploded View

R3 Meta의 디자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단 케프 스피커임을 증명하는 표식 같은 동축 드라이브 유닛을 보면 5인치 구경의 미드레인지 진동판를 설계해놓고 그 중앙에 1인치 구경 트위터를 탑재해놓았다. 이는 무려 12세대까지 진화한 이른바 UNI-Q 동축 드라이브 유닛으로서 겉으로 보기엔 구형과 유사해보이지만 내부의 갭 댐퍼 및 모터 설계 등 다양한 부분에서 개선이 있었다. 이를 통해 왜곡을 낮추고 지향성을 개선하는 등 다양한 이득을 얻었다.

흥미로운 건 이 정도 규모의 스피커라면 동축 유닛의 미드레인지 진동판 면적을 늘리고 모터 시스템을 증강시켜 베이스 우퍼까지 겸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탄노이 같은 스피커처럼 말이다. 이 모델뿐만 아니다. LS50 같은 경우는 동축 하나만을 채용한 작은 사이즈 북셀프이니 5.25인치가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훨씬 큰 LS60 같은 스피커는 동축 유닛 구경을 늘리지 않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되레 작아진 4인치 작은 미드레인지 구경을 보인다. 케프의 더 큰 스피커들로 시선을 옮겨도 동축 유닛 사이즈는 그리 커지지 않는다. 케프 R 시리즈 최상급 R11 Meta가 5인치, 무려 최상위 모델 블레이드 원도 5인치에서 머문다.

R Series lifestyle R3Meta Walnut S3 SlateGrey Portrait

요컨대 케프는 모두 기껏해야 4인치에서 5.25인치 정도에서 동축 진동판 구경을 제한하고 있다. 동축 유닛 진동판을 키울 경우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정교한 수평, 수직 지향각 및 왜곡율 등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무위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R3 Meta로 돌아와서 이 스피커는 5인치 미드레인지를 장착하고 있는데 그럼 이 미드레인지로 재상 불가능한 저역은 어떻게 재생할까? 바로 별도의 베이스 우퍼를 장착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있다. 베이스 우퍼는 무려 6.5인치. 동축 드라이브 유닛의 주파수 재생 범위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저역 재생 능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R3 Meta Indigo Gloss Special Edition on perspective Front mood shot of Shadow Flare

그렇다면 더 낮은 저역 재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베이스 우퍼의 진동이 상위 대역에 미치는 영향을 회피하기 위해 인클로저를 분리하는 건 어떨까? 물론 가능하겠지만 제조비용 및 소비자 가격 상승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물론 상위 모델로 가면 케프는 베이스 우퍼 설계에 색다른 시도를 한다. 바로 사이드 우퍼 방식으로 싱글 어페어런트 소스를 제안한다. 저역도 동축 선상에 위치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누리기 위한 설계를 감행한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측면에 베이스 우퍼를 단지 장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두 개의 우퍼가 서로 등을 대고 ‘포스 캔슬링’ 현상을 일으켜 저역 진동 및 그로 인한 잡음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R Series lifestyle R3Meta IndigoGlossSpecialEdition S3 IndigoMatte

셋업 & 시청

R 시리즈 중 R1 Meta 다음으로 상위 모델인 R3 Meta는 3웨이 저음 반사형 스피커로 후면에 포트를 두고 있다. 주파수 응답 범위는 +/-3dB 기준 저역은 58Hz, 고역은 28kHz까지 뻗는다. 중간 저역에서 초고역 구간으로 초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역을 무리 없이 소화 가능한 제법 큰 규모의 북셀프다. 특히 3웨이 설계 구조로 인해 크로스오버 주파수 또한 420Hz, 2.3kHz 등 두 개 지점에서 끊어가는 모습. 공칭 임피던스는 4Ω이며(최저 3.2), 감도는 87dB로서 스펙 수치로만 본다면 현대 하이파이 북셀프의 표준에 가깝다.

diana

이번 테스트는 NAD M33 스트리밍 앰프에 M23 파워앰프를 더해 모노 브리지로 결속해 테스트했다. 전반적으로 고역에서 저역까지 이 스피커의 용적에서 기대할 수 있는 딱 알맞은 대역폭을 지니면서 꽤 밝은 토널 밸런스를 지녔다.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을 들어보면 더블 베이스도 양감이 과장되지 않고 보컬, 피아노 등 모든 소리가 평탄하게 도착한 듯하다. 따라서 모든 소리들이 반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냉정한 톤은 아니라서 충분히 음악적 울림도 동반한다.

hugh

이 스피커의 다이내믹스는 적어도 높은 저역부터 고역까지 거침이 없어 생생한 현장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예를 들어 휴 마세켈라의 ‘Stimela’를 들어보면 오직 음원에 담긴 다이내믹스 폭의 민낯을 솔직하게 표현해준다. 덩달아 저역 에너지 또한 다이내믹한 느낌인데 두서없이 술술 내뱉는 저역은 아니다. 대신 타이트하고 단단한 편이다. R 시리즈에서 레퍼런스 시리즈로 가면 그 밀도, 입자, 다이내믹스 표현이 더 조밀해지지만 R3 Meta에서 구현하는 펀치력, 완급 조절 능력도 꽤 좋다. 다만 저역 하한이 58Hz이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다.

cornelius

포인트 소스 형태의 유닛은 마치 사람의 입처럼 하나의 유닛에서 모든 소리가 나오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악기의 형체가 눈에 보일 듯 또렷한 음상과 핀 포인트 포커싱 능력이 뛰어나다. 예를 들어 코넬리우스의 ‘Drop’을 듣고 있으면 물방울의 움직임과 서로 다른 크기의 기포 등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들의 뮤직 비디오가 펼쳐진다. 이런 이미징 연상 효과는 마치 녹음 공간에 해당 뮤지션과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매우 빠른 리듬 완급도 놓치지 않는 기민한 시간축 반응 특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esa

스피커의 재생음 평가에서 주파수 특성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횡으로 종으로 방사되는 에너지의 특성이 고르고 균질하다. 케프 R3 Meta는 동축 유닛을 통해 이러한 지향 특성을 꽤 많이 끌어올린 듯하다. 예를 들어 에사 페카 살로넨이 이끄는 로스 엔젤레스 필하모닉의 스트라빈스키 ‘Le Sacre du printemps’를 들어보면 무대를 구현해내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좌우 횡축 주파수 분포가 넓고 동시에 균질한 편이다. 동축이 이런 주파수 특성을 보여주는 건 매우 힘든 일. 대편성에서 넓고 입체적인 특성이 치분하면서도 싱싱하게 표현된다.

R3 Meta Walnut on perspective Front in pair

총평


어떤 한 분야에서 반세기가 넘는 동안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 한 인간의 평생을 넘어 한 회사의 역량을 모두 바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의지와 역량이 있어야하며 그것을 지속시킬 경제적 이익과 트렌드 사이에서 끝없이 타협해야하고 외부에선 속절없이 저울질 당한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동력을 유지해야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올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케프 같은 경우 레이몬드 쿠크로부터 시작된 음악과 음향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이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트랜스듀서로서 동축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케프는 이젠 이전 세대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동축의 세계를 열어젖히고 있다. 12세대 UNI-Q 동축으로 메타 시대를 연 케프의 R3 Meta는 그래서 놀라울 수밖에 없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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