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파트너 그리고 아큐톤
때는 1984년 독일. 베커스&뮐러에 근무하던 엔지니어 버나드 틸은 매우 단단한 강옥을 사용해 얇은 진동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진동판 제작 공정의 성능이 향후 가져올 하이파이 오디오의 발전은 아직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성은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었다. 매우 뛰어난 강도와 감쇠 성능은 물론이며 이전의 진동판 소재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광대역과 더 낮은 왜곡율 등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아큐톤 세라믹 드라이브 유닛의 탄생 설화 즈음이라고 해두다.
이후 복잡한 일들이 일어난다. 버나드 틸이 자신의 회사 틸 GmbH을 설립하면서 베커스&뮐러 제품용으로만 생산하던 이 유닛을 직접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베커스&뮐러가 사업을 정리하면서 버나드 틸의 회사 틸 GmbH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아야만 했고 그 때 운명처럼 아드리안 반케비츠를 만난다. 그는 틸 GmbH의 자신을 매입하고 생산 및 유통 채널 등 모둔 경영 부문을 다시 세팅해 틸&파트너 GmbH를 설립한다. 여기서 아큐톤 유닛이 안정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다.
세라믹을 드라이브 진동판 유닛으로 상용화한 것 외에도 틸&파트너의 탁월한 R&D 업적은 대단히 많다. 그 중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탄생은 여타 다이아몬드 스피커에 비해서도 독야청청했다. 1999년 학술지 ‘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CVD, 즉 화학 증착 방식 공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다이아몬드 트위터 제작이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위치한 프라운호퍼 응용 물리학 연구소와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실행한 결과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탄생시켰다. 이 엄청난 사건은 이후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아큐톤 드라이브 유닛은 이후 절대적 고해상도 하이엔드 스피커를 제작하는 전세계 오디오 메이커들을 불러모았다. 말해 무엇하랴. 이를 뛰어넘는 유닛 제작은 그들에겐 먼 이야기일 뿐이니. 타이달, 마르텐, 빔베르그, 에스텔론, 이소폰…그리고 레전드 카르마, 아발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서 아큐톤을 가장 잘 다루는 메이커라면? 개인적으로 카르마를 꼽겠다. 가장 선도적으로 아큐톤 유닛을 스피커에 투입하기도 했으며 최상위 이니그마 베이런 스피커엔 총 여덟 발의 아큐톤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탑재해놓고 있다.
라이라복스의 풀 아큐톤
틸&파트너 그리고 아큐톤 유닛에 대한 이야기로 리뷰의 포문을 연 이유는 바로 라이라복스의 칼슨(Karlsson) 스피커를 이해하기 위해선 분명히 알아야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테스트했던 라이라복스의 칼로스(Karlos)의 경우엔 트위터만 아큐톤 세라믹 유닛을 사용하고 미드/베이스 우퍼엔 알루미늄 유닛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 칼슨 스피커의 경우 미드/베이스 우퍼까지 아큐톤 세라믹 유닛을 사용해 풀 아큐톤 스피커로 태어났다. 트위터는 25mm 세라믹 트위터, 미드/베이스 우퍼는 7인치 구경이다.
여기에 더해 최상단, 그러니까 스피커의 전면 배플이 아닌 윗면에 유닛이 하나 더 있다. 일종의 앰비언스 트위터라고 해서 이 유닛은 초고역까지 주파수를 확산하면서 음원에 담긴 아주 미세한 초고역까지 모두 재생해낸다. 이러한 유닛의 경우 종종 하이엔드 스피커에서 채용하는데 엄청난 초고역 재생이 가능해야하므로 리본이나 AMT처럼 초고속으로 움직이면서 자유롭게 초고역 한계를 넘나드는 트위터가 활용된다. 칼슨의 경우 AMT L50 트위터를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다음으로 인클로저는 특별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인조석. 그러니까 석재, 돌이다. 이런 석재로 인클로저를 만든 예는 몇 번 보았지만 최근엔 이 칼슨이 유일하다. 라이라복스에선 이를 K 메터리얼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윌슨 오디오가 S 메터리얼, X 메터리얼 등으로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라이라복스에 의하면 감쇠 효과가 일반적인 콘크리트보다 무려 30배 정도 뛰어나 인클로저 소재로서 상당히 뛰어난 물성을 가진다고 한다. 내부는 보강재 및 절연체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헬름홀츠 공명 원리를 응용한 공진 흡수 설계를 보인다. 참고로 칼슨은 후면에 포트를 탑재한 저음 반사형 스피커다.
타협 없는 액티브
내부 설계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면 이 스피커는 기본적으로 파워앰프를 내장한 액티브 스피커임을 알 수 있다. 내부엔 하이펙스 Ncore 4세대 클래스 D 증폭 모듈을 탑재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트위터에 각 100와트, 미드/베이스 우퍼엔 400와트를 앰프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채널당 500와트, 전체 출력 수치를 합하면 1000와트라는 어마어마한 출력을 얻는다. 하지만 출력보다 중요한 것은 양 쪽 채널에 동일한 모듈을 설계해 좌/우 채널 성능 차이가 전무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설계는 패시브 스피커로 세팅한다면 일종의 바이앰핑 설계로서 각 유닛을 별도의 파워로 구동하면서 얻는 장점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만일 패시브 스피커라면 모노블럭 파워앰프 두 조가 필요한 구성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칼슨의 후면을 보면 이 스피커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어떻게 연결해야할지 알 수 있는 단자들이 빼곡하다. 기본적으로 동축, 광, AES/EBU 등 디지털 입력이 있고 XLR 및 RCA 입력 있다. 이번 테스트에선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룬 코어 Wcore 및 네트워크 플레이어 Wstreamer를 사용했는데 Wstreamer에서 동축 출력을 뽑아 마스터 채널에 연결했고 이후 다시 마스터 채널 스피커에서 동축으로 슬레이브 채널과 연결하면 정확히 두 스피커가 좌/우 채널 연동되어 작동한다.
일단 디지털 신호를 마스터 채널에 흘려주면 라이라복스가 설계한 디지털 크로스오버 및 DSP로 인입된다. 여기서 다양한 그들만의 알고리즘을 통해 EQ 세팅 및 커스텀 사운드 프리셋 등이 가능하다. 룸 어쿠스틱 특성을 측정해 그에 상응하는 매우 정교한 특성 조정이 가능하다. 하이펙스에서 제공하는 하이펙스 필드 디자인(HFD)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개인이 조정할 수도 있지만 구입하면 전문 인스톨러가 셋업해준다. 이후 신호는 DA 변환되고 그 다음에 최종적으로 하이펙스 증폭 모듈로 신호가 인입된 후 증폭되어 스피커 드라이브 유닛을 구동하게 된다. 주파수 응답은 23Hz에서 42kHz로 대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만큼이나 광대역이다.
전문가용 모니터에 스며든 아큐톤
이번 테스트는 이전 칼로스 스피커와 동일한 매칭과 동일한 공간에서 이뤄져 비교가 가능했다. 웨이버사 Wcore/Wstreamer 조합인데 솔직히 라이라복스 칼로스와 음색 부분에서 상당한 차이를 불어왔다. 물론 인클로저 구조는 물론 유닛 구성도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음장, 음색, 다이내믹스 등 모든 면에서 마치 새로운 브랜드를 만난 느낌이었다. 한편 칼로스엔 없었던 전면의 작은 디스플레이 창이 있어 조금은 더 편리했고 전용 리모컨은 알루미늄 소재로 묵직하면서도 날렵해 사용하기 편리했다.
우선 이 스피커는 독특하게도 트위터와 미드/베이스 우퍼를 상하로 배치해서 듣게끔 설계되지 않았다. 좌/우로 이어서 배치되도록 듣게 만든 스피커다. 일반 스피커도 이런 식으로 배치해 듣기도 하지만 칼슨의 경우 좌/우로 도열하게 만들고 상단에 AMT 앰비언스 트위터를 탑재시켰다. 그래서인지 무대는 대단히 넓고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아마도 스튜디오 모니터링 용도로서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듯하다.
예를 들어 에바 캐시디가 부른 ‘What a wonderful world’ 같은 평이한 구성의 녹음만 들어봐도 이 스피커는 대단히 평탄한 대역 밸런스를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주파수 구간도 딥이나 피크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역이 너무 타이트에 답답하더던가 납작하게 뭉개진 느낌도 없다. 뛰어난 다이내믹스와 함께 보컬의 표면 디테일이 매우 세밀하게 살아나 싱싱하게 표현된다. 오랜만에 듣는 아큐톤 세라믹 유닛은 확실히 매력 만점의 단단하고 사실적인 맛이 좋다.
확실히 아큐톤 드라이브 유닛은 독특한 음색이 있다. 마치 잘 만들어진 도자기 표면을 탕 쳤을 때의 그 잔향을 상상하면 어느 정도 일치할 듯하다. 그렇다고 타일이 잔뜩 깔린 목욕탕 사운드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를 들어보면 그의 피아노 타건에 실린 손가락의 힘과 지속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잔향의 시간까지 마치 모두 분석해서 재정렬한 듯 명료하고 깨끗하다. 물론 그 소리에도 아큐톤 세라믹 재질의 음색이 뭍어나와 약간 더 예쁜 맛이 있다.
중역과 저역의 모양은 일단 바짝 당겨져 있어 탄성이 뛰어나게 들린다. 예를 들어 뮤지카 누다가 비틀스의 노래를 재즈로 재해석한 ‘Come together’ 녹음을 들어보면 대체로 아큐톤 유닛을 사용한 스피커들의 단점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 메이커의 경우 고역과 중역 사이제 매우 많은 에너지가 몰리기도 하고 중역이 아얘 허전하게 비는 경우도 있으나 칼슨의 경우 모든 대역이 균질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자연스럽다. 패시브 크로스오버의 단점을 디지털 크로스오버가 완전히 해소해준 덕분인 듯하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 생각났고 영화 중 번스타인 지휘로 연주된 말러 2번 교향곡이 듣고 싶어졌다. 이 연주에서 다이내믹스를 최고조로 오른다. 약음 표현력이 뛰어나고 특히 아큐톤의 섬세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빛을 발하며 볼륨을 올려도 다이내믹스나 스테이징이 왜곡되지 않는 모습이 놀랍다. 무대는 좌/우로 상당히 넓게 펼쳐져 근거리에서 듣기엔 무척 아까울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제조사의 권장 청취거리 1~4미터, 스피커와 벽변 사이 권장 거리는 0.5m~0.8m이지만 좀 더 넓게 펼쳐놓고 들으면 이 스피커의 능력은 더욱 크게 펼쳐진다.
총평
틸&파트너가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함께 개발해낸 아큐톤 드라이브 유닛은 독일의 기술력을 하이파이 음향 부문에서 입증한 사건이었다. 물리적 특성 뿐 아니라 그 오묘한 음색과 광대역, 다이내믹스는 이를 증명했다. 한 번도 안들어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만 듣고 잊을 수는 없는 소리가 바로 아큐톤이다. 하지만 스피커 제어 측면에선 사용자에게 커다란 지출을 요구하는 것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라이라복스의 칼슨을 들어보면서 느낀 점은 원래 아큐톤은 이런 방식으로 설계할 때 제대로 된 사운드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장된 하이펙스 Nocore를 통해 대출력, 바이앰핑하고 디지털 크로스오버 설계를 통해 패시브 크로스오버로 인한 왜곡,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게끔 설계하는 것 말이다. 게다가 DSP를 통해 더 촘촘한 세팅과 튜닝이 가능한 칼슨은 얼티밋 하이엔드 모니터 스피커의 레퍼런스 반열에 올랐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수입원 : 오드(ODE)
가격 : 24,900,000원
제품 문의 : 02-512-4091
청음 예약 : https://bitly.ws/366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