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의 인터페이스
스튜디오 연주 또는 라이브 실황을 녹음한 음원을 즐기는 데 있어 오디오의 인터페이스는 사람의 인지, 반응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래서 유저 인터페이스라는 말이 있고 학문적으로는 인간 공학이라는 말이 따로 있어 디자이너들이 이를 공부한다. 아무리 빼어난 전기, 전자적 설계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의 인지 특성과 사용 패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터페이스를 지니고 있다면 이는 오래 지나지 않아 도태되고 만다.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사용하는 기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용해온 프리앰프는 이러한 인터페이스에 대한 짧은 통찰을 가져다 주곤 했다.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제품은 제프 롤랜드의 시너지 프리앰프였다. 전원부가 분리되어 있고 전원부에서 컨트롤, 증폭 서킷이 장착된 본체로 DC 전원을 인가해 작동하는 형태다. 프리앰프엔 제법 묵직하게 돌아가는 볼륨이 위치해 있고 옆으로 다양한 버튼이 있다. 손으로 조작해보면 딸깍 소리를 내면서 작동하는데 가장 유용했던 건 게인 조정 버튼이었다. 또 하나 생각하는 건 클라세 델타 프리앰프들이다. 이 프리앰프들 또한 입력 게인 조정이 가능하게끔 세팅 메뉴를 만들어놓아 주변 기기를 바꿀 때나 또는 리뷰를 진행할 때 꽤 유용하다.
이러한 레퍼런스급 프리앰프에 왜 이런 기능을 넣어놓았을까? 일단 소스 기기의 출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프리앰프 입장에서 입력 게인이 너무 작으면 볼륨을 너무 높여야하고 그러자면 기저 노이즈도 함께 증가해 청감상 SN비가 낮아진다. 또한 여러 메이커들마다 저마다 출력 전압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프리앰프에 연결해놓은 CDP, DAC, 포노앰프들로부터 받아들이는 출력값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음원을 듣다가 CD를 들을 경우 또는 CD를 듣다가 LP를 듣는 경우 볼륨을 꽤 자주 조정해야하는 불편을 야기한다. 어쩌다 한 곡 듣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음악광이라면 이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프리앰프의 이런 기능을 음질 훼손 없이 마련해놓은 브랜드에 감사하다.
버메스터 032에 스며든 인간 공학
버메스터 프리앰프들인 077, 088 같은 프리앰프를 조작하고 리뷰하면서 나는 바로 이런 면을 주목했다. 입력 게인 값을 폭넓게 조정 가능하며 출력값도 하이, 로우 중 선택 가능하다. 이는 실제 다양한 소스 기기들을 사용하거나 또는 기기 교체가 잦은 경우 굉장히 유용하다. 게다가 출력값은 스피커 매칭과도 연계되는 부분이다. 또한 톤 컨트롤 기능도 살려냈다. 사실 미국발 하이엔드 오디오 무브먼트의 주역들이 종종 이런 톤 컨트롤 기능을 삭제시켜왔으며 그 이유는 음질 저하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런 기능들을 음질 저하 없이 구축할 수 있다면 사실 상당히 유용한 기능인 건 사실이다. 청음 환경의 어쿠스틱 룸 특성까지 측정해 소프트웨어로 보정하는 디락 라이브 같은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세상 아닌가.
최근 버메스터의 프리앰프에 이어 032 인티앰프를 접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자사의 레퍼런스급 프리앰프에 적용해놓았던 그 기능들이 모두 인티앰프에도 축소 없이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톤 컨트롤 기능은 고역과 저역에서 각각 –14dB부터 +14dB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조정이 가능하다. 실제 조작해보면 음질적 저하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입력 레벨의 경우에도 –9에서 +9 사이에서 세밀하게 조정 가능하다. 그것도 각 입력단별도 제각각 조정값을 세팅할 수 있기 때문에 연결하는 소스 기기마다 다른 출력값에 따라 청감상 조정해 비슷하게 맞출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뿐만 아니다. 출력 레벨 또한 하이, 로우 등 두 개 선택 모드를 준비해놓아 스피커 감도에 따라 차등을 둘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기능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은 032가 인티앰프라는 틀에서 최대한 타협을 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한 브랜드의 기술, 기능 투입 여부는 분리형에서 절정에 오르고 하위 라인업, 그 중에서도 인티앰프로 내려오면 여러 기능 및 설계 특성을 지워나가는 양사을 띤다. 특히 인티앰프의 경우 상위 파워앰프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야기하는 설계 시그니처를 거의 모두 지워내는 경우도 있다. 가장 보편적인 행태는 상위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를 합체해놓았다고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프리앰프 설계를 대폭 축약해놓거나 거의 패시브 형태로 설계해 원가를 대폭 절감하는 경우다.
상위 모델을 하나의 섀시에
그렇다 버메스터 032 인티애프는 버메스터가 마련한 총 세 개의 인티앰프 중 최상위 모델답게 타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설계와 인터페이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설계는 어떤가? 이전 리뷰에서 이미 상세히 다루었으므로 간단히 짚고만 넘어가자. 우선 이 앰프의 내부를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도시의 조감도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앞 부분엔 무려 650VA 용량의 토로이달 트랜스포머가 단단히 장착되어 있다. 좌/우 듀얼 모노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일단 용량 자체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요컨대 지속적으로 높은 전류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 임피던스 특성이 낮고 까다로운 스피커 제어에 능숙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앰프의 스피커 제어 능력에 대한 평가 잣대 중 하나인 댐핑 팩터의 경우 1800 정도로 막강하다.
증폭은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사용하여 푸쉬 풀 증폭하는 형태다. 자세한 메이커를 공개하고 있진 않지만 출력 값은 4옴 기준 채널당 171와트다. 최대 피크 전류값은 30A로 인티앰프치곤 높은 편인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매우 큰 전류까지 공급하는 도달 시간이다. 버메스터에 의하면 4옴에서 1.5μS에 불과하므로 매우 빠르고 충분한 전원 공급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버메스터는 032 인티앰프를 풀 밸런스 회로로 설계했다. 또한 신호 경로에 커플링 커패시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DC 입력 등에서 앰프를 보호하는 등의 역할을 하지만 신호를 왜곡시키는 악영향도 있다. 버메스터는 과감히 커패시터를 생략하고 있다. 음질을 위한 대책 없는 희생인걸까?
그렇지 않다. 시그널의 순도는 최대한 유지하되 보호회로를 별도로 마련해 앰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최적의 작동 환경을 유지하고 만일의 위험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내부에 탑대한 지능형 보호회로는 과열 혹은 DC 입력시 작동을 멈추며 출력을 중단시켜 스피커 손상을 막아준다. 또한 앰프의 내구성 및 수명과 가장 크게 관련되는 방열에 관해 버메스터는 비범한 설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멋진 디자인의 방열판 구조다. 가장 많은 열을 발생시키는 출력단의 경우 거대한 구리 블록을 통해 앰프 섀시 측면의 대형 발열판에 바로 연결된다. 한편 드라이버 스테이지의 경우도 별도로 내부 방열판에 연결시켜 애초에 외부로 열이 발생하기 전에 식혀버린다. 온도 변화로 인한 앰프 회로 작동의 이상 현상을 막아 최적의 작동 환경을 조성, 음질적으로 균질한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게 한 조치들이다.
윌슨 Sasha V와 조우
이번 테스트는 간만에 흥미로운 조합이 성사되었다. 다름 아니라 버메스터 032와 윌슨 오디오의 최신형 Sasha V와 매칭이 가능해진 것이다. Sasha는 필자 또한 개인 시청실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을 매우 잘 알고 있기도 하며 국내에 사용자 층이 두텁기 때문에 공감대를 얻기도 좋다는 판단이 섰다. 한편 소스 기기의 경우 T+A의 플래그십 모델 MP3100HV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버메스터는 처음 Sasha V와 매칭시 대역 밸런스가 높고 건조한 사운드를 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의 무게 중심이 내려오면서 리퀴드 사운드를 내주었다. 우선 라드카 토네프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를 들어보면 음원은 모든 정보를 이끌어내 분석한 후 재조합한 듯한 느낌이다. 전체 밸런스는 약간 높은 편이지만 산만하거나 엷게 흩날리지 않는다. 대신 보컬의 딕션이 더 또렷하고 명료하게 들릴 정도로 청명하다. 특히 고역대는 정말 아름답고 맑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얀 가바렉과 힐리어드 앙상블의 ‘Officium’에선 이런 특성이 더욱 부각되어 들린다. 높은 음계를 날아다니는 소프라노 색소폰은 거침없이 위로, 위로 뻗어나가면서도 거칠거나 건조해지지 않는다. 뭔가 짓눌린 느낌이라곤 한 점도 발견할 수 없는데 때론 날카롭게 변모하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부분에서도 선형적으로 뻗으면서 동시에 산만하지 않고 되레 예쁘게 마무리된다. 남성 중창단 힐리어드 앙상블과 호흡에서 이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단단한 중역이 바탕이 되어 미묘한 토널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언어로는 고결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한 소리다.
이전에 윌슨 베네시와 매칭에서도 도드라지는 특성은 시간축 특성들이다. 일단 음색을 차치하고 동적인 측면에서 버메스터는 힘의 완급이 급격하며 동시에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악기들의 움직임도 에지가 분명하고 선명하게 잡아낸다. 예를 들어 샨탈 챔버랜드의 ‘Temptation’이나 휴 마세켈라의 ‘Stimela’ 같은 곡을 들으면 차고 맑은 지하수처럼 흐르다가도 리듬이 강조되어야할 부분에선 확실히 매듭을 끊고 나가면서 절도 있는 리듬감과 함께 앞으로 곡을 끈질기게 이끌어나갈 추진력을 획득한다.
버메스터 032를 테스트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버메스터와 처음으로 조우했던 당시 사운드를 떠올리게 되었다. 최근 차례로 테스트한 216, 218, 088, 077보다 되레 과거 버메스터의 그것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편성 교향곡에서 골격이 뚜렷하고 기개가 느껴지는 쾌감은 분명히 오리지널 911의 소리와 결이 유사하다. 예를 들어 티에리 피셔 지휘, 유타 심포니 연주로 듣는 말러 교향곡 1번에서 천둥 같은 총주가 바닥을 향해 빠르고 정확히 내리 꽂히면서 오디오적 쾌감을 증폭시킨다. 최근 버메스터 신제품들보다 좀 더 날 것의 기상이 살아 있는 소리다.
총평
버메스터를 직접 조작해보고 음악을 장시간 들어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음질이지만 총체적인 만족을 준 것은 인터페이스였고 그것은 인간공학에 바탕을 둔 정밀 공학. 바로 감성 공학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032는 그러한 버메스터에 대한 믿음과 감성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청음은 Sasha V 스피커를 통해 버메스터 032 인티앰프 하나가 아닌 버메스터 사운드와 매칭을 통한 교감이 이뤄져 유의미했다. 특히 우리가 버메스터라고 하면 연상할만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곳곳에서 출몰해 Sasha V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들의 대쪽 같은 기개와 섀시 디자인처럼 반짝이는 음색에 단단하고 치밀한 헤어라인이 연상되는 버메스터 사운드. 032엔 그 버메스터의 사운드가 지문처럼 새겨져 있었다. 요컨대 버메스터 032는 독일 하이엔드 사운드의 지문 같은 존재로서 ‘불멸의 신화’ 버메스터 사운드의 결정체라고 할만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