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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없는 버메스터, 영혼을 잠식하다

버메스터 032

burmester thumb

하이엔드 인티앰프

‘하이엔드’라는 용어는 투입되는 엔지니어링이나 예산 등 제품 제작에 어떠한 제약도 없도 최고의 품질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하이엔드 무브먼트가 있었지만, 하이엔드라는 말을 남용한 나머지 지금은 되레 그 의미가 퇴색된 면도 없지 않다. 오디오에서 하이엔드라고 하면 1980년대부터 시작해 1990년대 절정을 맞이했다. 마크 레빈슨, 크렐, 제프 롤랜드 등 기라성 같은 앰프 브랜드부터 윌슨, 아발론, 헤일즈, 틸 등 미국이 이 시장을 리드했다.

앰프 분야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는 그 설계 철학을 제품화하는 데 있어서 모두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를 분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프리앰프도 상위 모델은 전원부를 분리해 두 대로 설계하곤 했다. 파워앰프의 경우도 모노블럭 형태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원부를 별도의 섀시에 담아 분리하는 극단적인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제프 롤랜드의 플래그십은 그 당시 배터리를 활용해 거대한 파워앰프 전원부를 앰프 본체만 한 섀시에 담아내기도 했다. 이렇듯 당시 하이엔드 오디오는 첨단 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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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리형을 고수했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들이 그 높은 콧대를 낮추며 인티앰프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크렐 KAV-300i가 대표적이었고, 이는 일종의 붐 같은 현상을 일으켰다. 마크 레빈슨의 No.383, 제프 롤랜드의 콘센트라도 생각난다. 기존의 극렬한 하이엔드 오디오 마니아들은 이런 트렌드에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이후 하이엔드 앰프 브랜드들은 라인업에 인티앰프를 하나씩은 구축하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졌다.

이후 많은 걸출한 하이엔드 앰프가 탄생했다. 그리폰은 타부를 시작으로 칼리스토, 그리고 디아블로에서 정점에 올랐다. 현재도 디아블로는 여러 후속 기종을 진화 중이다. 마크 레빈슨은 500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출시 중이며, 제프 롤랜드는 몇 년 전 데몬이라는 괴물 인티앰프를 내놓은 바 있다. 골드문트는 390, 590 시리즈로 인기를 누렸고, 플리니우스는 히아토 같은 앰프로 그 성능을 인티앰프에 축약시켰다. 이 외에도 여러 브랜드에서 수많은 하이엔드 인티앰프를 내놓고 있지만, 하이엔드라는 의미와 인티앰프의 결합은 마치 극한의 추구와 타협이라는 의미가 합해진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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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082 그리고 032

독일 하이엔드 오디오의 대표 주자 버메스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버메스터는 그들의 라인업 안에 총 세 개의 인티앰프를 마련해놓고 있다. 우선 101 인티앰프는 아날로그 리니어 전원부에 클래스 D 증폭을 하는 버메스터의 독특한 기술로 설계되었다. 아마도 버메스터의 가장 최근작 중에서도 독창적인 설계를 자랑하는데, 슬림한 사이즈에 버메스터의 전통적인 설계와 최신 클래스 D의 강점을 융합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 단계 상위 앰프로는 082 인티앰프가 있다. 이 앰프부터 비로소 909, 911, 956 등 버메스터의 전통을 잇는 디자인과 DC-coupled 회로 등 전매특허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상위 모델보다 약간 적은 출력으로 설계되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성능을 내준다는 게 버메스터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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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상위 인티앰프 032가 등장한다. 이 앰프는 버메스터가 추구하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이상에 근접하되, 상위 분리형 앰프보다 접근이 쉽도록 설계한 앰프다. 이번에 만난 앰프가 바로 버메스터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032다. 우선 직접 이 앰프를 마주하면 거의 파워앰프에 버금가는 크기와 무게에 탄성이 터진다. 무게가 무려 30kg 정도로, 인티앰프 치곤 꽤 무겁다. 날렵한 섀시 가공 정밀도는 금속 가공 예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방열판 같은 경우 날렵하며 날카로운 멋을 담아내고 있다. 출력은 4Ω 기준 채널당 170W를 출력하는 인티앰프다.

전면의 반짝이는 섀시를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이 앰프의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한 볼륨 노브를 손으로 조작해 보니 무척 부드럽고 정교하게 작동한다. 이 외에 양옆으로 늘어선 버튼이 이 앰프의 기능을 설명해 주는데, 입력단 선택은 물론 특이하게 톤 컨트롤 기능을 구비하고 있다. 하이엔드 앰프들에서 생략하곤 했던 기능이지만 독일 하이엔드 오디오의 표상 같은 버메스터는 이 기능을 멋지게 살려냈다. 참고로 전면에 마련된 톤 컨트롤 기능은 고역과 저역을 각각 +14dB부터 –14dB까지 증감 가능하다. 이에 더해 좌/우 채널 밸런스 또한 조정 가능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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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으로 가면 다양한 입/출력 단자들이 일목요연하게 늘어서 있다. 우선 입력은 AUX 1, 튜너, CD 등 세 개의 XLR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고, 추가로 AUX 2 및 테이프 입력 등 RCA 입력 두 조가 마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XLR 입력을 추천하는 구성이므로, 가능하면 XLR 출력이 가능한 소스 기기를 연결하길 추천한다. 한편 서라운드 입력 역시 XLR 단자로 마련되어 있다. 만일 AV 리시버나 프로세서를 사용할 경우 이 단자와 연결해 메인 시스템의 하이파이 스피커를 홈시어터 시스템의 프런트 스피커로도 사용 가능하다. 만약 별도의 파워앰프를 사용하고 싶다면 ‘프리아웃’ 단자를 활용하면 된다. 이 또한 RCA, XLR 모두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후면엔 다양한 단자들이 빼곡하다. 특히 헤드폰 출력단을 후면에 마련해놓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한편 시스템 프로그램에 필요한 BURLINK 같은 인터페이스도 USB, RS232등의 단자 규격으로 대응하고 있다. 스피커 출력단은 좌/우 채널 공히 한 조씩 지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단자를 잠시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스피커 체결력이 매우 우수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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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셋업 메뉴에 들어가면 실 사용 시 무척 유용한 기능들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과거엔 하이엔드 앰프라고 하면 다양한 기능을 대부분 없애는 방향으로 신호 경로에 해악을 끼치는 요소를 제거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하이엔드 앰프들도 세부적인 세팅을 가능케 만들고 있다. 버메스터 또한 032 인티앰프에 셋업 메뉴를 만들어놓고 사용자 환경 및 매칭에 맞게 조정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 입력단의 입력 레벨은 –9에서 +9까지 조정 가능해 각 소스 기기들 간의 볼륨 차이를 평준화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출력 증폭 레벨 또한 하이, 로우 두 개 모드 중 선택 가능하다.

이 외에도 앰프 보호회로 또한 잘 갖추어놓은 편이다. 앰프의 작동 온도가 일정 이상 올라가면 앰프가 자동으로 음소거되며 출력을 막는다. 디스플레이 창엔 ‘TEMP’, 즉 온도 과열이라는 메시지가 켜진다. 워낙 방열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만 극단적인 상황까지 고려한 것이다. 또한, 출력 트랜지스터에 이상이 감지되거나 DC 출력이 감지될 경우에도 즉시 음소거 상태로 전환되면서 출력을 막아 앰프 및 스피커를 보호해 준다. 여러 면에서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 앰프 셋업 및 보호회로 시스템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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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이번 버메스터 시청엔 KEF의 Blade One Meta 스피커를 사용했다. Blade One Meta는 KEF의 플래그십 스피커로서, 네임오디오나 NAD, T+A 등 다양한 앰프와 매칭을 해보았지만 버메스터 앰프와의 매칭은 처음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한편 소스 기기는 T+A의 MP2000R를 사용했다. 여기에 ROON을 활용해서 음원을 재생하면서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파악해나갔다. 참고로 시청은 청담 소리샵 매장 내 KEF 전용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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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KEF 동축 유닛은 본래 매우 또렷한 음상을 만들어내며 대역 밸런스가 반듯한 대형기다. 대형기지만 위상 오류나 저역 딜레이 없이 대역과 무대가 확장된 스타일. 버메스터로 울리는 Blade One Meta는 각 유닛에 정확한 신호가 흘러 들어가 마치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듯 각 주파수 대역을 분리해낸다. Sarah McLachlan의 Angel을 들어보면 보컬, 피아노의 레이어가 그림처럼 분할된다. 보컬은 적막 같은 배경 위에 달처럼 둥실 떠오르는 모습. 어떤 음악을 들어도 단일 악기들의 형체를 정밀하게 그려내며 중, 저역도 샅샅이 분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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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하면 버메스터가 매우 분석적이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분석적이어서 오래된 녹음의 기저 잡음이나 녹음 당시의 불균질한 단점들도 모두 드러낸다. 반대로 뛰어난 녹음의 음악은 그만큼 더 뛰어나게 재생한다. Augustin Dumay와 Maria João Pires, 그리고 Jian Wang이 함께 연주한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를 오랜만에 플레이 리스에 올렸다. Pires의 피아노는 완벽히 분리되어 독립적인 음색을 공간에 그려낸다. 그러나 동시에 유기적으로 섞였다 분리되었다 반복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확실히 과거에 들었던 911 모델 보다 유연해진 동적 움직임을 보이며 음색 면에서도 온도감이 좀 더 올라온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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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메스터의 소리를 주파수 특성 외에 타임 도메인이라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일단 빠르고 명쾌한 앰프라고 할 수 있다. 스피드도 좋지만 얕거나 가볍게 흐르는 법이 없이 핵심을 똑바로 짚고 넘어간다. 따라서 음악의 골격이 명확하다. Brian Bromberg의 ‘The Saga Of Harrison Crabfeathers’를 들어보면 전에 없이 빠른 우드 베이스 어택으로 급박하게 공간을 휘어잡는다. 채널당 네 발의 우퍼는 시간차 오류 없이 버메스터에게 거의 완벽히 제압당한 모습. 일체의 부스트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저역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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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iatoslav Richter와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재생하면 Richter의 피아노가 일단 귀에 빠르게 쏙 들어와 박힌다. 피아노의 골격이 또렷하며 고결할 정도로 심도 있고 표면이 단단하다. 기존에 듣던 KEF와는 다른 소리다. 그 와중에 손끝 마지막 힘의 강약도 정확히 짚어내며 작은 소리에 무게가 살아 있어 심지가 곧게 들린다. 무대는 특히 깊이가 깊고 전/후 레이어링이 겹겹이 형성된다. 한마디로 분석력을 기반으로 날렵하고 단단한 사운드를 내지만, 이런 치열함 위에 건조된 품위가 줄줄 흐른다. 버메스터의 전통과 현대 기술이 만난 진화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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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분명 KEF Blade One Meta의 소리를 정확히 기억한다. Multi-way 스피커이면서 동축 드라이브 유닛에 다발의 우퍼를 장착해 대역 확장과 입체적 스케일을 선보이는 기막힌 아이디어의 스피커. 그러나 나는 이번 리뷰를 위한 시청을 진행한 후 머릿속에 KEF는 사라지고 버메스터 사운드의 잔상만이 꽤 길게 지속되었다. 말 그대로 버메스터가 잠식한 KEF의 소리였다. 왠지 버메스터를 빼고 나면 음악을 매우 지루해질 것만 같다. 중독성 강한 버메스터의 소리. 인티앰프라는 타협의 공간에서도 버메스터는 극한을 추구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버메스터는 영혼을 잠식한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Weight : 28 kg (61.7 lbs)
Width : 480 mm (18.9“)
Height : 179 mm (7.1“)
Depth : 492 mm (19.4“)
Inputs : 3 XLR, 2 RCA
Pre-Out : bal. + unbal.
Input Sensitivity : 1% THD + N, 4Ω 550 mV
Stereo output per channel : into 4 Ω 170 W
Headphone jack : 6.3 mm
Surround Thruput : yes
Remote controlled : yes
BurLink : yes
REMOTE INPUT / OUTPUT : 1 / 1
Tone control
(can be bypassed) : yes

제조사 : 버메스터
공식 수입원 : ㈜ 소리샵
공식 소비자 가격 : 28,0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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