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로부터
맑은 공기와 한껏 멋을 낸 듯 반듯반듯한 건물과 나무들이 마치 조각한 듯 펼쳐진다. 자동차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국내 도시와는 한결 다른 풍경 속엔 자연, 그리고 나름의 질서가 공존하고 있다. 스위스의 취리히엔 그리 높은 건물이 없다. 곳곳에 그저 약간 높게 만들어놓은 첨탑들이 고고하게 서서 도시를 유유히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취리히 호반의 도시 호르겐에 위치한 피에가는 그렇게 반듯하고 청초한 그 도시를 닮았다.
필자가 피에가 스피커의 소리를 처음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음악이 스피커가 아닌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느낌이었다. 취리히 대학 캠퍼스에 가면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마치 캠퍼스 안에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는데 어디에서 음악이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장면 말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스피커를 찾을 수 없지만 캠퍼스 자체가 공연장이 된 듯한 느낌이 피에가를 들었던 때의 나의 감상평이다. 실제로 이런 실체적인 소리는 소리의 출발점에서부터 여느 스피커와 다른 피에가의 유닛 구조에서 연유한다. 스위스 취리히로부터 탄생한 소리의 근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리본에서 찾은 해답
피에가는 일반적으로 돔 트위터에서 소리를 내는 방식의 문제점과 그 한계에 대해 집중했다. 둥근 돔 형태의 트위터는 일면 180도 방향으로 소리를 넓게 방사시켜 확산성을 돕지만 근본적으로 소리의 확산 형태가 본래 원음의 특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돔의 중심부분에서 시작해 주변부로 갈수록 청취자의 귀 사이의 거리에 있어 편차가 발생하며 이런 음압 감쇄가 일으키는 왜곡을 문제 삼았다. 이런 문제점에서 자유로운 형태가 바로 납작한 평판 형태의 유닛이다. 혼이나 리본이 대표적이었도 피에가는 리본 트위터를 목표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선 리본 유닛의 기본 원리를 알아보자. 피에가의 리본 유닛은 일반적인 돔 트위터나 콘 드라이버와는 다른 독특한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리본 유닛은 얇은 알루미늄 포일(foil)로 제작된 초경량 멤브레인을 사용하여 소리를 생성하도록 설계했다. 이 멤브레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초박형 알루미늄 포일 멤브레인: Piega의 리본 유닛은 두께가 약 20μm(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 알루미늄 포일을 사용한다. 이는 인간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수준으로, 멤브레인의 무게는 단 7mg에 불과하다. 이 초경량 설계는 빠르고 정확한 임펄스 응답(impulse response)을 가능하게 하여, 음악 신호의 미세한 디테일까지 정밀하게 재현하는데 돔 트위터보다 유리하다.
- 멤브레인과 보이스 코일의 통합: 리본 유닛에서는 멤브레인 자체가 보이스 코일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는 복잡한 스프레이 에칭(spray-etching) 공정을 통해 알루미늄 포일에 여러 개의 플랫 코일(flat coil)을 정밀하게 새겨 넣음으로써 구현된다. 이 설계는 기존의 돔 트위터나 콘 드라이버에 비해 기계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효율성과 해상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 강력한 네오디뮴 자석: 리본 멤브레인은 초강력 네오디뮴 자석 사이에서 진동하며 소리를 생성한다. 이 자석은 멤브레인의 미세한 움직임을 정확히 제어하여, 빠른 반응성과 낮은 왜곡을 보장한다.

이런 설계 특성은 우선 멤브레인의 넓은 표면적 및 낮은 질량 덕분에 왜곡이 매우 적을 수밖에 없으며 장시간 청취에도 피로감이 적다. 뿐만 아니라 이런 낮은 질량의 멤브레인과 강력한 네오디뮴 자석은 리본 진동판을 매우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즉각적인 트랜지언트 응답 특성을 얻기에 유리하다. 일반적인 돔 트위터의 경우 베릴륨, 다이아몬드 등 일부 하이엔드 금속 트위터만 낼 수 있는 초고역을 무척 선형적으로 재생할 수 있으나 리본 드라이버는 고가가 아니더라도 50kHz까지 재생하는 모델이 대다수다. 한편 리본 드라이버는 평판형 유닛의 특성으로 인해 간접음이 적으므로 불규칙한 반사로 인한 음악 감상 공간의 2차 왜곡 또한 적을 수 밖에 없다.

Master Line Sourse 2 Gen 2
피에가의 리본 스피커에 대한 연구를 통한 최신 기술이 적용된 것이 바로 Master Line Source 2 Gen2다. 기본적으로 이름 자체가 일반적인 돔 타입의 ‘포인트 소스’가 아니라 평판의 선형 유닛으로부터 배출된다는 면에서 ‘라인 소스’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런 설계의 음향적 특징은 이미 위에서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 제품은 평판형의 리본 드라이버가 채널당 무려 네 개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트위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넓은 드라이버가 채용되었다.

이는 다름 아닌 동축 리본 드라이버다. 피에가는 초창기 트위터만 리본 드라이버로 만들었지만 리본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중역을 재생하는 미드레인지 드라이버를 트위터와 합체시켰다. 마치 KEF나 TAD 같은 곳에서 개발한 것을 리본 드라이버 부문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 리본 트위터(3kHz~50kHz)와 리본 미드레인지(400Hz~3kHz)는 동축(coaxial)으로 배치되어 중고음역의 음원 축이 수직으로 정렬된다. 이는 위상 선형성과 정확한 공간적 이미징을 보장하여, 악기와 보컬의 세부 디테일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MLS 2 Gen 2는 4개의 라인 소스 드라이버 리본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중고음역의 재현력을 극대화한 모습이다.

한편 다이폴(Dipole) 설계도 눈여겨 볼만하다. 동축 리본 드라이버의 후방을 보면 열린 구조를 띠고 있다. 다이폴(쌍극형) 방식을 채택하여 소리가 드라이버의 앞뒤 양방향으로 방출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를 ‘다이폴’ 설계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음파가 공간을 보다 자연스럽게 채우며, 일반적인 스피커보다 더 넓고 깊은 사운드스테이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이폴 설계는 특히 반사가 적은 대형 공간이나 음향적으로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일관된 음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커다란 레퍼런스급 리본 스피커도 저역에 관해선 리본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설명한 리본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리본 드라이버는 저역 재생에 있어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리본 드라이버의 태생적 약점을 잘 알고 있는 피에가는 오랜 시절 리본 드라이버와 최적의 매칭을 보이는 유닛을 직접 개발했다. 그것의 최신형이 바로 UHQD라는 우퍼다. 동축 리본 드라이버 아래로 220mm 직경의 UHQD 우퍼 두 개가 탑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피에가는 후방에 추가로 두 개의 우퍼를 배치하고 있다. 이는 앰프로부터 신호를 받아 작동하는 우퍼가 아니다. 일명 패시브 라디에이터라고 부르는 우퍼로서 앞 쪽에 마련된 액티브 우퍼와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하면서 저역의 확장을 돕는다.
마지막으로 캐비닛은 이전보다 더욱 더 견고해졌으며 저역 성능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스위스 디자이너 슈테판 휘를레만(Stephan Hürlemann)과의 협업으로, 스피커는 정교한 윤곽과 균형 잡힌 형태와 비율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후면의 라멜라(lamellae)는 기술적 역량을 강조하는 동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긴다. 마감 옵션은 매트 실버, 블랙, 화이트, 또는 제브라노(Zebrano) 우드 베니어 등 네 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셋업
이 스피커는 20Hz~50kHz의 넓은 주파수 범위를 커버하여 깊은 저음부터 고음까지 모든 주파수를 재생 가능하다. 감도는 92dB, 공칭 임피던스는 4옴으로, 최대 500W의 앰프까지 매칭해도 좋다. 한편 설치 공간의 유연성도 높은 편이다. 라인 소스와 다이폴 설계는 음파를 집중시켜 방의 반사를 줄이고, 공간적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도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는 방식이다. 피에가는 별도의 룸 튜닝이나 캘리브레이션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벽 근처 배치나 까다로운 음향 환경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장한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어떤 특성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본격적인 시청에 사용한 장비는 아래와 같다.
소스 기기 : MBL 1611F 네트워크 플레이어
프리앰프 : 패러사운드 JC2BP
파워앰프 : 일렉트로콤파니에 AW800M
청음

ROON을 사용해 재생하면서 여러 음질적 특성을 살펴보면 일단 음상은 스피커 중앙 맨 뒤 음향판 쪽으로 펼쳐진다. 나윤선의 ‘Hallelujah’를 들어보면 뎁스(depth), 즉 청취자와 보컬 사이의 거리가 꽤 깊어 무대를 깊게 전망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공간은 청취자에게 안정감 넘치는 시야를 확보해주므로 전체 무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말 그대로 펼쳐짐이 뛰어난 소리다. 한펴 중고역의 질감 표현은 상쾌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모두 소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실체감에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다. 그럼에도 반사음으로 인해 탁해지는 현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몇 가지 포스트밥 재즈를 들어보았다. 그중 닐스 페터 몰바에르 ‘Tlon’이라는 곡에서 이 스피커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일단 낮은 음계의 비트가 시스템 저 뒤편에서 서서히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며 다가오면서 강력한 쾌감을 건넨다. 트럼펫이 펼쳐놓은 무대는 광활한 우주의 그것, 마치 SF 같은 느낌을 준다. 아주 작은 실오라기 같은 소리도 섬세하게 표현해주는 장면에서 ‘부드러운 해상도’란 말이 떠올랐다. 또한 시간축 특성에는 늘어지지 않고 빠른 특성을 보여 뒷맛이 깨끗하다. 오후의 졸음을 깨울 듯한 역동적 아티큘레이션이 빛난다. 반사파로 인한 시간축 딜레이가 거의 없는 리본 드라이버의 힘이다.

최근 금속 스피커들의 경우 그 목적은 분명하다. 드라이버의 운동으로 인해 캐비닛이 추가로 흔들리면서 만들어내는 착색을 없애는 것이다. 피에가는 이 부분에서 그 어떤 스피커 메이커보다 선구자였다. 물론 매지코나 YG 어쿠스틱스와 다른 방식을 취했지만 인클로저로 인한 착색은 거의 없다. 대신 리본 드라이버가 펼쳐내는 선예도는 극에 달한다.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와 뮤지카 에테르나가 함께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면 현의 표면이 손으로 만져질 듯하다. 따스한 여운이나 촉감보다 고해상도의 섬세하고 쿨한 사운드지만 너무 날카롭거나 냉정하게 흐르진 않는다. 이 부분에선 다이폴 설계도 한몫 했다.

사실 리본 드라이버와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동거는 오랜 이야기다. 아포지 같은 풀 리본 스피커가 저역에서 문제를 보이면서 리본, 정전형 스피커를 만드는 메이커들은 저역에 있어서만큼은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피에가 MLS 2 Gen 2에서 중고역과 저역의 시간축 오차로 인한 불편한 동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외에 다이내믹 손실이나 사운드 스테이징의 왜곡도 없어 빠르고 매끈하며 탁월한 리듬, 페이스&타이밍을 선보였다. 아주 크고 풍부한 저역보단 중고역과 균형을 이루며 조화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설계 특성상 후방과 좌우 공간은 충분히 있어야 최적의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다.

총평
피에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소리는 무척 개성이 넘쳤다. 그러나 리본 드라이버와 알루미늄 인클로저 등 시대를 앞서간 설계와 품질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끌지는 못했다. 나조차도 돔 형태의 트위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베릴륨, 다이아몬드 트위터 외에 동축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획득한 후 지금 듣는 피에가는 새롭다. 일반적인, 대중적인 설계에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피에가만의 사운드 철학은 독보적인 미학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물론 그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피에가도 천천히, 그러나 그 세월만큼 켜켜이 진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번 Master Line Source 2 Gen 2는 명백한 증거로서 리본 스피커에서 일가를 이뤄낸 걸작이다.
제품 사양
Design : Aluminum baffle | cabinet with matrix strut
Recommended amplifier output : 20 – 500 watt
Sensitivity : 92 dB/W/m
Impedance : 4 ohms
Frequency response : 20 Hz – 50 kHz
Equipment
4 × line source drivers 211
2 × 220 mm UHQD® bass
2 × 220 mm UHQD® passive membrane
Cabinet
Dimensions (H×W×D) : 168×29×45.5 cm
Weight : 98 kg
제조사 : PIEGA SA (스위스)
공식 수입원 : ㈜ 샘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