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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 하이엔드 사운드의 표상

케프 Blade One M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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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기에서 만나는 최대공약수

처음 KEF의 Blade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해외 매거진에서 처음 보곤 매혹적인 디자인에 반했고, 음질 부분에서도 이전의 대형기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키에 비하면 유닛 개수가 적었고, 좁은 전면 배플엔 높은 키에 비해 상당히 작은 유닛 하나가 중앙에 박혀 있을 뿐이었다. 물론 좌, 우로 베이스 우퍼가 도열해 있었지만 뒤로 칼처럼 휘어진 디자인하며 뭔가 대형기에서 일반인들이 바라는 그것과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오디오를 오랜 시간 접해온 사람들에겐 KEF라고 하면 기껏해야 BBC 규격인 LS 3/5A 모니터 스피커 혹은 레퍼런스 104/2, 105, 107, 그리고 이후의 203, 205, 207 정도가 떠오를 테고, 미래에서 건너온 듯한 Blade 시리즈는 생소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해당 스피커의 디자인은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대표작 ‘공간 속의 새(Bird in Space)’가 현대 조각사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Constantin Brancusi

그나저나, KEF는 왜 하필 이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하긴 Bowers&Wilkins가 노틸러스(Nautilus)를 디자인하면서 그 이름처럼 앵무조개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으니, 그리 생뚱맞은 일도 아니다. 그 기저엔 황금 비율, 즉 피보나치수열이 있었다. 피보나치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트위터를 만든 윌슨 베네시도 있지만, 인클로저 디자인을 앵무조개로 형상화한 건 커다란 도전이자 설계의 측면에서 엄청난 R&D를 수반하는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미니멀 디자인으로 그냥 ‘공간 속의 새’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KEF Blade 스피커의 디자인 의도는 무엇일까? 도대체 그 영감의 이면엔 무엇이 있는지 알아채기 힘들어 보인다.

BW Nautilus min

그러나 이것은 동축의 원리를 알게 되면 충분히 상상 가능한 디자인이 된다. 사실 동축 스피커는 작은 스피커에서 활용하기 좋은 드라이브 유닛 특성을 갖는다. 트위터와 미드 베이스 우퍼가 동일한 축에 위치할 경우 위상, 시간축 왜곡이 적어 근거리에서도 음질 왜곡이 적고 음상, 대역 밸런스가 훌륭하다. 이 때문에 종종 동축을 응용한 스피커 유닛 배치 어레이가 탄생하기도 하는데, 다름 아닌 조셉 다폴리토(Joseph D’Appolito) 박사의 MTM(미드-트위터_미드) 기법이다. 대형기로 갈수록 시간축 특성이 틀어지는 걸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앙에 트위터를 두고 위아래에 미드 베이스 우퍼를 대칭으로 배치한 스피커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동축 유닛이 아니더라도 동축의 개념은 대형기들에서 일종의 최대공약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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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KEF 같은 진짜 동축 유닛의 경우 우퍼가 커지면 트위터의 혼 역할을 하는 우퍼 진동판과 상호 변조 왜곡이 커질 수 있고, 이는 결국 SN비 등 음질 변이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KEF는 대형기를 어떻게 설계해왔을까? 과거엔 전면 상단부에 미드 우퍼와 트위터를 결합한 동축 유닛을 설치하고 하방으로 별도의 우퍼들을 도열시켰다. 21세기 들어 자사의 플래그십 모델에 색다른 설계를 도입했고, 그것이 반영된 것인 바로 Blade 시리즈다. 전면의 좁은 배플에 동축 하나만 탑재하고, 마치 날개깃처럼 캐비닛을 뒤로 길게 뺀 후 옆면에 우퍼를 다발로 탑재한 것. ‘공간 속의 새’가 금방이라도 가볍게 날아가며 지저귀는 소리를 낼 것 같지 않은가?

KEF의 오랜 숙원은 먼저 Muon에서 이뤄졌다. 잭 오클리 브라운(Jack Oclee-Brown)이 이끄는 설계 팀을 중심으로 로스 러브그로브(Ross Lovegrove)의 디자인은 명실상부 KEF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대중에게 선보인 제품은 Blade에서 방점을 찍었고, 메타 물질까지 결합한 12세대 UNI-Q 동축 유닛은 새로운 세대를 견인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디자인의 원형은 그대로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거의 동일한 걸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모되고 진화한 것이 사실이다.

12세대 UNI Q 동축 유닛 min

일단 KEF의 알파와 오메가인 동축 유닛을 살펴보자. 12세대 UNI-Q로 진화한 동축 유닛을 우리는 이미 공전의 히트작이자 현대 모니터 북쉘프의 표준 LS50Meta 모델에서 확인한 바 있다. 필자는 집에서 이 스피커를 하이파이와 홈시어터 프런트 스피커로 사용하는데, 지금도 새벽에 혼자 영화를 보면서 그 핀 포인트 포커싱과 스피드, SN비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의 음원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면서 방사되어 위상 뒤틀림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12세대 UNI Q 동축 유닛 2 min

게다가 후방엔 메타 물질로 만든 흡음 패널이 추가되어 있다. 이른바 MAT 테크놀로지를 투입해 설계한 메타 디스크라는 것으로, 동축에서 발생하는 후면파를 특정 대역에서 99% 흡수해 주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편 이 메타 디스크 외에도 내부 보이스 코일 및 웨이브 가이드 틈새에서 발생하는 아주 작은 공진까지 억제하기 위해 갭 댐퍼를 투입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거의 재설계한 유닛이다. 이 외에 웨이브 가이드 후방의 리브 추가, 모터 시스템의 보강, 서스펜션, 스파이더에 이르기까지, 이번 Meta 버전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KEF가 이 새로운 버전 출시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감탄스럽다.

한편 저역을 재생하는 확실한 역할 분담을 위해 옆면에 채널당 네 개의 베이스 우퍼를 설치했다. 요컨대 가장 많은 진동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우퍼로부터 매우 섬세한 작동 환경을 요구하는 5인치 동축을 분리해 준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커다란 미드 베이스 우퍼에 트위터를 결합했을 때의 해악을 피하기 위한 설계이기도 하다.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보아도 고역을 2kHz에서 끊고, 그 이하 대역을 350Hz로 끊고 있다. 350Hz라면 높은 저역에 가까운 낮은 중역대다. 간단히 말해 UNI-Q 동축 유닛은 중역에만 충실하게 설계되어 있고, 낮은 중역 아래로는 옆면의 베이스 우퍼에서 재생하게 만들어 동축엔 저역 재생에 대한 부담을 거의 주지 않게 한 것이다. 음향적으로 예리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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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9인치 우퍼의 경우도 동축 유닛과의 거리 및 교차 포인트 등 모든 것들을 계산해 옆 면 패널에서의 위치가 결정된다. 또한 저역으로 내려갈수록 중, 고역에 비해 지향성은 비약적으로 낮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인트 소스’, 즉 모든 주파수의 출발점을 일치시켰을 때의 음향적 이점을 최대화하기 위해 싱글 소스 기술(Single Apparent Source)을 접목했다. 우퍼의 위치, 방향 모두 세심하게 조율된 것이다.

한편 Blade One Meta 스피커의 주파수 응답 구간은 보편적인 기준인 +/-3dB 기준 35Hz에서 35kHz에 이르는 광대역이며, 일반적인 룸 환경에선 –6dB 기준 20Hz까지 하강한다. 공칭 임피던스는 4Ω으로 최소 2.8Ω까지 비교적 낮게 하강하며, 감도는 88dB. 최대 SPL(음압수준)은 무려 117dB에 이른다. 3웨이 저음 반자형치곤 스펙으로만 볼 때 아주 만만한 스피커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LS50 Meta 스피커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수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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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이번 테스트에선 소스 기기로 독일 T+A의 MP2000R MKII 모델을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사용하고, 룬(ROON)을 사용해 아이패드로 선곡, 재생하면서 진행했다. 한편 앰프는 최근 몇 년 간 사용해 보았던 인티앰프 중 최고봉이라고 생각했던 버메스터 032 모델을 활용했다. 청음은 청담동 소리샵의 KEF 전용 리스닝 룸에서 이뤄졌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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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의 강점이라면 누가 뭐래도 정확한 음상과 일체의 시간축 뒤틀림이 없는 말끔하고 정교한 정위감일 것이다. 보컬은 정 중앙에 핀 포인트 포커싱으로 맺히며, 중앙 후방에 말끔하게 자리한다. 더블 베이스의 강약 표현이 과감하게 표현됨에도 보컬 및 피아노의 재생음에 영향을 주지 않고 널찍한 거리를 유지하므로, 번지거나 질척이는 부분이 생길 소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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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de는 중고역을 동축에 할당하되, 저역을 별도의 사이드 우퍼에 할당해 동축에의 부담을 줄였다. 동시에 저역에도 일종의 싱글 소스 기술로 위상 시간축 일치를 구현했다. 그 결과로, 이러한 극단적인 딥 베이스 재생에 있어서도 중고역을 훼손하지 않고 전 대역에 걸쳐 뚜렷한 지향 특성을 유지한다. 특히 버메스터 032는 인티앰프임에도 우퍼를 쥐고 타이트하게 재생해낸다.

Max Richter Vivaldi The Four Seasons

각 악기의 주파수 대역이 고르게 분포하고 조화가 가능할 때 우린 악기를 구분하고 진정한 감흥에 빠질 수 있다. 대역 밸런스와 토널 밸런스에 대한 굳건한 레퍼런스, 즉 기준을 몸소 보여주는 흔치 않은 스피커가 Blade다. 각 현악기들이 한 올 한 올 실타래처럼 풀어헤쳐지고 다시 엮어내는 모습은 소리를 통해 이미지를 아주 쉽게 연상시켜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있을지 몰라도, 이만큼 왜곡이 적은 소리는 찾기 힘들 것 같다.

dvorak

최근 하이엔드 스피커들은 큰 덩치에서도 철저히 제어된 저역과 함께, 2웨이 북쉘프나 동축 혹은 정전형과 같은 스피드를 체득하고 있다. KEF의 Blade 스피커도 예외가 아닌데, 조금 다른 양상을 갖기도 한다. 악기를 보다 촘촘히 그려내는 가운데, 각 대역이 섞이면서 탁해지는 현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더불어 화살처럼 꽂히는 탁월한 지향 특성은 대편성 교향곡 녹음에서도 허둥대거나 엉키는 부분 없이 너무나 말끔하고 명료한 시야를 확보해 준다. 마치 컴퓨터로 분석, 제어해낸 소리처럼 약점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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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사람들은 종종 총체적 진실을 보지 못하고 숲이 아닌 나무만 보는 습성이 있다. 스피커에선 유닛의 진동판 소재만 보기도 하고 구경만 보기도 한다. 때론 인클로저 소재가 무엇인지에 골몰하며 크로스오버에 투입된 부품의 질이 모든 소리의 결과를 잠식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도처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사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이끌고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암스트롱처럼 지구를 바라보듯 보아야 그 실체적 진실을 똑바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

스피커란 단순히 양질의 부품 조합이 아닌, “뛰어난 사운드”라는 결과를 위해 모든 것들이 조화롭고 균형 있게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아져야 달성할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Blade One Meta 스피커는 이러한 거시적 관점에서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 엔지니어링이 달성한 최고의 업적이자 일종의 표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사양

Uni-Q driver array:
HF: 25 mm (1 in.) aluminium dome with MAT
MF: 125 mm (5 in.) aluminium cone
LF: 4 x 225 mm (9 in.) aluminium cone,
force cancelling

Frequency range free field (-6dB) : 27Hz – 45kHz
Frequency range typical in room bass response (-6dB) : 20Hz
Frequency response (±3dB) : 35Hz – 35kHz
Crossover frequency : 350Hz, 2kHz
Amplifier requirements : 50-400W
Sensitivity (2.83V/1m) : 88dB
Impedance : 4 Ω (min. 2.8 Ω)
Dimensions – with plinth (H x W x D)
1590 x 363 x 540 mm (62.5 x 14.3 x 21.2 in.)
Weight : 57.2 kg (126 lbs.)
Finishes : Piano Black/Copper, Piano Black/Grey, Frosted Blue/Blue, Frosted Blue/Bronze, Charcoal Grey/Red, Charcoal Grey/Bronze, Racing Red/Grey, Arctic White/Champagne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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