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동명이인이겠지‘
필자는 A4 크기의 영화포스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영화 관람에 관계없이 여유시간이 생기면 극장입구에 비치한 신작영화 포스터를 집어 든다. 그렇게 모은 포스터가 수백 장에 이른다. 2016년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미리 구한 포스터에 “에단 호크”라는 감독 이름이 보이더라. 맙소사. 알고 보니 그는 필자의 선입견과 달리 진짜 “배우 에단 호크”였다.
그의 3번째 연출작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인터뷰 형식으로 만들어진 음악다큐다. 에단 호크가 물색한 인물은 영화계 유명인사가 아닌 은퇴한 피아니스트였다. 인터뷰이가 1927년생이니 다큐가 만들어진 해를 감안한다면 무려 90세에 인터뷰에 참여한 셈이다. 더 중요한 부분은 당시에도 현직 선생이었다는 것이다. 장수직업인으로 한국에는 송해가, 미국에는 세이모어가 있다. 좀 멋지지 않은가.
한 때 미국에서 지명도 있는 연주자로 활동했던 세이모어는 유명세의 덧없음을 통감하고 뉴욕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직업을 택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비현실적인 문장을 스스로 받아들인 사건이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세이모어는 시종 담담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한다. 그의 굴곡진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연주처럼, 자신의 후반기 삶을 안정적인 터치로 다듬어낸 놀라운 인물이다.
이 다큐는 에단 호크와 세이모어 번스타인간의 인터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간 중간 소박한 연주회가 펼쳐진다. 세이모어의 무심한 듯 이어지는 연주는 90년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삶의 열정을 소진했더라도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장르든 연주 테크닉보다는 연주자의 세계관을 중요시하는 필자의 취향과 공감대를 이루는 호수 같은 연주다.
세이모어의 또 다른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이라는 국내 인터뷰집을 추천해본다. 책의 인터뷰어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앤드루 하비다. 2017년 도서출판 마음산책에서 발행.
다음은 다큐에 등장했던 세이모어의 연주곡이다.
Standchen(Serenade) : 프란츠 슈베르트 (1769~1830)
슈베르트의 유작인 가곡집 ‘백조의 노래’에 수록한 곡
Berceuse(자장가) : 프레드릭 프랑수와 쇼팽 (1810~1849)
쇼팽의 유일한 자장가이자 폴란드의 민요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
J.Brahms Intermezzo Op.118 No.2 in A major :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감상을 표현한 마지막 작품
Fantasia in C Minor, K. 475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음악적 전성기인 178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작곡한 작품
Prelude from Cantata “Gottes Zeit is die Allerbeste Zeit” : 요한 세바스찬 바흐 (1685~1750)
장례식에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초기 칸타타곡.
Phantasie : 로베르트 슈만 (1810~1856)
다큐 마지막에 등장하는 세이모어 스타일의 ‘환상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