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간편한 걸 좋아하며 이는 질적인 타협을 감행 하에 이뤄지기도 한다. 음질적으로 손해 보더라도 조금 더 편리한 걸 좋아한다. 소스 기기 쪽만 봐도 그렇다. 시디플레이어를 듣던 게 어제 같은데 요즘은 다들 네트워크 플레이가 안 되면 안 된다. DLNA, ROON가진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블루투스, 에어플레이어는 대응해야 한다. 과거 사놓았던 시디에 먼지가 폴폴 날리기 일쑤다.
간단해진 소스기기는 편의성을 높였지만 반대로 소소한 즐거움을 앗아갔다. 시디피 시절 트랜스포트와 DAC의 다다른 조합 그리고 파워, 인터, 디지털 케이블 매칭까지 신경 쓰면서 듣던 재미가 조금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CD 트랜스포트를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대체하고 DAC를 따로 사용하는 등 분리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도 그렇고. 하지만 네트워크 플레이어에도 DAC가 내장되어 나오는 요즘이다.
앰프도 마찬가지다. 인티 앰프에서 프리, 파워 분리형 그리고 파워를 한 대 더해서 모노 브릿지 접속을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애초에 모노 블럭 형태로 출시된 앰프를 시스템에 도입했을 땐 뭔가 오디오라는 산의 중턱에 올라선 느낌이었고 그만큼 퍼모펀스로 화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로망이라면 바이앰핑이다. 간단히 바이앰핑 기능이 내장된 앰프를 운용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바이앰핑, 액티브 바이앰핑을 해보고 싶다. 채널 디바이더를 쓰고 모노 블록 두 조, 세 조를 운용하는 시스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오디오파일은 인티 앰프도 고사하고 스트리밍 앰프를 선호한다. 아니, 오디오파일이 아니라 그냥 음악 애호가라고 해두자.
하이파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가장 즐거움은 불편함에서 온다. 단 1%의 음질 상승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시도와 모험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요즘 메인스트림 시장은 자꾸만 그 많은 가능성을 삭제해 하나의 기기로 통합하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라지만 타협 없는 통합은 없다. 나조차 많은 최신 올인원이나 축약된 형태의 오디오를 리뷰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메인 시스템은 분리형을 추구한다. 되레 갈수록 더 기기가 많아지고 연결은 복잡해진다. 시대에 역행일까? 하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노하우, 지식이 늘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문득 떠오르는 모노 블럭 파워앰프에 대한 단상. 기억에 남는 모노 블럭 파워앰프를 열거해본다. 직접 구입해 사용해본 적도 있고 리뷰 때문에 테스트해봤던 제품들이다. 다들 정말 좋아했던, 좋아하는 모델들이다.
앤틱 사운드랩 Monsoon & 허리케인
아마도 틸 스피커 때문이었으리라. CS2.3 등 틸 스피커는 동축 미드레인지 덕분에 매우 또렷한 음장과 입체적인 홀로그래픽 음장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음색, 약간 따딱한 음결이 운용의 난제였다. 이 때 앤틱 사운드랩의 몬순이 보완해주었다. 한 여름 KT88을 채널당 네 개씩 썼던 앰프를 들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들려오는 음악에 미소를 짓던 내 모습이 연상된다. 허리케인은 더했지만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모노블럭 앰프 입문이 이런 진공관 앰프라서 이후 모노에 대한 PTSD가 한동안 남긴 했다.
엑시무스 M150, M5
에이프릴뮤직이 한창 다양한 제품을 쏟아낼 때였는데 나 또한 그 때 여러 제품들을 경험하면서 재밌게 즐겼던 것 같다. 가벼운 호주머니 덕에 해외 메이커의 모노 블럭은 언감생심이었고 모노 블럭 파워는 쓰고 싶었는데 마침 엑시무스라는 브랜드로 M150 그리고 이후 M5가 출시되었다. 둘 다 모두 가격을 생각하면 황송할만큼 좋은 소리를 내주었다. 한편 제짝 프리앰프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 당시 오디오 리서치, BAT 같은 하이브리드 진공관 앰프와 재밌게 사용했다.
코드 SPM1400E
코드 파워앰프는 참 여럿 사용했던 것 같다. 토템 마니2 스피커를 미국의 오디오 거래 사이트 오디오곤에서 공수해 와서 사용하던 때였다. 한국에 지부를 가지고 있던 회사 임원이 회사와 계약된 전용 캐리어를 통해 보내주었는데 지금도 당시 마니2와 만남의 설렘이 기억난다. 아무큰 당시 열 종류 정도의 파워앰프 중 가장 뛰어난 구동력과 매칭을 보여주었던 게 코드 SPM600이었고 코드의 팬이 되었다. 이후 다양한 코드 파워앰프를 사용해봤는데 베스트는 SPM1400E다. 물론 최신 Ultima 시리즈가 더 좋지만 SPM1400E에 필적할 힘을 얻으려면 4천짜리 Ultima3 정도는 써야한다. 토템, ATC 외에 B&W 같은 스피커와 매칭도 매킨토시 같은 앰프보다 훨씬 더 좋은 매칭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앰프.
댄 다고스티노 Momentum/Progression
크렐의 그 댄 다고스티노가 크렐을 나와 설립한 브랜드. 처음 Momentum이 나왔을 땐 저역이 무르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많았지만 역시 댄 다고스티노였다. 이후 M400가지 발전하면서 힘과 음색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굉장히 투명한 음색에 힘을 더한 Progression은 YG 어쿠스틱의 네 덩어리 플래그십 스피커도 들었다 놓았단 할 만큼 걸출했다. 그 영롱한 디스플레이 창을 보고 있으면 더 이상의 앰프가 필요한가? 되묻게 된다. 확실히 미국 스피커 메이커와 두루 잘 어울린다. 다만 너무 제작이 더뎌 주문해도 한세월 기다려야 한다고..
MSB M500/M205
MSB는 DAC만 잘 만드는 메이커로 생각하기 좋지만 DAC만큼 앰프를 잘 만든다. 사실 예전에 나왔던 고슴도치 같은 디자인의 앰프보단 현역기들이 확실히 좋아졌다. M500을 들어보고 반했고 이후 현실적인 가격에 조금 더 가까운 M205를 들어보고 다시 확신이 섰다. 생김새만 보면 차갑고 건조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들어보면 질감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 곱다. 그만큼 열도 꽤 난다. 게다가 MSB에선 자사의 DAC 중 프리 옵션이 포함된 모델과 직결을 권장해 프리앰프 구입 예산도 절약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MSB Analog DAC을 써보면 이해가 간다.
MBL 9008A
MBL의 무지향 스피커로 유명하지만 이에 걸맞은 앰프와 소스기기도 만든다. 특히 101E MK2 같은 대형기로 가면 앰프 매칭에 답이 잘 안나온다. 오디오 매칭이 정말 오묘한 것이 단순히 스펙만으로 예상이 안 된다는 것. MBL 스피커엔 MBL이 답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중, 하위 스피커는 MBL 외 다른 스피커와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상위 모델로 갈수록 MBL 파워앰프가 제 맛을 내준다. 하지만 그 반대로 MBL 파워앰프와 다른 메이커의 스피커와 상성은 좀 까다로운 면이 있다.
일렉트로콤파니에 NEMO AW600
아마도 최근 들었던 앰프 중에선 가장 개성 넘치는 소리를 내주었던 모노블럭이 아닌가 한다. 유튜브 촬영하면서 AW250R은 드보어 피델리티, PMC 스피커와 많이 들어봤지만 NEMO는 레벨이 몇 단계 더 올라간다. 그만큼 일렉트로콤파니에만의 음색적 특징도 더 드러나고 스피커 제어력도 상당히 많이 올라간다. 일렉트로콤파니에는 초창기 클래스 A 앰프부터 여러 모델을 사용해봤는데 갈수록 매력적이다. 단, 자기 음색이 뚜렷해 전체 시스템의 음색을 지배하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음색만 자신과 맞으면 대체 불가능한 파워. 가격도 미국 하이엔드 앰프들에 비하면 합리적인 편이다.
클라세 Delta MONO
클라세는 오디오 입문 시절 정말 좋아했던 브랜드다. CA-100, CA-200, CA-300 등 구형부터 CA-201 등등. 게다가 프리앰프도 CP-50, CP-60 등을 매칭해 재밌게 즐겼던 기억이 있다. 상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음색에 저역 제어도 크렐, 코드, 브라이스턴과 함께 가장 좋았던앰프. 몇 차례에 걸친 리뷰와 오디오 박람회 시연을 통해 접해본 현역 Delta 모노는 예전의 클라세가 아니었다. 훨씬 더 고운 입자와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그리고 여전히 당당한 저역 제어 등 모난 데 없는 레퍼런스 앰프로 태어났다. 어떤 특징적인 개성은 없지만 한번 들이면 웬만해선 파워앰프는 잊고 살게 될 정도로 교과서 같은 사운드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