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앰프란 무엇인가
파워앰프와 프리앰프 매칭을 고민하며 다다른 프리앰프를 경험해오면서도 막상 오디오 시스템에서 프리앰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소스 기기와 파워앰프 사이에서 프리앰프 방황을 하다가 쉽게 타협하면서 인티앰프 혹은 소스 기기에 포함된 볼륨 기능을 사용하는 것으로 허무하게 마무리하는 경우도 본다. 하지만 프리앰프는 엄연히 별도의 독립된 기기로 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프리앰프는 소스 기기와 파워앰프 사이에서 게인, 임피던스 매칭을 제어하며 출력 감쇄를 통한 볼륨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소스 기기가 네트워크 플레이어 한 대뿐이니 셀렉터가 필요 없다고 프리앰프를 지우는 일은 어리석다. 그건 마치 24비트 고해상도 음원을 들어도 결국 손실 포맷을 감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때 프리앰프 삼매경에 다양한 프리앰프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종종 프리앰프 선택의 고민에 빠지곤 한다. 마크 레빈슨 38, 380 같은 모델이야 많이 들어봤고 한 때는 마크 레빈슨 26SL이 나의 로망이었다. 물론 나중에 사용한 제프 롤랜드 시너지에서 가장 큰 만족을 느끼기도 하면서 마크에 배신을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골드문트 미메시스 2a는 귀족적인 고급스러움으로, 스펙트랄 DMC 시리즈는 혈관을 뚫어주는 듯한 쾌감을 안겼다. 스레숄드나 패스 등 넬슨 패스의 프리앰프는 말 그대로 시그널을 그대로 패스한 듯 맑고 순수했다. 오디오 리서치, BAT는 딱딱한 트랜지스터에 온기를 불어넣어주었으며 오더블 일루전스 프리앰프는 프리앰프가 어느 정도까지 시스템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조상 777
그러던 중 버메스터의 프리앰프를 알게 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프리앰프에 대한 정의는 완전히 지워버리고 다시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프리앰프가 해낼 수 있는 기능은 물론이며 소리에 대한 버메스터의 완벽주의적 철학은 소릿결 하나하나에 녹아났다. 프리앰프가 시스템을 완벽히 지배하는 듯 마치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지휘자, 마에스트로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 프리앰프는 바로 808 프리앰프가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리앰프가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엔 777이라는 전대미문의 모델이 존재했었다. 일종의 프리퀄이라고 해야 할까? 버메스터의 모델명은 거의 모두 숫자로 이루어져있고 이는 마치 암호명처럼 의미를 담고 있다. 777 프리앰프는 다름 아니라 1977년 7월에 출시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버메스터의 설립연도를 보면 1978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도 777 프리앰프는 버메스터의 설립을 추동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만큼 777은 버메스터 역사에서 상징적인 존재이자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조상 같은 모델이다.
30주년을 기념하다
버메스터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숫자 777. 그리고 30년이 지난 2007년 버메스터는 바로 그 777 프리앰프의 출시를 기념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 프리를 출시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하는 것일까? 그 모델은 바로 077이라는 프리앰프로서 최근 수년간 부단히 시청했던 프리앰프 중 아마도 가장 고가의 프리앰프일 것이다. 과연 디터 버메스터가 젊은 패기와 전기, 전자 공학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개발했던 777에 대한 기념작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성능을 보여줄 것인가? 여러 모로 기대를 모으게 만들었다.
우선 077 프리앰프를 마주하면 크롬 도금된 전면 패널이 멋지게 반짝이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메스터의 오랜 마감 특성으로 소유욕을 자극한다. 상단에 버메스터 이름이 우아하게 새겨져 있으며 전면 패널의 모든 글씨들도 음악으로 새겨 넣어 포인트를 주었다. 프리앰프는 총 두 개 섀시 안에 회로를 분리했다. 예상했겠지만 레퍼런스 레벨 프리앰프의 오랜 습관으로 전원부를 분리한 것. 전기적 그리고 물리적 분리를 통해 신호 순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려는 설계 패턴이다. 전원부는 거의 웬만한 하이엔드 파워앰프나 인티앰프에 적용해도 될 만큼 넉넉한 용량의 트랜스포머와 커패시터 뱅크로 꽉 차 있다.
본체로 시선을 옮기면 볼륨 노브와 입력 선택 노브가 좌/우를 가르고 있으며 중간엔 심플한 디스플레이 창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중앙 하단에 최근 앰프들에서 보기 힘든 토글 스위치가 시선을 빼앗는다. 과거부터 버메스터가 만들어왔던 기기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토글 스위치 디자인을 버리지 않는 온고지신의 미덕이 엿보인다. 이 스위치를 통해 버메스터는 다양한 기능을 조절할 수 있게 설계했다. 예를 들어 입력 감도를 –6dB에서 +12dB까지 조절해 입력 소스에 따른 청감상 볼륨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기도 하다. 더불어 출력을 Low, High 두 개 중 선택해 소스기기, 파워앰프 사이에서 프리앰프의 역할에 충실한 제어 센터 역할을 해준다.
후방으로 가면 다양한 입/출력단이 규칙적으로 도열해 있다. 우선 라인 레벨 입력단이 총 여섯 조가 보이며 우측으로 옵션 입력단이 보인다. 옵션의 경우 원래 MM, MC 포노단 또는 DAC에서 선택이 가능한데 이번에 시청한 기기는 MC 전용 포노 옵션을 설치해놓은 모습이다. 그런데 어디를 보아도 RCA 단자가 아닌 XLR 단자들 뿐이다. 제프 롤랜드나 BAT 등 과거 오직 XLR 입력단만 허용하는 프리앰프들처럼 오직 XLR 입력만 사용하라는 명령처럼 보인다. 사실 풀 디스크리트 회로, 풀 밸런스에서 RCA 입/출력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나 다름없긴 하다. 하지만 편의성을 위해 별도의 RCA/XLR 어댑터를 제공하므로 RCA 출력만 있는, 특히 턴테이블과 연결시에도 연결은 어렵지 않다. 한편 출력은 프리 아웃 및 녹음용 출력 등 두 조를 지원하며 이 역시 모두 XLR 단자만 지원한다.
내부 설계는 마치 첨단 도시의 모습을 헬기에서 촬영한 듯 일목요연하다. 전원부는 모두 별도의 전원부 안에 가두고 그 외에 입력, 증폭, 출력단을 빼곡히 채워 넣고 있어 보기만 해도 시각적으로 포만감이 전해온다. 세부적인 설계 특징을 공개하고 있진 않지만 일단 집적 칩셋을 사용하지 않은 풀 디스크리트 방식이며 풀 밸런스드 회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클래스 A 증폭을 채택한 프리앰프로서 프리앰프의 심장에 X-AMP2 모듈을 심어놓은 모습이다. 더불어 DC 커플드 회로로 구성해 입력된 신호를 가감 없이 증폭, 소스기기로부터 받은 신호를 최대한 손실, 왜곡 없이 증폭, 파워앰프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청음
이번 테스트는 소리샵 청담점 제 1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파워앰프는 버메스터 218 스테레오 파워앰프로 순정 매칭을 시도했으며 소스 기기는 T+A의 MP3100HV를 사용해 ROON으로 재생했다. 스피커는 레퍼런스급 앰프 라인업임을 감안해 최대한 성능을 발휘해볼 수 있도록 윌슨 베네시의 레졸로션 스피커를 매칭했다.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들어본 경험이 있는 윌슨 베네시 레졸루션은 버메스터 앞에서 마치 정신이 번쩍 든 듯 에지 있고 또렷한 사운드로 화답했다. 예를 들어 라드카 토네프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를 들어보면 고해상도로 펼쳐지는 보컬 음색이 선연하게 공간을 채운다. 시청실의 조도가 높아진 듯 음원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속 시원하게 녹음의 민낯을 분해해 보여준다. 매우 순하고 자연스러운 사운드로 레퍼런스급 경지에 오른 레졸루션이지만 보컬의 딕션이 더 또렷하고 텐션을 높인 듯 변화가 크다.
해상력의 기준은 얼마나 작은 소리까지 세밀하게 재생할 수 있는가라고 규정해도 될 것이다. 이런 가정 아래 듣는 라이브 레코딩은 그 작은 소리들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디테일이 스케일이라는 말이 있듯 그 작은 디테일이 모여 스케일을 키운다. 예를 들어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를 들어보면 라이브 레코딩 치곤 깨끗한 녹음이어서 공연 녹음 같은 맛이 별로 없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버메스터로 재생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청음실이 콘서트 현장의 앰비언스로 가득 찬다. 프리앰프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감 없이 전해 주냐의 차이다.
버메스터는 매우 치밀하고 텐션이 높은 사운드로 한 번 들으면 한동안 귓가에 그 짜릿한 사운드의 잔상이 꽤 오래 남는다. 끝선이 날카롭지만 피곤하지 않고 음원의 내부를 모두 보여줄 만큼 해상도가 높지만 청감상 자극적이진 않다. 예를 들어 닐스 로프그렌의 ‘Keith don’t go’를 들어보면 기타 튕기는 소리가 매우 날렵하게 시작해 딱 알맞은 잔상만 남기고 깨끗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밋밋하지 않고 현장의 앰비언스와 특유의 기타 톤이 진하게 남는다. 이후 드럼 또한 무적 묵직하게 강타한다. 매우 빠른 특성에 리듬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앰프, 특히 프리앰프가 자신의 실력을 끝까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대편성 교향곡을 큰 볼륨으로 들을 때일 것이다. 낮은 레벨의 소리부터 아주 큰 소리까지 첨예한 강약 대비 그리고 거대한 사운드 스테이징을 말끔하게 정리해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줄 책무가 프리앰프에 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을 재생해보면 좌/우는 물론이면 전/후 심도가 세밀하게 펼쳐진다. 특히 전/후 거리 표현에서 밋밋하거나 뭉개지는 프리앰프도 종종 있지만 077은 여러 겹으로 펼쳐지는 전/후 레이어링으로 인해 현장의 입체감을 고스란히 전해온다.
총평
과연 1970년대엔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각 분야에서 활약한 것일까? 특히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에서도 1970년대생 메이커가 이 분야에 커다란 혁신을 일으키면서 격동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그 중 버메스터는 독일 출신으로 정밀 의료 관련 기술부터 시작해 음악 활동을 통해 오랜 시간 단련된 감성이 모두 저수지처럼 모인 브랜드였다. 수장 디터 버메스터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이룩했던 혁명에 가까운 회로, 설계 철학은 지금도 버메스터 안에서 활발히 숨쉬고 있는 모습이다. 1977년 버메스터의 설립을 추동했던 777 프리앰프 그리고 이를 이은 30주년 기념작 077 프리앰프는 그래서 특별하다. 요컨대 디터 버메스터에 바친 30주년 오마주에 다름 아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TECHNICAL DETAILS
Weight 25 kg (55.1 lbs)
Width 450 mm (17.8“)
Height 156 mm (6.2“)
Depth 346 mm (13.7“)
Inputs 6 XLR / 1 RCA
Phono Input optional MM / MC
Outputs 1 XLR, 1 XLR ( variabel / fix)
Head phone jack 2×6,3 mm, auf 2 Zonen verteilbar
Optional modules Phono MC / MM, DAC,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