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 오디오가 다른 백색 가전과 구별되는 점은 그것은 음악이라는 문화 컨텐츠를 재생한는 데 사용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능 뿐 아니라, 성능 이상의 가치를 가져야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단순 SN비나 전고조파왜곡, 댐핑 팩터 및 다양한 포맷에 대한 대응과 유저 인터페이스 등 기능면에서의 사용자 경험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음악에 대한 그들만의 깊은 이해와 표현 방식, 제작자의 음악과 하드웨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및 통찰이 곁들여졌을 때 정말 소장할만한 오디오가 완성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오디오 브랜드들은 항상 그래왔고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선도했다. 유려한 섀시 디자인에 당시 상상도 못했던 기판 소재와 마치 기획 도시를 항공사진으로 찍든 듯한 모습의 철저한 구획 분리 및 시그널 패스. 철저한 전원부 간섭 배제와 좌/우 채널 분리 설계는 물론이며 모든 액티브 소자들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전자기적 노이즈 억제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단순 소비재에서 명품,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마크 레빈슨, 크렐, 제프 롤랜드, 와디아 등 하이엔드 오디오는 그렇게 한 시대를 빛냈다.
최근 몇 면간 중국의 일부 브랜드들의 중, 저가 제품 공세는 그 이전 세대 하이엔드 브랜드가 오랜 시간 일궈왔던 걸 뿌리채 뒤흔들었다. 공장처럼 찍어 나오는 그네들의 오디오는 도식적인, 보여주기식 스펙과 목적이 불분명한 카피캣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 중, 저가 중국 브랜드의 영혼 없는 음향 가전에 지친 일부 정통 하이파이 브랜드는 이제 그들과 분리되고 싶어했고 하이엔드를 지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란츠의 하이엔드 승부수
최근 마란츠의 행보를 보면 이들 또한 네임오디오 등 정통 하이파이이 브랜드가 그렇듯 하이엔드 지향의 고가의 럭셔리 제품군을 어필하고 있다. 1950년대 미국 뉴욕에서 설립되어 일본 D&M 홀딩스로 병합된 이후 사운드유나이티드와 마시모를 거쳐 이젠 바워스&윌킨스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마란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하이파이 입문을 도왔고 대체로 중, 저가의 실용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시대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마란츠가 선택한 길은 고가의 럭셔리 하이엔드 지향 라인업의 출시다. 그리고 총 세 개의 레퍼런스 10 라인업을 공개하면서 국내에서도 이를 기념하는 론칭 쇼케이스가 열렸다.
모델 10 인티앰프
우선 모델 10 인티앰프가 라인업의 중심으로서 포문을 열었다. 매우 두터운 섀시는 모두 알루미늄을 깎아 제작한 것으로 하위 모델과 확실히 구분되는 마감 퀄리티와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사한다. 내부를 보면 레퍼런스 모델 10이 단순히 과거 마란츠 앰프의 기술과 설계를 답습하면서 몸집만 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마란츠는 이 세 개의 모델을 통해 앞으로, 미래로 전진해나가는 데 필요한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라인업 쇄신을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앰프 내부는 3층 구조로 설계해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부분을 격리시켜 설계했다. 말이 인티앰프지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를 하나의 섀시에 담은 모습이다.
흥미로운 건 파워앰프 부문이다. 기존에 하이펙스 모듈을 사용해 모델 30 같은 인티앰프를 설계한 전력이 있는 마란츠다. 최근 전통적인 클래스 AB 증폭을 고수하던 네임오디오도 클래스 D 앰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걸 볼 때 이젠 클래스 AB가 중, 상급 앰프에서도 대세로 자리잡는 모습. 마란츠도 이 대열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퓨리파이의 클래스 D 증폭 모듈을 탑재하고 나섰다. 그러나 단지 퓨리파이에서 제작한 모듈을 구입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퓨리파이와 공동으로 새롭게 설계, 제작해 제작한 모듈을 투입했다고 한다.
한편 다양한 입/출력단은 RCA 및 XLR 입력을 지원하고 있으며 홈시어터 바이패스 및 포노단, 레퍼런스급 헤드폰 출력단까지 마련한 전천후 인티앰프다. 특히 포노단 같은 경우 MM, MC 카트리지에 모두 대응하는 건 기본이고 MC 카트리지의 경우 다양한 로딩 임피던스에 대응해 활용폭을 넓혔다. 스피커 출력단도 여유있게 두 조를 마련해놓아 스피커를 동시에 두 조 연결 후 A/B 전환, 선택해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진지한 오디오파일에겐 가장 솔깃한 기능을 마련해놓았다. 다름 아닌 바이앰핑 기능이다. FCBS라는 기능을 활용하면 바이앰핑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참고로 상판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어 심미적 만족감을 더했다.
SACD 10 SACD/CD 플레이어
마란츠는 기존에 SA-10이라는 모델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비슷한 이름으로 다시 한번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혀 다른 레퍼런스 SACDP를 내놓으면서 레퍼런스 10 라인업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일단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은 마란츠 자체 제작이다. 세계적으로 고급 트랜스포트 부문에서 메커니즘을 설계, 생산 가능한 곳은 에소테릭 및 마란츠 정도가 전부다. 그 중 에소테릭은 대외 브랜드에 대한 판매를 중단하면서 최근 영, 미권 하이엔드 브랜드도 마란츠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SACD 10에서도 당연히 자사 메커니즘을 사요해 굉장히 정밀한 데이터 리딩 및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음원 재생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트랜스포트 부문이 전체 SACDP 성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마란츠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은 부드러운 로딩 인터페이스는 물론 정밀한 리딩 성능 및 우수한 음질로 수천만원대 하이엔드 소스 기기에도 탑재되는 모델을 탑재했다. 한편 내장 DAC 또한 마란츠 고유의 MMM(Marantz Musical Mastering) 기술로 제작해 사용하고 있으며 HDAM 이라는 전압 증폭 서킷을 채용해 음질을 한껏 높였다.
한편 네트워크 플레이어 사용자 또는 PC 등 외부 음원 트랜스포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USB, HDMI ARC 입력 등 다양한 디지털 입력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마란츠에서 공개한 내부 설계를 살펴보면 디지털 파트와 아날로그 파트에 별도의 전워부를 독립적으로 설계내놓고 웬만한 파워앰프에 적용할만한 트랜스포머도 각각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 2층 구조에 전원부와 신호 이동 경로 등 모든 부분에서 전기적 간섭을 피하며 정공법적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CD라는 물리매체를 읽어들이는 기능을 가진 기기인만큼 섀시 진동 억제에 각별히 신경을 쓴 모습이 역력하다.
Link 10n 스트리밍 프리앰프
마란츠는 데논과 함께 최근 몇 년간 네트워크 스트리밍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네트워크 관련 모델을 출시해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블루사운드 등 여타 네트워크 전문 메이커처럼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 HEOS를 구축해놓고 꾸준히 업데이트 중이다. 초창기엔 기능이나 편의성, 속도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현재는 상당 부분 업그레이드되어 사용하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어보인다. 그리고 결국 레퍼런스급 네트워크 플레이어 개발에 자신감을 얻어 출시한 것이 Link 10n으로 역시 레퍼런스 라인업 안에 이름을 올렸다.
마란츠에서 공개한 내부 설계를 보면 SACD/CD 플레이어인 SACD 10에 버금가는 설계 공법을 선보이고 있다. 네트워크 스트리밍 관련된 기능들은 여타 최신 모델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다양하다. 에어플레이 2, 타이달 커넥트 등 다양한 스트리밍 프로토콜을 지원하며 ROON 레디 제품이다. 한편 USB 입력에 더해 광, 동축 같은 다양한 디지털 입력단도 대응한 DAC로만 사용도 가능한 팔방미인이다. 더불어 풀 컬러 TFT 디스플레이 창 등 최신 트렌드에 적응하려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건 이 제품의 설계 컨셉은 네트워크 스트리밍 DAC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부에 거의 일체형 단독 아날로그 프리앰프에 버금가는 회로를 탑재했다. 모델 10의 프리앰프 부문과 대동소이할만한 프리앰프 섹션으로 보이는데 전압 증폭단에도 HDAM-S3 등 마란츠의 독보적인 최신 서킷을 사용했다. 더불어 포노단도 MM/MC 모두 대응하므로 전용 프리앰프 겸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사용해 파워앰프 혹은 액티브 스피커와 직결해 시스템을 셋업할 수도 있다. 마란츠의 레퍼런스급 프리앰프가 내장되어 있으며로 RCA, XLR 출력은 물론이며 RCA, XLR 입력도 지원한다.
마치며
마란츠는 20세기 중반 뉴욕에서 사울 마란츠가 설립했다. 진공관 시대를 거쳐 트랜지스터의 시대까지 아우르면서 시대를 종횡한 브랜드다. 매킨토시와 함께 미국 하이파이 앰프 부문의 양대 산맥이었던 그들이다. 디지털 시대엔 필립스로 편입되어 디지털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인수, 합병을 거치면서 일본 브랜드로서 거듭났고 이후 줄곧 고급기보단 중, 저가 제품군에서 활약하면서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오디오 입문을 도왔다. 필자 또한 마란츠로 본격적인 하이파이 오디오 입문을 거친 세대다.
이번 레퍼런스 10은 이제 마란츠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 정통 하이파이 브랜드가 자본에 흡수되면서 자체 고유의 디자인, 성능, 개성 및 헤레티지까지 퇴색되기도 하는 현재, 마란츠는 되레 더욱 더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한편으로는 최신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성능을 극단적으로 높이면서 마란츠의 저력을 펼쳐보이고 있다. 조만간 직접 테스트해볼 날을 기대하면서 런칭 쇼케이스 행사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