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선구자들
언제부턴가 음악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국내에서는 벅스, 멜론 등이 있고, 해외에서는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등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끌어들이며 자신들만의 생태계 안에 가두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LP 같은 아날로그 포맷이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도 아날로그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몇 년간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요즘 들어서는 오히려 다시 CD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옛날 카세트 테이프를 모으는 움직임도 보인다.
어쨌든 대세는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스트리밍의 평균 음질은 CD나 LP에 비해 오히려 낮은 방향으로 잡혔다. Flac 등 무손실 압축 포맷이라는 이름 아래 고음질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무손실 압축 파일인지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게다가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라는 하드웨어적인 재생 방식은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침투하는 전자기 노이즈의 영향으로 쉽게 더럽혀지고 왜곡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오디오파일들은 복잡하게 얽힌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에 어떻게 하면 고음질로 음악을 즐길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우선 불필요한 것은 제쳐두고, 일단 Tidal이나 Qobuz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을 권한다.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도 과거에 비하면 음질이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현재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중 가장 좋은 음질을 제공하는 곳은 이 두 서비스가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역사를 짚어보다 보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을 선도적으로 개척한 브랜드는 린과 메리디안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즐기는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근간은 모두 이 두 브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런던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CDP 생산 종료를 발표한 린은, 2010년 플래그십 모델 CD12를 단종시키며 CDP 생산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이미 2007년 Klimax DS를 출시하면서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디지털 소스 기기의 미래에 대해 확고한 진단을 내린 상태였다. 바야흐로 오디오파일을 위한 고음질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메리디안의 야심, Sooloos의 출현
한편 메리디안은 Sooloos 시스템을 인수·통합하면서 네트워크 기반 스트리밍 서버를 본격적으로 구현했다. Sooloos를 통해 메리디안은 터치스크린 등 직관적인 컨트롤과 네트워크 재생 기술의 기반을 다지며, 이후 메리디안 디지털 시스템의 마스터플랜을 구축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고, 무손실 음원 서비스는 더욱 요원한 시기였다.
알다시피 린은 꾸준한 기술 개발과 연구를 통해 Klimax, Akurate, Selekt 같은 DS 시리즈로 네트워크 스트리머의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 하지만 메리디안 Audio의 역사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네트워크 스트리머를 개발하기도 했으나, 메리디안은 액티브 스피커와 카오디오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하이엔드 오디오 사업 쪽으로는 오히려 메리디안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예가 Roon Labs다.
메리디안은 2000년대 후반 Sooloos라는 디지털 음악 서버·라이브러리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며 이 분야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15년, Sooloos의 핵심 멤버였던 에노 반더미어(Enno Vandermeer)는 함께 일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과 함께 메리디안에서 독립해 Roon을 설립했다. 그는 메리디안이 Sooloos를 인수한 직후부터 해당 시스템을 기반으로 고품질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온 총괄 책임자였다. 그의 이탈은 메리디안에게 큰 타격이었지만, 반대로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고음질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방대한 음원 라이브러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편리하게 컨트롤하고자 했던 전 세계 오디오파일들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Sooloos에서 Roon으로, 혁명의 시작
Roon은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음악 라이브러리 전체를 하나의 아름다운 인터페이스로 통합하는 플랫폼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이 NAS 등에 저장한 로컬 파일을 정리하는 데 매우 편리하다. 모든 음원이 자동으로 풍부한 메타데이터(아티스트 바이오그래피, 앨범 크레딧, 가사, 리뷰, 사진 등)와 연결된다. 또한 Tidal과 Qobuz, 인터넷 라디오를 하나의 라이브러리로 통합 관리하고 플레이리스트로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것이 큰 강점이다.
Roon이 사용하는 핵심 프로토콜은 RAAT(Roon Advanced Audio Transport)다. Roon에서 자사 인증 기기를 통해 음원을 재생할 때 사용하는 전용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제한이 있다. RAAT로 재생하려면 Roon에서 인증한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증 제품을 ‘Roon Ready’라고 부르며, Roon Ready 기기를 사용하면 bit-perfect(완전 무손실) 고해상도 전송(최대 32bit/768kHz PCM, DSD512 지원)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 상에서 음질 저하 없이 안정적으로 전송하면서 Roon만의 뛰어난 인터페이스를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멀티룸·멀티존 재생이 가능해 집 안 여러 기기를 동기화하거나 개별 재생할 수 있으며, AirPlay, Chromecast, Sonos 등도 지원한다. Roon은 업데이트가 잦은 편인데, 이 때문에 오디오파일들 사이에서 음질 차이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꾸준히 업그레이드되는 Roon을 사용하다 보면 엔지니어들의 기술력과 노력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급 DSP 처리 기능도 제공한다. 업샘플링, Parametric EQ, 크로스페이드, 컨볼루션(룸 코렉션), 헤드폰 프리셋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에 맞게 세팅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사실 전통적인 하이파이 오디오 제조사나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네트워크 스트리밍 시대에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리모트 앱 구현이었다. 그래서 Roon은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기 힘든 오디오 메이커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가 되었다. Roon Ready 인증만 받으면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어를 출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여기에 모바일 전용 앱인 Roon ARC를 통해 외부에서도 자신의 라이브러리(Tidal, Qobuz 포함)를 고음질로 스트리밍할 수 있게 된 것은 Roon을 현존 최고 수준의 하이파이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주었다.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탐험’하다
음악을 처음부터 음원 스트리밍으로 즐기기 시작한 세대가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LP나 CD로 음악을 듣던 세대도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각자의 감상 방식과 기준을 쌓아왔다. 전 세계 다양한 음악만큼이나 감상자들도 여러 세대에 걸쳐 혼재된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피지컬 포맷에서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의 이행은 겉으로 보기엔 빠르고 편리하게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치열한 고민과 정교한 엔지니어링이 필요했다. 음악을 듣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과정이다. Roon은 그만큼 섬세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머신러닝 기반 추천 기능인 Valence 등은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탐험한다”는 Roon의 철학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