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가장 보수적인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무려 네 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건 아카데미의 변화를 전 세계에 공표하는 것과 동시에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수자, 빈부차 등에 관해 미 자본주의가 갖는 여러 문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가진다.
봉감독의 말대로 아카데미는 다른 의미로 로컬이었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영화 외엔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전 세계적인 영화 시상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정 기간 이상 스크린에 올라야했고 비영어권 국가의 영화가 상을 수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로컬을 벗어나 비주류, 소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는걸 스스로 깨달은 듯.
각설하고 예전에 디브이디프라임에 올라왔던 봉준호 감독 인터뷰와 홈시어터 룸 탐방기가 떠올라 다시 읽어보았다. 내 리스닝 룸과 분위기가 참 흡사하다. 역시 수천장의 블루레이 컬렉터로서 방의 풍경에서 영화광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 소감을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래와 같은 수상 소감은 그냥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도 단 하나의 상도 타지 못한 거장 마틴 스콜세지에게 존경을 표하며 카메라 샷을 집중시키게 만든, 결국은 일동 기립박수를 만들어낸 그의 재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이라는 영화 제목을 빌려 와 영광을 함께 나누자는 말 하나하나엔 한국인의 겸양이 담겨있었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 중 가장 뛰어난 방법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 속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바로 마킨 스콜세지 감독이 하신 말씀입니다.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입니다”
“제 영화를 아직 미국의 관객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해 주었던 쿠엔틴 형님 정말 사랑합니다.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샘이나 전부 존경하는데 오스카가 허락한다면 이 상을 ‘텍사 전기톱’으로 잘라서 5등분해서 나누고 싶네요” – 봉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