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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우퍼의 한계를 허물다

REL NO.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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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시어터와 하이파이 그 사이

하이파이 오디오를 20년 넘게 리뷰하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개인적인 취미로도 일삼아 왔지만 꼭 하이파이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하이파이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면 미시 세계와의 싸움이다. 전원, 케이블, 진동 제어 등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물론 종종 기기를 바꾸어 변화를 추구하지만, 결국 섬세한 기기 세팅과 룸 어쿠스틱 등에 이르기까지 미시적인 관찰과 섬세한 세팅을 추동한다. 자신이 원하는 음색과 대역 밸런스, 공간에서 오직 2채널이라는 도구로서 3차원의 입체감을 얼마나 생생하게 재현하는가에 대한 싸움은 고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종종 외도하는 곳이 홈시어터 영역이다. 홈시어터는 사실 하이파이가 주력인 내게 어떤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주어지지 않는 자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적당한 예산 안에서 세팅하여 종종 내 마음대로 각 채널의 dB를 조절해 즐기기도 하고, 프런트 스피커를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에서 북쉘프로 교체하기도 한다. 항상 하이파이 스피커를 두 조 이상 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UltimateHomeTheater 1

최근 시청실을 세팅하면서 다시 한번 홈시어터 시스템을 세팅했다. 사실 일을 하는 공간이기도 해서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넉넉한 공간이 생기니 언제부턴가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센터와 프런트, 그리고 리어 및 애트모스 채널을 위한 천정 스피커까지 설치했다. 여기에 더해 리시버, 애플 TV 등 홈시어터는 확실히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구입해야 할 것도 많다. 그렇다고 애트모스 인에이블 스피커나 사운드바 같은 차선은 내가 용서할 수가 없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의 장벽에 부딪혔으니 그것은 바로 서브우퍼다.

서브우퍼 운용은 여러 번 해보았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의 어떤 설계를 갖춘 서브우퍼를 구입할지 꽤 고민이 되었다. 결국 구입한 건 SVS 서브우퍼다. 어차피 하이파이 오디오가 아니고 말 그대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혹은 유튜브 등을 즐기기 위한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선 SVS 정도면 차고 넘치리라 생각했다. 공간이 꽤 크고 홈시어터 시스템에서 약간 과장되더라도 웅장한 저역의 맛을 느끼고 싶어 포트가 있는 PB 시리즈를 선택했다. 하이파이에서 벗어나면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케이블 한 조 가격으로 12인치 서브우퍼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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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용 서브우퍼

하지만 하이파이 용도의 서브우퍼를 고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하이파이 오디오와 어울리게 제작된 서브우퍼가 그리 흔하지도 않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일단 소스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홈시어터로 감상하는 영상물은 기본적으로 멀티채널 녹음 및 믹싱을 기반으로 하고, 온라인 매체든 물리 매체든 5채널 이상의 멀티채널 데이터로 담는다. 한편 2채널 하이파이 오디오로 듣는 음원들은 대체로 2채널로 제작한 음원들이다. 기본적으로 멀티채널로 녹음했다고 하더라도 SACD나 과거 블루레이 오디오 같은 특별한 포맷이 아닌 경우 2채널이다.

영화 등이 담긴 포맷에 저장된 데이터는 여러 채널을 담고 있으며, 그중 저역 채널이 따로 있다. 이를 운반하는 채널을 LFE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채널에 담긴 저역 신호를 모두 프런트 스피커에서 재생해도 되지만, 저역 제한이 있는 스피커도 있기 때문에 액티브 서브우퍼를 통해 할당하면서 프런트 채널에서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2채널로 믹싱 된 음원은 저역 신호를 별도의 채널로 송출할 수 없다. 종종 서브우퍼 출력 단자가 있는 앰프가 있지만 크로스오버를 따로 설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같은 서브우퍼라도 홈시어터에서 멀티채널 소스로 들을 때 그 역할과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2채널 소스로 감상할 때 역할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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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역에 대한 REL의 승부수

이런 면에서 REL이 촉발시킨 하이파이 전용 액티브 서브우퍼의 출현은 2채널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저역에 목말랐던 사람들에게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REL이 홈시어터는 물론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최적화된, 질 좋은 저역을 재생할 수 있는 서브우퍼를 제작한 것. 그들의 라인업을 보면 REL이 왜 서브우퍼 부문에서 전 세계 최고의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다.

우선 HT 시리즈는 멀티채널 홈시어터 시스템에 최적화시킨 서브우퍼들이 포함되어 있다. T/x 시리즈는 홈시어터에도 대응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에 대한 특단의 설계 역시 포함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하이레벨 입력이다. LFE 입력단이 있어 홈시어터 시스템에도 대응하지만 2채널에 적용할 경우 이 하이레벨 입력을 통해 이질감 없이 메인 하이파이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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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 서브우퍼의 하이레벨 입력 적용 방법

그렇다면 하이레벨 입력,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입력은 일반적인 앰프의 스피커 출력단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증폭, 출력한다. 그래서 별도의 스피콘이라는 단자로 단말 처리된 케이블을 제공하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앰프를 통해 프런트 2채널 스피커와 서브우퍼가 신호를 받아 출력할 때 음질적인 부분에서 이질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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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그리고 REL은 이 기법을 활용한 최고 수준의 얼티밋 액티브 서브우퍼를 개발해냈다. 아마도 현존하는 전 세계 액티브 서브우퍼 중 톱클래스에 드는 모델일 텐데, 모델명은 간명히 No.31다. 무척 다양한 LFE 입력단은 물론 RCA, XLR 입력 모두 마련되어 있으며, 하이레벨 및 LFE, XLR 출력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한편 로우레벨 입력단도 마련해놓아 매우 다양한 세팅이 가능하다. 참고로 No.31의 경우 단일로 사용해도 되지만 최대 3개에서 5개까지 수직으로 쌓아서 사용할 수 있다. 저역의 방향은 크게 영향이 없다지만, 이 정도 규모가 되면 깊이를 넘어 높이까지 전체 음향에 꽤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서브우퍼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인 우퍼의 구경은 무려 12인치다. 여기서 REL은 유닛 진동판을 카본으로 제작하고 내부엔 무려 900W 급 클래스 D 앰프를 내장해 극단의 저역을 추구하고 있다. 참고로 No.31 서브우퍼의 저역은 –6dB 기준 17Hz라는 초저역 구간까지 하강한다. 인간의 가청 한계 아래 구간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무게는 52kg. 크기는 너비가 638mm, 높이가 435mm, 깊이가 720mm 정도로 거구다. 충분한 시청 공간이 필요하다. 마감 또한 상당히 고급스럽고, 요소요소에 진동 억제를 위해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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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REL No.31 액티브 서브우퍼 테스트는 소리샵 청담점 제2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함께 매칭 한 기기로는 T+A의 MP200 네트워크 플레이어, DAC200 프리앰프, 그리고 M200 모노블록 파워앰프를 활용했고, 스피커는 오디오벡터의 R3 Arrete를 활용했다. 참고로 REL No.31 서브우퍼는 크로스오버, 볼륨 및 EQ 등 다양한 기능을 세팅해 즐길 수 있다. 기본적으로 R3 Arrete 스피커가 23Hz 초저역까지 주파수 응답을 갖기 때문에, 초저역 부근을 보강하는 형태를 취했다. 볼륨의 경우 20-24 정도에서 곡에 따라 조금씩 리모컨으로 조정해가면서 시청했다.

chantal

REL의 저역은 자신을 앞으로 내세워 뽐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홈시어터 전용 시스템에선 강점이지만, 음악 재생에선 되레 대역 밸런스를 망가트릴 수 있기 때문. 서브우퍼의 저역이 초저역까지 재생 가능해지면서 들리지 않던 저역뿐 아니라 가청 영역대 저역에 살집이 붙고 힘이 실린다. 주로 더블베이스, 드럼 등 리듬 악기에 힘이 붙자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슬램이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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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의 타악기부터 다르다. 그 규모가 증가했고 악기들이 풀 바디의 포만감을 주며 힘 있게 질주한다. 보컬에서 차이점은 없고 기타 사운드는 이론적으로 동일하지만, 음악 녹음에서 주파수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에 따라 달리 들린다. 결과적으로 저역이 보강되면서 중, 고역이 더 돋보인다. 콘트라스트가 높아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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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낮은 초저역만 나오는 곡만 듣는 건 아니니 서브우퍼는 대개 무용하다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곡에선 없다고 생각했던 저역이 서브우퍼에서 튀어나와 당황하곤 한다. 이 곡에서 저역은 더 깊게 내려가면서 기존에 느끼기 힘들었던 무게감이 합해지며 일종의 권위감까지 획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오디오벡터의 우퍼 드라이브 유닛과 REL 서브우퍼의 우퍼 진동판은 조금 다르지만, 카본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berlioz 300

아마도 서브우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는 녹음은 대편성일 것이다. 자주 듣던 환상 교향곡에서 그러한 예감은 극단적으로 증명된다. 멀리 들리던 팀파니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니지만, 전/후 거리가 더 깊어져 나를 향해 급박하게 뛰어나와 호소한다. 음악은 더 장중하며 박력 있게 들리고, 음악적 감동은 극대화된다.

No32 Stack GlassDoor V2 scaled 1

총평

서브우퍼가 필요한 상황은 대단히 많다. 저역 제한이 있는 북쉘프, 스탠드 마운드 타입 스피커들, 그리고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도 그 대상이다. 일정 이상의 저역까지 재생한다고 하더라도 급격히 반응이 떨어지는 중간 저역 이하 대역은 보강 대상이 된다. 어정쩡한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보단 되레 북쉘프와 서브우퍼 구성이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우퍼의 물성, 크기, 세팅 값 조정이 변수가 되긴 한다.

전 세계 하이엔드 스피커 중 상위 모델로 갈수록 베이스 우퍼를 탑재한 인클로저를 별도로 분리하거나 혹은 우퍼만 액티브 형태로 설계하는 것도 서브우퍼를 별도로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한정된 저역을 담당하지만 별도의 인클로저, 앰프를 내장한 REL의 액티브 서브우퍼는 여기에 하이레벨 입력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매칭이라는 난제를 뛰어넘어 서브우퍼의 한계를 허물고 있다. 만일 단순히 빵빵하게 부풀린 저역이 아니라 그야말로 질 좋은 저역을 얻고 싶다면 꼭 고려해 봐야 할 서브우퍼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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