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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역의 감성을 불어넣다

렐 어쿠스틱스 Classic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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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들

일반적으로 스피커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은 보다 상위 스피커를 구입하는 일이다. 예산만 충분하다면 아주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저역도 더 깊어지고 사운드 스테이징의 규모도 넓어져 보다 현장 같은 생생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넓은 공간과 충분한 예산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가지고 있는 스피커와 컴포넌트를 최대한 활용하고, 그래도 불만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소소한 액세서리 교체, 업그레이드를 통해 허기를 달랜다.

하지만 스피커를 업그레이드하는 아주 재미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이 방법을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슈퍼 트위터를 추가하는 방법, 그리고 서브우퍼를 추가하는 것이다. 둘 다 가지고 있는 스피커의 고역 혹은 저역 등 주파수 대역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특히 대역이 한정된 북쉘프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역 재생에 탁월한 트위터인 리본 혹은 AMT 트위터를 장착한 슈퍼 트위터를 달면 그리 크지 않은 비용으로도 하이엔드 스피커의 대역폭을 얻을 수 있다. 과거 아페리온 슈퍼 트위터를 베리티오디오에 적용해 재미있게 즐겼던 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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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우퍼를 추가하는 방법은 특히 함께 매칭하는 스피커가 내부에 앰프를 내장한 액티브 스피커일 경우 앰프 매칭에 대한 고민도 덜어주면서 간단히 더 낮은 저역을 얻을 수 있다. 액티브 서브우퍼라면 홈시어터 시스템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별도로 분리, 믹싱 된 LFE 채널을 재생하는 것 외에도, 하이파이 시스템에 저역 주파수 성분을 로우패스 필터로 걸러 재생하면 상당히 충만한 저역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과거 포칼, PSB, 렐 등 몇 가지 서브우퍼를 하이파이 시스템에 적용해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모든 경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홈시어터의 LFE 채널 재생용 서브우퍼의 경우, 홈시어터에선 웅장한 규모와 강력한 타격감에 만족했지만 동일한 서브우퍼를 하이파이 시스템에 매칭하면 너무 과도하게 부풀려진 저역 때문에 밸런스가 완전히 흐트러지기 십상이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하이파이 오디오용 서브우퍼를 만드는 곳이 있다. 바로 영국의 REL Acoustics다. 현재 양질의 서브우퍼를 만드는 곳이라면 SVS, JL, REL 등을 들 수 있지만 그중에서 하이파이 오디오, 또는 초고가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에서라면 REL을 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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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8

REL은 매우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최상위로 No.31, No.32 같은 레퍼런스 서브우퍼가 있다. 거의 밥상만 한 사이즈로 초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에 두 개를 적용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이어서 그 아래 S 시리즈는 아마도 보편적인 하이파이 시스템에서부터 하이엔드 시스템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라인업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라인업은 아무래도 T/x 시리즈일 것이다. T/9x를 필두로 일반적인 가정 환경에선 T/x가 맥시멈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홈시어터 전용은 별도의 HT 시리즈로 구별해서 개발, 출시해놓고 있다. 라인업의 구성과 편성 등에 있어서도 여타 서브우퍼 브랜드와 구별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REL이 신제품을 출시했다. Classic 98이라는 모델이다. ‘응답하라 1998’인가? 필자가 군대에 입대한 연도가 제품 모델명에 들어가 있으니 친밀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델명은 손가락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1998년 출시된 Strata III라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10인치 비파 우퍼를 장착하고 있었고, 내부엔 클래스 AB 증폭 방식의 100W급 앰프를 내장했다. 아마도 REL이 고급 서브우퍼의 대명사로서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주목받게 만든 트리거 같은 모델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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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1998

그렇다. 26년이 지난 지금 2024년 뜬금없이 1998이라는 숫자를 들이민 Classic 1998이라는 모델에서 숫자는 절대 뜬금없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 와서 그 당시를 회고라도 하는 듯 1998이라는 숫자에 Classic이라는 이름을 붙인 서브우퍼를 출시한 것일까? 나름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REL은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들이 원하는 빠르고 정확하며 깊은 저역을 고해상도로 조망해 줄 우퍼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왜 다시 되돌아가려고 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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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모든 사람들이 현재 REL의 서브우퍼 사운드를 자신의 시스템에 적용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영국의 전통적인 스피커 사용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시대는 21세기를 한참 넘어섰지만 여전히 20세기에 이미 설계가 끝난 BBC 모니터 계열 혹은 빈티지 스피커, 그리고 그 설계와 사운드 철학을 이어받은 후계들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뜨겁다. 하베스, 스펜더, 프로악, 탄노이, 그리고 그라함, 팔콘 등등 입이 아플 정도로 그 역사의 깊이와 넓이는 깊고 넓다. REL이 내놓은 카드는 바로 이런 스피커들 사용자를 향한 것이다.

우선 Classic 98을 마주하면 천연 월넛 베니어 마감으로 미드 센추리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마치 그 당시 제품을 박스째로 보관하고 있다가 지금 열어본 것 같다. 최근 서브우퍼 디자인과 달리, 너비와 깊이보다 높이가 더 길어서 마치 협탁 같은 느낌을 준다. 첫눈에 보아도 고풍스럽고 고고한 품격이 있다. 하지만 상단을 보면 반짝이는 REL의 로고가 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당당히 웅변하고 있다. 하단으로는 우퍼 진동을 제어하기 위해 커다란 발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 디자인 또한 추억에 잠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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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내부에 장착된 우퍼는 10인치로 인클로저의 하방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고전적인 페이퍼 진동판을 사용하며, 이는 열 압착시켜 매우 가볍게 만든 페이퍼 소재가 진동판 바깥쪽 2/3 정도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내부에 다시 한번 건조한 종이를 덧붙여 강도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 서라운드 에지의 경우 천연 합성 고무를 사용한 모습이다. 최신 REL의 서브우퍼가 알루미늄 등을 사용한 것과 달리 1990년대 방식 페이퍼 소재를 사용하되, 강도를 보강한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내장한 앰프는 클래스 D 증폭이다. T/x 시리즈처럼 클래스 AB 방식을 사용한 줄 알았는데 의외의 선택이다. 출력은 무려 300W로, 10인치 우퍼 한 발을 위해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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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Classic 98은 하이파이와 홈시어어터 시스템 모두 연결해 사용 가능하다. 후면엔 하이/로우 레벨 볼륨 및 1/LFE 레벨도 조정 가능하며, 크로스오버를 조정할 수 있는 노브가 마련되어 있다. 돌려보면 미세한 스텝으로 조정되는데 그에 따른 레벨 및 Hz를 세세하게 표기해놓진 않아 귀로 확인하면서 섬세하게 조정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하단으로 하이레벨 입력에 사용하는 스피콘 입력단이 존재하며, 기본으로 제공하는 전용 스피콘 케이블을 사용해 앰프와 연결해야 한다. 이번 테스트에선 T+A의 PA3100 HV 인티앰프를 사용했고, 스피커는 프로악 Response D2R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과연 스펙에서 밝히고 있는 최저 27Hz에 이르는 초저역이 북쉘프 시스템에서 어떤 퍼포먼스 차이를 불러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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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단출한 편성에서부터 그 특성 변화를 살펴보았다. 저역은 확실히 상당 부분 그 양감이 증가한다. 하지만 세팅에서 중요한 편차를 보인다. REL이 제시하는 세팅은 스피커 후방 모서리로 긴 파장을 충분히 룸 전체에 펴져나가게끔 설치하는 것. 적당한 볼륨과 크로스오버 조정 후엔 저역이 부풀지 않으면서도 낮게 깔려나가며 메인 스피커의 저역을 보강해 주는 모습이다. 셸비 린의 곡 ‘Just A Little Lovin’’에서 프로악 Response D2R 스피커의 저역에 초저역을 더하면서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사운드를 표출해낸다. 확실히 T/9x 같은 우퍼와 가는 길이 달라 포근하면서 온기 있는 사운드를 연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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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역동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곡을 재생해 보기 시작했다. 사실 프로악 Response D2R 스피커의 체감상 저역 깊이는 스펙에서 발표된 30Hz까지 내려가면서 dB 감쇄가 가파른 편으로 파악된다. 뮤지카 누다의 곡 ‘Come Together’를 들어보면 저역을 별도의 앰프로 제어하는 Classic 98이 추가되면서 실제 이 대역을 보완해 주는 모습이다. 메인 스피커인 Response D2R의 저역에 저역을 붙인 것 같은 인위적인 모습은 실제 청감상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하이레벨 입력의 강점은 이런 부분에서 드러난다. 만일 홈시어터용 서브우퍼를 붙였다면 어땠을까? 음악 감상의 묘미와 그에 필요한 저역 표정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프로악 같은 전통적인 영국 스피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서브우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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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특성만이 음향적인 특징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를 보고 해당 제품의 성능을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보고 건강 상태를 모두 파악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음향은 대략적으로만 파악한다고 해도 주파수 특성 외에 시간축 반응 특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빠른 비트와 박자, 리듬감에 대한 표현력으로 이를 대략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A.R. 라만의 곡 ‘Dacoit Duel’에서 급박한 타악 세션이 난무하는 가운데 Classic 98은 너무 서두르면서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속도감은 T/9x 같은 우퍼에 비해 느리지만, 대신 잔향이 풍부하고 따뜻하게 공간을 감싼다. 긴장감을 크게 고조시키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감흥은 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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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악기들이 출몰하는 대편성 교향곡은 어떨까? 사실 중대형기에서도 이런 스케일 큰 음악에 대한 표현은 완벽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작은 북쉘프 하나로 표현하기엔 스케일, 다이내믹스, 공간의 앰비언스 표현력 부분에서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Classic 98이 투입된 이후 풍경은 제법 달라진다. Thierry Fischer가 지휘를 맡고 Utah Symphony가 함께 협연한 말러 교향곡 1번, 4악장에서 첫 마디부터 포효하는 웅장한 사운드 스테이징이 사뭇 다르다. 저역이 서브우퍼가 설치된 그 위치에 있다는 건 잊어도 된다. 사방으로 방사되는 저역은 녹음 공간의 음향 특성을 더욱 싱싱하게 표현해 주어 실체감을 부각시켜준다. 확실히 저역의 깊이와 양감은 물론, 옥타브가 구분되고 해상도가 증가한다. 더불어 이러한 저역 퀄리티의 증강은 중, 고역의 표정도 더욱 다채롭게 보여주는 시너지 효과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주파수 대역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소처럼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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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하이파이 오디오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음악이라는 변수는 굉장히 다양한 음향적, 음악적 취향을 수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극도의 평탄한 주파수 응답 특성과 초고속 반응 특성 등 전방위로 최신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약간 느리고 조금은 응답 특성이 고르지 않더라도 되레 음악 감상의 묘미는 더 높은 스피커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최신 팝과 일렉트로닉,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반세기 전의 재즈와 클래식, 포크와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스피커도 최신 기술로 무장한 하이엔드 스피커부터 회고적인 설계를 여전히 주창하는 브랜드가 공존한다. REL은 자국의 영국 출신 전통적 하이파이 스피커 마니아들을 위한 성찬을 준비했다. 서브우퍼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 스피커 애호가들은 Classic 98을 통해 2% 부족했던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되찾게 될 것이다. Classic 98은 초저역의 감성을 힘차게 불어넣고 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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