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영감
제임슨 다이슨이 창업한 다이슨의 가전기기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다이슨 선풍기부터 다이슨 청소기 등 기존의 상식을 깨는 가전기기를 개발해 훨씬 더 비싼 가격에도 커다란 판매고를 이뤄냈다. 이런 혁신의 원천은 대부분의 시간을 엔지니어, 연구원들과 보내는 제임스 다이슨의 창업 이념에서부터 시작했다. 회의실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그리고 때론 일상생활에서 얻어지는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는 소리, 기술적인 용어로 주파수에 대한 부분에서도 다양한 연구를 거듭해 선풍기 등에 적용했다. “소음은 크기뿐 아니라 음색이 중요합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는 그 크기는 크지 않지만 불쾌감이 크죠.”라고 인터뷰 중 이야기에서도 소음에 대한 제임스 다이슨의 관심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연구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날개 없는 선풍기’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불쾌한 소음 문제 때문이었다.
다이슨의 선풍기는 보기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제트엔진의 원리와 유사한 에어 멀티플라이어 기술 그리고 유체역학의 일종인 ‘베르누이의 원리’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음 관련 이론으로 이른바 ‘헬름홀츠 공명’현상을 응용한 기술도 동원되었다. 선풍기의 기둥에서 나는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다이슨이 해결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헬름홀츠 공명’의 역이용해 헬름홀츠 캐비티를 활용, 소음을 확연히 제거한 것. 다이슨의 성공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호기심과 열린 마인드 그리고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영감에서 온 것이다.
케프의 진화
영국의 유서 깊은 스피커 메이커 케프도 이와 같은 순수한 열정과 열린 마인드 위에서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이미 출시된 바 있는 LS50의 후속 버전 개발 중에 이어진 연구로서 AES 학회에서 발표되면서 스피커 설계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다름 아닌 메타물질이라는 것을 스피커 내부의 소음 흡음에 활용한 사건이다. 사실 스피커 설계에 있어서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 설계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진보시키려는 분야가 바로 스피커의 후방 에너지 소멸에 관한 것이다.
후방으로 방사되는 에너지를 소멸시키기 위해 과거 양모나 스펀지를 사용하던 것을 넘어 스피커 메이커마다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이로 인한 음질적 폐해가 생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인데 PMC 같은 메이커는 미로형 트랜스미션 설계를 사용하고 B&W나 비비드오디오는 튜브 로딩 기법을 활용해 에너지를 감쇄시킨다. 이 외에도 별도의 내부 챔버를 특수 제작해 설계하는 등 드라이브 유닛이 고속으로 움직일 때 발생하는 후면 방사파를 소거하려는 노력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케프도 이 부분에 주목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AMG(Acoustic Metamaterials Group)과 공동 프로젝트를 신설해 연구에 들어간 후 물리적 두께와 흡음 스펙트럼 사이의 수학적 연관 관계를 정량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결국 저주파에서 파장의 1/10에 불과한 최소 두께를 갖는 물리적 형상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쪽이 막혀 있는 튜브 안에 음파가 전달되었을 때 그 튜브의 길이가 소리 파장의 1/4과 같을 때 공명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바로 이 이론에 근거해 만든 형상은 무척 생소하다. 단면 모양이 마치 미로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모두 여러 주파수 대역에 걸쳐 최대한 효율적인 흡음을 위해 고안된 디자인이다. 자세히 보면 총 15개의 튜브가 있고 두 개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튜브의 개수는 총 30개. 이 다양한 튜브들은 그 크기와 간격이 모두 계산된 것으로 약 620Hz에서 시작해 5kHz까지 다양한 주파수에서 25dB에서 무려 40dB 정도의 흡음을 달성했다. 이는 일반적인 스피커들이 후방 방사 에너지의 60% 정도 흡음률에 비하면 트위터 후방의 원치 않는 사운드에 대해 무려 99% 흡음률을 의미한다.
나비효과
메타 물질의 개발 성공은 케프는 물론 전 세계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 전체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주 작은 크기의 흡음 물질 하나로 이렇게 높은 흡음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필자가 알기에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은 사이즈는 플로어스탠딩은 물론 최근 각광받는 작은 고성능 북셀프나 올인원 스피커 등에도 충분히 적용해 음질적 업그레이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케프의 경우 일단 그 실험 대상으로 LS50을 선택했다. MAT 디스크를 장착한 UNI-Q 드라이버는 무려 12세대로 진화했다. 오랫동안 스피커 설계 엔지니어들을 괴롭혀왔던 후면 방사파를 아주 간단한 MAT 하나로 간단히 해결하면서 동시에 임펄스 응답 특성을 가장 이상적인 범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MAT 흡음판만이 LS50에서 LS50 META로 진화한 유일한 차이는 아니다. 이 외에 유닛부터 포트, 크로스오버 등 스피커의 대부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업그레이드가 있었다.
- 12세대 UNI-Q의 대대적 수술
일단 트위터와 MAT 흡음판을 연결하는 원추형 덕트다. 이 덕트는 일종의 웨이브가이드로 기능하는데 트위터와 미드/베이스 드라이버가 작동하는 중심축에 설계되어 있는데 직경을 더 넓혀 더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 트위터 마그넷 어셈블리는 다시 설계했다. 고주파 리플을 줄이고 트위터 후방의 흡수 스펙트럼을 향상시켰다.
본격적으로 12세대 UNI-Q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동축 드라이브 유닛의 설계에 대한 개선점을 살펴보자. 일단 동축 트위터에 일종의 갭 댐퍼를 설치한 것인데 이는 트위터와 미드/베이스 드라이버가 하나의 축 안에 공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다. 간단히 말해 아주 절묘한 사이즈의 빈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LS50 META에선 이 캐비티의 모양과 함께 두 개의 링으로 구성된 충전재를 수정했다.
- 모터 시스템 개선
모터의 설계도 변화가 있다. 일단 트위터의 센터폴을 통해 더 넓은 덕트를 수용할 수 있도록 수정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트위터 돔 후면에서 기존보다 더 많은 흡음이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후면 에너지는 트위터의 전후 운동에 따라 공기압의 변화를 초래하고 이는 선형적인 운동에 악영향을 주는데 덕트를 키워 공기압을 증가시킴으로써 이런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있다. 더불어 강철의 포화도를 높이 된 저하된 밀도는 보이스 코일을 2층으로 증가 시켜 보상했다. 여기서 증가하는 인덕턴스와 감도 손실 현상은 센터폴의 구리 슬리브로 없애 LS50보다 인덕턴스를 줄였다.
미드/베이스 우퍼의 모터 디자인도 바뀌었는데 언더헝(underhung) 코일 설계의 트위터와 달리 오버헝(overhung) 보이스 코일 형태를 가졌기 때문에 접근 방식이 달랐다. 매지코 같은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도 미드/베이스 우퍼에 이런 오버헝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모두 인덕턴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인덕턴스가 클수록 신호가 코일을 통과할 때 더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고 이는 디스토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덕턴스는 작을수록 좋은데 기존에 사용하는 강철의 경우 인덕턴스를 증가시키고 비선형적인 왜곡을 가져온다.
이 때문에 LS50 META에선 비자성이지만 전도성이 있고 보이스코일에 유도 결합되는 점을 응용, 알루미늄 부품을 쇼트링 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결국 코일의 인덕턴스 값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또한, 코일의 운동 범위, 위치에 따른 인덕턴스 변조 량도 거의 없어 훨씬 더 왜곡 없이 균질한 주파수 반응을 보이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이런 설계 변경은 인간의 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파수 범위에서 THD, 즉 고조파 왜곡을 드라마틱하게 낮출 수 있었다고 본다.
- 탠저린 웨이브가이드
더불어 이전 세대부터 케프 UNI-Q 동축 유닛을 상징하던 것, 바로 웨이브 가이드 디자인의 변경도 눈에 띈다. 케프에선 일명 ‘탠저린 웨이브가이드’라고 일컫는데 이는 트위터의 방사 패턴과 주파수 특성을 매우 정교하게 향상시켜준다. 더불어 5kHz 이상에서 감도를 높이고 공진 피크를 감쇄시켜 매우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연출해주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러 실험 결과 탠저린 웨이브가이드와 서라운드 지지대가 약 12kHz에서 물리적으로 비선형적 변형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아주 심각한 변형은 아니지만 케프는 이런 작은 문제까지도 완벽히 개선하기 위해 웨이브 가이드 구조를 바꾸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바람개비 혹은 꽃잎처럼 보이는 웨이브 가이드를 하나 정도 높인 것 같지만 실제는 안쪽까지 붙어있는 전체 어셈블리 디자인을 모두 바꾸어버렸다. 웨이브가이드와 그에 붙어있는 서라운드 지지대까지 바꾼 후 고역의 전체적인 주파수 특성도 한결 더 평탄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평
케프 LS50 META가 처음 출시되기 전부터 필자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여러 자료를 훑어보곤 했다. 하지만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번 만남을 통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목도하면서 흥미로운 부분들을 다수 발견했다. 외관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사한 외관 속에 다각도의 분석과 연구를 통한 변화가 가득했다. 이 멋진 레퍼런스 미니 모니터의 치밀하고 정교한 설계상 변신은 과연 어떤 퍼포먼스로 귀결되었을까? 다음엔 외형과 성능, 매칭 등에 대해 남은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한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