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지만 1~20대 들었던 음악이 인생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어렸을 적 들었던 록이나 포크 음악, 가끔 가요나 팝 음악도. 그 이후 빠져 들었던 음악 중에 하나가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이었다. 내 나이 정도 사람들이라면 심야 음악 프로그램들을 기억할 듯. 그 방송들을 통해 영국을 중심으로 이태리 등 유럽의 아트록에 심취했었다. 킹 크림슨, 핑크 플로이드, ELP를 시작으로 뉴트롤스, 뮤제오 로젠바하 등 이름도 다 기억 못할 밴드들. 천편일률적인 주제의 대중음악이 아니라 세계와 철학, 인문, 신에 대한 노래들에 귀와 마음을 열었다.
국내에서도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있었다. 바로 생각나는 건 사하라 그리고 오메가 등. 최근 아키텍쳐라는 그룹이 이런 프로그레브 록 음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광의적인 측면에서 단순 과거 유럽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에만 기대고 있는 음악은 아니다. 아키텍쳐라는 이름처럼 견고히 쌓아올린 건축물 같은 악곡 위에 무척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해 재창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음악의 저변엔 아키텍쳐를 이끌고 있는 두 명의 멤버 김상만, 김윤태의 과거 음악 관련 바이오그래피가 돋보인다. 수퍼스트링이라는 밴드를 운영해오면서 언젠간 시도해보려 했던 다른 음악적 자아가 실현된 것이 바로 아키텍쳐다. 수퍼스트링이 위니베르 제로나 아르 조이드 등 챔버 록의 영향 아래 있었다면 아키텍쳐는 지평을 더 넓혀 때론 심포닉 록, 스페이스 록 같은 화려함까지 얹었다. 때론 킹크림슨의 광기가, 때론 표제음악 같은 접근까지…국내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던가? 최근 들었던 국내 음반 중 가장 충격적이자 완성도 높은 록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