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예 그리고 미니멀리즘
면적 429만 2천 헥타르로 세계 132위, 인구 591만 913명으로 세계 114위. 전 세계적으로 190여개 국가, 80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 위 국가 중 비교적 크지 않은 국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는 국가 덴마크.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듯 꽤 많은 특허 기술은 물론 수공예, 디자인이 상당히 발전해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거친 자연 환경과 자원 부족으로 인해 최소한의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미니멀, 실용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소박하면서도 절제를 품은 디자인은 그러나 그들만의 공예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대표적으로는 기오 옌센과 그 후예들이 그리고 아르네 야콥슨 등을 시작으로 하지만 이후에 핀 율, 헤닝 라센 등 무시무시한 디자이너들이 탄생한다. 건축가를 비롯 주얼리, 가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덴마크는 손에 꼽힐만한 인물을 탄생시켰다. 개인적으로는 핀 율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그 아름다운 조형적 특징 뿐 아니라 가볍고 실리적인 미니멀리즘은 그 어떤 의자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서 덴마크가 다수의 세계적인 브랜드를 배출하게 된 것도 이러한 수공예 및 미니멀리즘 그리고 꿋꿋하게 버텨온 제조와 디자인과 연관이 없지 않다. 달리를 비롯해 다인오디오는 물론이요. 그리폰은 또 어떤가? 전 세계 카트리지 제조 업계를 제패하다시피 한 오토폰도 알고 보면 덴마크 브랜드다. 여기에 뱅앤올룹슨 같은 메이커는 고급 가정용 오디오 및 이어폰 외에 아이스파워 같은 모듈로서도 오디오 마니아들과 친숙하다. 여기에 스캔스픽 드라이브 유닛 제조사 및 비파 같은 라이스타일 제품까지 생각해보면 덴마크는 그야말로 유럽 하이파이 오디오의 거성이라고 해도 될법하다.
재즈 마니아가 만든 스피커
또 하나의 오디오 브랜드를 꼽자면 오디오벡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디오벡터는 1979년 설립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엔 미국의 재즈 뮤지션들이 종종 클럽을 찾아 연주를 벌였고 덴마크엔 재즈가 뿌리 깊게 씨를 뿌리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재즈 뮤지션 중 이스트 코스트 재즈의 제왕 스탄 게츠는 대표적이다. 이 외에 덱스터 고든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인물론 아무래도 듀크 조던이 덴마크에서 남긴 명연 ‘Flight to Denmark’일 것이다. 스티플체이스 레코드 레이블은 당시 미국에서 건너온 재즈 뮤지션들의 스튜디오, 라이브 실황 녹음을 꽤 많이 음반으로 출시했다.
당시 재즈 마니아들 사이엔 올레 클리포드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성장해 스피커 브랜드를 설립하는데 그 브랜드가 바로 오디오벡터다. 그가 처음 만든 스피커는 ‘The Trapez’라는 스피커였다. 전 세계 최고의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선호해온 드라이브 유닛 스캔스픽 그리고 다인오디오의 유닛을 총 세 개 사용해 만들었다. 전면은 경사졌고 옥타브 당 6dB 슬로프를 구현했으며 지금 봐도 위상 일치 등 탄탄한 이론 기반 위에서 설계한 스피커로 보인다. 게다가 디자인 또한 덴마크 디자인 어워드 5회 수상에 빛나는 라스 마티센을 초빙해 만들었다. 이 스피커는 무려 2만 5천 조 이상 팔려나갔다.
레퍼런스 북셀프 R1 Arrete
오디오벡터는 향후 계속해서 새로운 설계로 자사의 스피커 라인업을 업그레이드해나갔다. 특히 SR 시리즈에서 커다란 진화를 이루었으며 이후 R 시리즈라는 레퍼런스 라인업을 완성하면서 현재의 진용을 갖추게 된다. 특히 AMT 드라이브 유닛의 적용은 오디오벡터 사운드의 시그니처로서 기능하게 되는데 아마도 현존 AMT 중에 오디오벡터의 아레테 AMT는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R1을 포함해 오디오벡터 R 시리즈 스피커는 각각 시그니처, 아방가르드, 아레테 등 세 개 버전이 존재한다. 시그니처는 소프트 돔 트위터지만 아방가르드와 아레테는 AMT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아레테는 전용 AMT로서 아방가르드에 사용한 AMT엔 없는 S-STOP 필터를 채용했다. 골드 리프라고 불리우는 이 필터는 가수가 노래할 때 치찰음을 없애는 데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를 갖는데 AMT 트위터의 성능을 보완, 향상시켜주고 있다.
여기서 잠시 AMT 트위터에 대해 설명하자면 일종의 평판 유닛 중 하나로서 리본 트위터와는 평판이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작동 방식은 다르다. 오스카 헤일 박사가 곤충을 고속 날갯짓에서 영감 받아 개발한 것으로 이후 고해상도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러 스피커 메이커에서 앞 다투어 채용해왔다. 특히 일반 돔 트위터에 비해 수평축 방사 특성이 균질하며 리본의 수직 분산 문제도 없는 편이다. 다만 가장 최적의 성능을 맛보려면 청취시 귀 높이와 트위터를 동일 높이에 맞추는 것이 좋다.
이 트위터는 현재 수천, 수억 원대 초하이엔드 스피커의 베릴륨,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 혹은 리본 트위터나 가능한 50kHz 초고역까지 재생 가능하다. 한편 그 선형성이 높아 고역 위상 변이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 기본적으로 멤브레인 면적이 일반적인 돔 형식 트위터에 비해 무려 8배 더 넓고 무게는 오히려 적어 진동판의 빠른 움직임이 가능하고 더 민첩한 반응 속도를 통해 고해상도 재생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한편 오디오벡터 같은 경우 후방을 열어놓고 후방 에너지의 30% 정도를 뒤편의 긴 튜브로 방출해 앰비언스를 강화하는 등 독자적인 아레테 AMT 트위터 기술을 개발, 적용해놓고 있다.
미드 베이스 우퍼는 6.5인치 면적의 진동판을 가지고 있다. 이 우퍼의 경우 인조 목재 섬유와 카본을 샌드위치 방식으로 교차시켜 만든 진동판을 사용한다. 오디오벡터의 현재 대표 매즈 클리포드는 트위터 뿐만 아니라 미드 베이스 우퍼 등 드라이브 유닛의 거의 모든 제조는 오디오벡터 자체적으로 설계, 제작하면 조립 정도만 외부에서 진행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오디오벡터 R1 아레테엔 흥미로운 기술들이 정말 많다. 그 중 하나는 스피커 유닛들이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자성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잔류 전류 등을 그라운드로 자연스럽게 제거하는 기술이다. 카르마가 사용하는 자성 클러스터 기술 또는 일본 스펙의 역전기력 제거 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이를 위해 인클로저 후면에 한 개의 바인딩 포스트를 추가해놓고 있다. 이 단자를 사용하기 위해선 오디오벡터에서 판매하는 프리덤 그라운딩 케이블을 별도로 구입해 장착해야한다. 다만 그 원리만 알면 자작도 가능할 듯하다.
이 외에도 오디오벡터 R1 아레테엔 플래그십 라인업의 표식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복잡다단한 설계 특징들이 빠짐없이 녹아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인클로저는 위에서 볼 때 물방울 모양, 일종의 류트 형태를 취해 내부 정재파 생성을 억제하고 있다. 인클로저 소재는 참나무 및 단풍나무를 사용한 HDF로 제작했고 이탈리안 월넛, 아프리카 로즈우드, 블랙 애쉬 등 매우 고급스러운 마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아레테 에디션은 내부 소자들을 모두 영하 238도에 극저온 처리해 본래 소자의 특성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인클로저의 에너지가 드라이브 유닛에 저장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한 독자적인 유닛 장착 기술 등도 돋보인다.
청음
청음은 청담동 소리샵 제 2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소스 기기와 앰프가 한 몸체에 설계되어 있는 NAD M33을 사용해 간단한 청음 시스템을 마련했고 케이블은 실텍 등 제법 고급 모델을 사용했다. 2웨이 저음 반사형 타입에 공칭 임피던스 8옴, 감도는 87dB로서 보편적인 북셀프 타입 스피커의 표준적이 제원을 가지고 있지만 주파수 응답 특성은 중소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에 버금간다. 실제로 38Hz에서 53kHz까지 재생 가능하다는 것이 오디오벡터의 설명이다.
우선 중, 고역 이음매가 대단히 자연스럽다. 리본이나 AMT 같은 평판 유닛은 매우 빠른 속도감과 수평, 수직축 반응 특성이 일반 돔 트위터와 달라 미드 베이스 우퍼와 이질감이 생길 수 있으나 R1 아레테를 이 벽을 용케 허물었다. 라드카 토네프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를 들어보면 2.9kHz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숨긴 것처럼 이물감 없는 보컬 음상을 만들어낸다. 위상 변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핀 포인트 포커싱을 형성한다.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는 북셀프 이상의 안정감과 넓은 주파수 대역 덕분에 지나치게 고역으로 치닫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도미니크 피스 아이메의 ‘Strange fruit’을 들어보면 종종 낮은 대역을 오가는 더블 베이스가 육중하면서 동시에 빠른 패시지를 그려나간다. 흥미로운 건 그 어디에서도 북셀프의 쥐어짜는 듯한 옹색함이 없이 포만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특히 얇게 흩날리거나 짓눌린 느낌 없이 소리가 자유롭고 우아하게 제법 큰 시청실을 메운다.
AMT와 카본 우퍼의 가장 큰 공집합은 다름 아닌 스피드다. 두 유닛 모두 낮은 질량과 함께 빠른 반응 속도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담은 현대 하이파이 유닛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포플레이의 ‘Tally ho!’를 들어보면 리듬 섹션이 매우 민첩하게 움직인다. 한편 작은 소리와 큰 소리의 낙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현장의 실체감이 싱싱하게 표현된다. 고역 쪽은 AMT의 다소 기계적인 생김새와 달리 무척 달콤하다. 더불어 하이햇 심벌 등 고역은 활짝 열려 있으나 지나치게 밝게 터져 버리는 탈색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활짝 열린 고역과 빠른 속도감 등 R1 아레테의 강점은 아무래도 중, 고역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중, 고역은 표면 텍스쳐 표현은 물론 음장, 증 공간 표현력에 듬뿍 힘을 실어준다. 예를 들어 앨리스 사라 오트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한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보자. 좌측에서 번개처럼 날아오는 피아노 소리는 마치 내 손 안에 피아노 소리를 꼭 쥔 듯 명료하게 눈앞에 보인다. 특히 이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음장의 규모는 중형 플로어스탠딩 정도 수준을 보여주어 무대가 답답하거나 평면적이지 않다. 그 대신 화창하고 맑으며 입체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다만 무겁고 단단한 소재의 스탠드를 사용하고 스파이크 등을 통해 높이 조절로 귀 높이와 AMT 트위터의 높이를 꼭 맞추길 권한다.
총평
오디오벡터는 창립자 올레 클리포드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공학도로서의 열정이 화학작용을 통해 융합되어 만들어진 브랜드다. 단순히 최소의 투자로 최고의 수익을 내기 위한 대량생산 체제가 아니라 수공예와 예술적 디자인 등 스칸디나비아 덴마크의 지역적 특성이 비옥한 토양처럼 작용해 태어난 명품이다. 특히 수평, 수직 지향 특성 및 스피드, 반응 특성 및 매우 넓은 초고역과 초저역에 이르는 주파수 응답 범위를 통해 사이즈를 훌쩍 뛰어넘는 사운드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특성과 디자인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이젠 지금, 여기 국내 가정환경과 고해상도 음원 시장에서 교집합을 형성하면서 시대가 원하는 스피커로 지목될만한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 단 하나의 하이엔드 북셀프를 원한다면 꼭 한 번 청음해보길 권하고 싶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스펙
Type: Stand-mounted, two-way bass-reflex
Driver complement: Air-Motion Transformer tweeter, 6.5″ bass/midrange
Frequency response: 38Hz–53kHz
Impedance: 8 ohms
Sensitivity: 87dB
Dimensions: 7.7″ x 14.6″ (38″ on stands with no spikes) x 11.4″
Weight: 22 l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