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에 대한 단상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을 성인이 되어 어느 전시회에서 집채만 한 사이즈로 처음 실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텍스트 몇 줄과 작은 그림으로 보면서 아무리 이해하고 감동을 받고 싶어도 전혀 감흥이 오지 않았던 시절이 하얗게 지워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감동의 도가니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조그만 줄리앙 석고상의 머리만 그리다가 실제 그 거대한 전신상을 보았을 때의 당혹감, 충격 같은 것 같을지도 모른다. 보았지만 절대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다가올 것이다.
평면 위의 색채와 선만 보이던 2차원의 그림은 두터운 붓질의 질감과 함께 3차원의 입체로 다가오기도 한다. 작품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그렇게 실체를 확인함으로서 비로소 완성된다. 거대한 스케일 안에 그 스케일을 완성해내는 디테일까지 모두 통합된 실체의 모습은 도무지 이전에 평면에 인쇄된 그것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과 사진이 빛의 파동에 대한 예술이라면 소리의 파동인 음악은 또 다른 면에서 우리를 놀래킬 수 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의 멜로디와 화성, 박자, 리듬만 따라가다가 그 음악과 뮤지션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주말에 열리는 공연장 티켓을 예매하고 들뜨는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거의 혼비백산할 뻔한 기억이 있는가? 상상 속으로 머릿속에 연상 작용을 통해 맛보았던 그 감흥은 사실 어마어마한 비율로 축소된 미니어처 같은 것이라는 걸 현장에서 깨달았을 땐 마치 사기라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종종 사람들은 이어폰이나 헤드폰 혹은 작은 북셀프 하나면 됐지 뭐 그리 크고 무거운 걸 꼭 집에 들여놓아야만 하느냐고 이야기한다. 나조차도 예전엔 몰랐지만 공연을 보거나 혹은 마스터링 스튜디오 등을 드나들며 왜 풀레인지급 광대역 스피커가 필요한지에 대한 스스로의 자문을 멈췄다. 녹음 공간이 스튜디오든 공연장이든 큰 스피커는 그만큼 더 실체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기 때문이며 그만큼 감흥의 크기도 커진다. 물론 우린 현실과 타협해야 하지만 공간만 넉넉하다면 그 넓은 공간을 작은 북셀프로 채우는 것은 미련하다. 더 큰 SPL을 가진, 더 큰 음압을 달성할 수 있는 스피커로 메워야만 한다.
더 큰 대형기에 대한 관심은 사실 자신을 설득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큰 스피커가 과연 나에게 필요한가라는 자문부터 시작해 당위성이 확보되어야한다. 그 기저엔 공간이 있다. 작은 공간에서 굳이 큰 스피커가 필요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시청실을 열면서 여러 스피커를 고민했으나 나의 자금 수준에선 윌슨오디오 사샤와 락포트 아트리아의 동거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공간의 사이즈로 볼 때 윌슨으로 치면 최소 알렉시아나 알렉스까지도 꿈꾸어도 좋을 법한 일이다. 사견이지만 자신의 방보다 약간 넘치는 스피커를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
윌슨 베네시의 대형기 Eminence
최근 전 세계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의 플래그십 대형기들의 면모를 보면 과거의 그것과는 천양지차다. 웨스턴 일렉트릭, JBL이 미국을 호령하고 탄노이가 영국을 지배하며 클랑필름이 너른 거실의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도 모자랑 스피커를 만들던 시절과 다르다. 8옴 기준에서도 수백와트를 우습게 내주는 트랜지스터 앰프들이 널리고 널린 현실 앞에서 유닛 제조사들은 훨씬 더 가벼우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진동판을 개발해냈다. 작은 진동판 면적에서도 깊은 저역에서부터 초고역까지 재생해낸다. 15인치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시절의 저역 딜레이와 함께 탁하게 공간을 기어 다니던 저역은 사라졌다.
플래그십 스피커라고 해도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들은 10인치가 살짝 넘는 베이스 우퍼를 달았을 뿐이다. 대신 저역 옥타브를 세밀하게 나누어 협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게 더 효율적이며 더 세밀한 옥타브 구분과 함께 공진이나 딜레이 없이 더 정확한 저역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여전히 사이즈가 크면서도 스피드, 저역 하한 재생 능력 그리고 옥타브 구분이 정확한 유닛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음악의 실체를 일깨워줄 수 있겠지만 쉽지 않다. 작은 지붕만한 혼 스피커를 만들어 머리 위에 올렸어도 저역은 앰프를 내장한 액티브 방식으로 구현하는 아방가르드만 보아도 한계라는 건 있다. 스케일엔 저역이 관건이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액티브 서브우퍼가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윌슨 베네시의 이 커다란 스케일에 음악의 실체를 가장 근사치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모두 담아내려 했다. 이름은 Eminence. 작명에서부터 리스펙트를 넘어 경외감이 철철 흘러넘치며 급기야 권위감까지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실제 Eminence를 마주하면 누구나 199cm라는, 마치 농구선수를 마주한 기분에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비는 그 키에 비하면 28cm에 불과하며 대신 뒤로 깊이가 68cm로 깊다. 유닛의 전면 방사 에너지가 전면 배플에 부딪치며 생성되는 회절 현상의 최소화하기 위한 비율로 해석된다.
모든 면은 곡면으로 가공되어 있으며 그 소재는 카본이다. 정확히 말하면 카본과 몇 가지 생체 복합수지 등을 융합해 이른바 A.C.T 3Zero 모노코크 패널로 만들었다. 카본이 미래라고 주창하면서 하이파이 오디오에 최초로 카본이라는 소재를 도입한 소재 공학의 첨병이 현재 도달한 캐비닛 설계 기술의 최전선이 여기 있다. 더불어 내부로 들어가면 알루미늄을 절삭해 드라이브 유닛이 생성해내는 그 어떤 진동에도 흔들림이 없고 에너지를 저장하지 않으며 하단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소멸되도록 설계했다. 무려 120kg 무게의 대형 알루미늄 덩어리를 16시간에 걸쳐 CNC 머쉰으로 잘라내 만들어야 하나의 스피커 인클로저를 만드는 데 필요한 패널을 얻을 수 있다니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완벽주의다. 더불어 내부에도 강철 바를 내장시켜 인장강도를 높이고 있다.
유닛은 왜 이렇게 많이 단 것일까? 총 열 개의 유닛을 사용하고 있는데 트위터 하나에 미드레인지 하나까지는 평범하다 생각되다가도 그 나머지 유닛이 모두 저역 재생용이라는 지점에 생각이 이르면 갑자기 스펙을 다시 쳐다보게 만든다. 상단 저역 두 발, 하단 저역 두 발을 달고 그것도 모자라 맨 하단 두 열은 각각 아이소배릭 저역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두 발을 서로 마주보게 설계해놓은 것으로 작은 캐비닛 안에서 매우 낮은 저역까지 깊고 단단하며 빠르게 하강 가능한 설계 방식이다.
결국 이렇게 높은 키에 열 발의 유닛이 필요했던 것은 저역의 세분화해 그들이 생각하는 음악 재생의 실체적 스케일에 더욱 정교하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다. 참고로 트위터는 1인치 실크 카본 진동판을 채용한 일명 피보나치 유닛이며 다른 유닛들은 윌슨 베네시가 수십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진화시켜온 택틱 드라이브 유닛 중에서도 최신 3.0 버전이다. 모두 7인치 구경이라는 윌슨 베네시의 설계 법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배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Eminence는 2.5웨이 설계로서 재생할 수 있는 주파수는 +/2dB 기준 최소 24Hz부터 최대 30kHz로 인간의 가청 한계 영역을 가뿐히 넘어선다. 공칭 임피던스는 4.5옴, 감도는 89dB. 설계부터 스펙부터 예사롭지 않은 스피커다.
청음
시청은 청담동 소리샵 제 1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이번엔 매칭에서 기존과 달리 버메스터를 매칭해 기대감을 더했다. 소스기기는 T+A의 MP3100HV를 사용했지만 프리앰프로 버메스터의 077 프리앰프, 파워는 218 스테레오 파워앰프를 모노 브리지 결속해 셋업 후 시청에 들어갔다. 스피커도 스피커지만 그에 걸맞은 기함급 앰프를 매칭한 것. 각 제품의 스펙부터 크기 그리고 가격까지 항공모함급 스케일을 자랑하면서 진풍경을 연출했다.
조수미 – Dona dona
대체로 이 정도 사이즈의 대형기라면 음상이 꽤 크게 맺혀 빅마우스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스피커는 마치 2웨 북셀프나 동축처럼 전혀 과장 없는 음상을 그린다. 게다가 포커싱이 매우 뚜렷하면서 점체 무대는 마치 무대 앞에서 감상하는 듯 넓고 입체적이다. 디테일이 스케일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실제 작은 규모의 공연장과 큰 공연장에서 동일한 가수의 노래를 들어도 그 차이는 상당히 크게 다가오는데 확실히 단출한 구성의 녹음도 매우 크고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부슈 트리오 – 드보르작 ‘Dumky’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는 매우 평탄하며 물샐 틈 없이 모든 대역이 균형감 있게 조율되어 있다. 대형기라고 해서 과장된 몸짓이나 부풀림 없이 명료하고 타이트하다. 한편 토널 밸런스 측면에서 중, 고역 이음매가 완벽에 가까워 실제 악기를 눈앞에서 보는 듯 실체감이 높다. 단출한 악기 구성에서도 스케일이 이렇게 압도하는 경험은 오랜만이다. 특히 각 악기들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각각 충분한 거리를 두고 연주하면서 공간의 울림이 충분히 배어나오는 모습이다. 좁아터진 빽빽한 공간에서 쥐어짜는 소리가 아니라 넉넉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소리다.
인코그니토 – Step into my life
저역에 이렇게 많은 우퍼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윌슨 베네시에게 한정해선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중역은 마치 풀레인지의 그것처럼 맑고 착색이 없으면 높은 저역까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파수 특성과 양감이 조화롭고 특히 속도 하락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러 우퍼들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주파수, 시간축에서 움직인다는 게 놀랍다. 사실 대형기의 문제점은 그 스케일을 구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대형 우퍼들의 딜레이 현상과 그로 인한 시간축 흔들림과 탁한 울림이다. 하지만 7인치로 아이소배릭까지 결합한 이 스피커는 딜레이 없이 빠르게 릴리즈 되면서 바람처럼 사라진다.
테오도로 쿠렌치스/뮤지카에테르나 – 모차르트 ‘Requiem’ 중 ‘Kyrie’
이 스피커가 무대를 표현하는 방식은 스튜디오 마스터의 정확한 아날로그 변환 및 증폭이 전단에거 이뤄졌다는 전제 하에 최대폭의 다이내믹스와 무대의 확장을 꿈꾼다. 약음 표현과 성부와 성부의 예리한 음색, 위치 구분은 물론 내부의 디테일, 다이내믹스까지 모두 최대치로 뽑아내준다. 더불어 웬만한 스피커에선 표현 불가능한 무대의 높이까지 구현해 현장에 버금가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한 바흐의 ‘Toccata & Fugue’ 같은 곡을 들어보면 엄청난 높이의 교회 천정에서 소리가 별처럼 낙하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총평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오디오 메이커들은 실제 음악이 연주되거나 녹음된 공간에서 들을 수 있었던 감동을 가정 안으로 옮겨오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절대적 이상을 펼쳐낸 것들이 그 옛날엔 웨스턴 일렉트릭, 알텍, 탄노이, 클랑필름 등 지금도 빈티지 마니아들에게 꿈같은 스피커들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축적된 소재 공학, 제작 기술,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및 무향실 등 제반 시설의 힘을 바탕으로 현재 하이엔드 스피커의 표본이 완성되고 있다. 과연 윌슨 베네시의 모든 것을 담아낸 Eminence는 그 음악적 실체에 다가가는데 과연 얼마나 뛰어난 도구가 되어줄 것인가?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안나푸르나의 봉우리 중 하나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싶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