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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필드 리스닝의 새로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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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 Brio MK7

작지만 뜨거운 열정

한창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오디오는 정말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음반은 CD가 약 5~6천 장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오디오는 지금 생각하면 무척 소박했다. 사이러스나 마란츠, 쿼드 같은 것들이 가끔 들어왔다 나가곤 했을 정도였다. 스피커 또한 영국제가 많았다. ATC, 탄노이 같은 건 언감생심이었고, 셀레스천이나 작은 PMC 북셀프들, 프로악, AE 등 지금 와서 기억해보면 올드 스쿨 북셀프들이 주류를 이뤘다. 지금 생각해도 가격이 합리적이었고 크기가 작아서 교체하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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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매칭한 앰프들이나 소스 기기들 모두 올망졸망한 모습들이었다. 채 100와트가 넘지 않았던 앰프들이었지만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소스 기기는 CD 플레이어와 턴테이블이 메인이었다. 그중 소스 기기에서 눈에 띄는 게 바로 레가였다. 레가를 처음 만난 건 턴테이블이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플래닛(Planet)’이라는 CD 플레이어도 있었다. 이후 후속작으로 플래닛 2000이 등장하면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에 코드 일렉트로닉스에서 출시한 CD 플레이어들처럼 플래닛 2000도 마치 우주선 해치가 열리는 듯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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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2000은 당시 dCS와 손잡고 Ring DAC 기술을 이식받은 아캄 23 CD 플레이어와 경쟁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상위로 가면 메리디안이나 린 IKEMI 같은 모델도 있었지만, 실용주의적인 노선에 멋진 디자인과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음악성’이라는 수식어는 레가에 대해 애정을 키워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앰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써보기 시작한 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당시만 해도 내게 쿼드, 사이러스, 네임오디오 등 유수의 영국 브랜드에 비해 레가의 앰프는 스포트라이트에서 약간 비켜 앉아 있었다. 그러나 레가가 내게 니어필드 리스닝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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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심장 ‘레가’

레가는 1990년 Elicit를 시작으로 Brio, Mira, Elex, Aethos, Osiris 등 옹골찬 인티앰프를 출시해왔다. 레가의 슬로건은 항상 똑같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음악적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앰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음질적으로 폐해를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기능들을 삭제했고, 회로를 최대한 간결하게 만들었다. 신호 경로를 단순화하고 섀시에도 화려한 장식이 없다. 가격은 낮추면서도 음질은 높이기 위한 방법들이다. 또한 부품들은 수명이 길고 수리가 용이한 것들을 채택했다.

지금은 네트워크 스트리밍이 음악 플랫폼과 하드웨어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 때문에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이 앰프 영역까지 침범해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앰프에 내장되어 나오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인티앰프는 물론 비타협의 산물인 분리형 프리앰프에마저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내장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레가는 알다시피 턴테이블, 카트리지 전문 메이커이면서 동시에 앰프, CD 플레이어, 스피커까지 제작하는 종합 메이커다. 특히 아날로그 기기들이 대표적인 라인업으로, 설계 철학 또한 아날로그에 집중되어 있다. 디지털의 최신 트렌드에 대해 무감한 편이라는 것이 제품 설계에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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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o MK7

그리고 최근 레가에서 Brio의 7세대 인티앰프 Brio MK7이 출시되었다. 아마도 Elicit 같은 앰프와 함께 레가 라인업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모델이다. 1991년 출시 이후 Brio 2, Brio 2000, Brio-R 등 이름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세월을 거슬렀다. 1년에 한 번씩 신제품을 출시하고 기존 라인업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브랜드와 달랐다. 레가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꼭 새로운 버전의 출시가 필요할 때만 후속 버전을 출시했다.

과연 Brio MK7 출시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DAC를 내장했다는 게 그 첫 번째 명분일 것이다. 레가는 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Wolfson WM8742를 사용해 내부 디지털 섹션을 설계했다. 이전 레가의 Saturn-R이나 DAC-R에서도 사용했고, 여러 CD 플레이어에서 레가가 Wolfson 칩셋을 사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부드럽고 인위적인 디지털의 맛이 덜해 따스한 온기감, 즉 아날로그 사운드를 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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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DAC를 내장하면서 레가는 Brio를 이전 세대 설계에서 많은 부분 변경을 꾀했다. 일단 DAC 보드만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앰프 전체 PCB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부문의 신호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전원부도 새롭게 설계했다. 트랜스 자체는 토로이달 트랜스 하나만 사용했으나 전원부를 두 개로 나누어 하나는 파워앰프 부문 전용, 나머지 하나는 프리와 DAC 부문에 별도로 사용했다. 이 또한 전원 공유를 통해 음질적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로 보인다. 디지털 섹션을 추가했지만 신호 경로를 최소화했다.

한편 라인단, DAC 및 MM 포노단 모두 고급 MUSES OP 앰프를 사용했다. 이전의 저가 모델보다 더 고급 소자로서 왜곡은 낮추고 대신 S/N비, 다이내믹 레인지는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의지로 보인다. 단순하면서 아날로그 중심 사운드를 잃지 않겠다는 레가의 철학은 Brio MK7에서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디지털 입력은 동축, 광 등 두 종류를 지원하며 해상도는 24bit/192kHz PCM 포맷에만 대응한다. USB 입력은 제외되었으며 DSD 입력도 지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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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와트, 하프사이즈의 재정의

레가는 한 번도 클래스 A 같은 하이엔드 앰프 설계를 추종하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클래스 D 증폭 앰프를 내놓은 적도 없다.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클래스 AB 증폭만 고집해왔다. 이번 Brio MK7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이번 앰프는 전통적인 클래스 AB 증폭을 고집하고 있으며, 출력 트랜지스터로는 산켄(Sanken)을 채널당 2개씩 사용한 모습이다. 채널당 두 개 중 하나는 Positive, 다른 하나는 Negative 신호를 나누어 증폭하는, 이른바 푸시풀(Push-pull) 설계인 것이다. 하프사이즈 컴팩트 앰프에서 전형적인 구성으로, 과도한 병렬 연결 없이 50W@8Ω/72W@4~6Ω 출력을 안정적으로 내기 위한 설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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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Brio MK7에 쓰인 산켄 출력 트랜지스터는 STD03이라는 모델이다. 이는 Darlington 구성 내장형 트랜지스터다. Darlington 설계를 채용한 이유는 높은 전류 증폭률을 통해 드라이버단 부하가 적어 단순한 회로로도 충분한 구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 더해 내장된 온도 보상 다이오드는 바이어스 안정성이 우수하고 발열 드리프트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클래스 AB 증폭 회로에서 선형성을 극대화하고 반대로 왜곡은 낮게 유지하면서 효율은 좋은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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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에서 매우 중요한 볼륨단 설계는 가변저항을 사용한 포텐셔미터 기반이다. 여기에 모터를 붙여 리모컨으로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릴레이 스위칭이나 어테뉴에이터처럼 클릭 소리가 나거나 딸깍거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돌아간다. 최상급 아날로그 볼륨은 아니지만 꽤 섬세한 편으로 손맛이 꽤 묵직하고 고급스럽다. 전구 간에 걸쳐 돌려보면 채널 밸런스 흐트러짐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꽤 선형적인 볼륨 증강이 가능하다. 50와트지만 게인이 높아서인지 9~10 정도 방향까지만 올려도 충분한 음향 확보가 가능하다. 따라서 감도가 좀 높은 스피커나 헤드폰을 사용할 경우 아주 낮은 볼륨에서 미세 조정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가격대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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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레가 Brio MK7 테스트는 나의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테스트에 사용한 제품들은 평소 사용하던 것들로 아래와 같다. MBL 111F나 락포트 테크놀로지스 Atria는 무리지만 705S3 Signature 스피커를 제어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한편 오렌더와 반오디오로 세팅한 디지털 소스 기기로도 테스트해보았고, 레가의 내장 DAC로도 테스트해보면서 음질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 테스트 시스템
네트워크 플레이어 : 오렌더 N10
DAC : 반오디오 Firebird MK2 Final Evo
인티앰프 : 레가 Brio MK7
스피커 : 바워스앤윌킨스 705S3 Sig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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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 Eye in the Sky

레가의 사운드는 카트리지와 턴테이블, 그리고 스피커와 앰프에 이르기까지 무척 일관성 있게 느껴진다. 또한 앰프 같은 경우 1번 입력이 포노단이다. 아날로그 전문 메이커다운 설계다. 일단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차분한 편이어서 피로하지 않으면서도 들릴 소리는 모두 들린다. 예를 들어 ‘Eye in the Sky’를 들어보면 힘 있는 리듬 파트가 정적이지 않고 추진력과 리듬감이 좋다. 꽤 빠르고 경쾌한 동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밸런스와 편안한 음색을 갖추었음에도 동적으로는 활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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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레이 – Chant

전반적으로 무대가 약간 앞으로 적극적으로 나와 있다. 하이엔드 앰프들처럼 스피커의 전/후 깊이, 즉 심도를 깊게 만들진 않는다. 이는 낮은 중역대와 높은 저역대가 약간 두드러지는 주파수 특성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특히 저역 쪽은 포만감 넘치게 표현해준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소리의 두께가 두터운 편이라 날카롭거나 엷지 않고 진한 느낌을 준다. ‘Chant’ 같은 곡에서 드럼은 웅장하게 바닥을 찍는다. 50와트라고 해서 왜소한 저역을 내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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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메스니 그룹 – Have You Heard

과거 레가 앰프를 처음 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중·고역 해상력과 무대 표현력은 일취월장한 모습이다. 초창기 순하고 착한 이미지가 좋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약간 무덤덤했던 소리를 생각하면 Brio MK7이 들려주는 중고역 해상력은 칭찬할 만하다. ‘Have You Heard’에서 고역에서의 해상도는 여느 고가 앰프 못지않게 섬세하며 롤오프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음장 표현에서 관건이 되는 고역 해상력 향상 덕분에 이 곡에서 마치 넓은 갈대숲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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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보 두다멜/LA 필하모닉 – 스트라빈스키 : The Firebird

Brio MK7의 내장 DAC 성능이 궁금해 몇 곡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반오디오를 빼고 대신 오렌더 N10의 동축 출력을 Brio MK7의 동축 입력단에 연결해보았다. 사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해상도가 꽤 좋으면서도 레가 특유의 굵고 단단한 소릿결을 들을 수 있었다. 반오디오 DAC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인티앰프에 내장된 DAC 치고는 예상 이상이어서 만일 별도의 CDT 같은 제품을 사용한다면 CD 재생용으로 쏠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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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레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티앰프 중 하나인 Brio. Brio는 이탈리아어로 “활기”, “생기”, “열정”, 즉 “liveliness, vivacity, vigor, spirit”을 뜻한다고 한다. 음악 용어 중 “con brio”가 열정적으로, 활기차게 연주하라는 지시어로 활용되는 걸 볼 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의미다. 필자는 Brio MK7을 들으면서 바로 그 활기, 생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회로 설계에서 오는 생동감과 리듬감이 아마도 이런 음향적 특성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에 당돌한 스피커 제어력은 요즘처럼 얇고 냉정한 소릿결을 가진 하이엔드 앰프에 비해서도 더 음악적인 질감으로 충만했다. 만일 작은 서재, 혹은 책상 위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우선순위에 넣어야 할 제품 중 하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Power Output
50 W per channel into 8 Ω
72 W per channel into 4 Ω

Power Consumption
​200 W

Power Consumption in Standby
0.4 W (activated automatically if no signal present after 1 hour)

Digital Inputs
S/PDIF Isolated 0.5V 75Ω Co-axial
S/PDIF Optical Toslink

Supported sampling rates
32, 44.1, 48, 88.2, 96, 176.4, 192kHz

THD+Noise (A-weighted)
Typically 0.005% at 1kHz

Dimensions (W x H x D)
216 x 79 x 365mm (8.5 x 3.1 x 14.4in)

Weight
4.9kg (10.8lbs)

제조사 : REGA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1,85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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