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리뷰어로 활동하다 보면 아무래도 신제품만 접하게 된다. 특히 디지털 기기들의 발전은 눈부셔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능이 생겨나는 듯하다. 하지만 프리앰프나 파워, 인티앰프나 스피커는 디지털 기기처럼 변화가 빠르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 출시되는 기기들은 예전에 비해 별로 발전한 것도 없으면서 외양만 바뀌고 가격만 올라갔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라도 제품의 상세히 분석해야하는 입장으로서 아주 미세한 변화들도 소리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는 걸 거의 매일 몸소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과거에 출시된 오디오를 즐기는 일은 무척 재미있다. 디자인이 더 멋지다고 생각되는 기기도 있고 설계에서 최신 기종 대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엔 패스 랩스 XA60.5 파워앰프에 오디오 리서치 LS17 프리앰프를 매칭해 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소리가 좋다. 과거엔 거의 솔리드스테이트 프리앰프를 매칭 했었다. 약간 더 호소력이 있었으면 좋겠고 진공관 앰프의 진한 중역이 아쉬웠는데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

LS17는 오디오 리서치의 레퍼런스 3 프리앰프를 다운그레이드한 모델이다. 비슷한 시기에 LS26도 있었다. 어쨌든 당시 LS17의 베이비 레퍼런스 3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출시 시기는 2006년. 당시 4천 달러 정도였으니 지금 출시되었으면 꽤 비쌌을 프리앰프다. 당시 출시된 프리앰프를 보면 에어 어쿠스틱스의 K-1, VTL TL 시리즈, 매킨토시 C1000 같은 것들이다. 파워앰프는 할크로도 있었고 지금도 현역으로 사용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다즐 NHB-108도 이 당시 출시되었다. 스피커는 바워스앤윌킨스 800D, 소너스 파베르 Amati Anniversario 등등. 지금 들어도 정말 좋은, 명기들이 탄생했던 시기.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지만 실제로 빼어난 오디오들이 많이 출시되었던 때다.

이 프리앰프는 입력단에 JFET 트랜지스터를 사용하고 출력단엔 6H30을 사용한 하이브리드 타입 설계를 보인다. 전원부는 트랜스포머를 채용해 리니어 타입으로 설계해놓았다. 한편 볼륨은 무려 104단계로 그 이전 모델에 비하면 꽤 정밀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수백 단계로 조정되는 솔리드 스테이트 프리앰프 정도는 아니다. 오디오 리서치답게 입/출력 단자는 대단히 다양해 편리한 편이며 XLR, RCA 입/출력 모두 대응한다. 리모컨도 지원하는데 전원 버튼을 누르면 한참 웜업 시간이 지난 후 켜진다. 기본적으로 뮤트가 걸리는 것도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기본적으로 오래된 앰프는 내부를 열어 청소를 한다. 일전에 소개한 Deoxit D5를 곳곳을 깨끗이 닦아주고 나니 이번엔 진공관이 눈에 들어온다. 싸구려 소브텍이다. 6H30을 해외에서 검색하다가 그냥 국내에서 구했다. 오디오파트에 연락하니 재고가 있다 해서 구입. 하는 김에 좋은 걸 꼽아주고 싶어서 엔틱 셀렉션 선별관을 호기롭게 주문해서 받았다. 역시 번들로 꼽혀있던 일반 소브텍 관과 소리가 비교 불가다. 훨씬 깨끗하고 투명하며 대역폭도 넓다. 무엇보다 탁한 기운이 걷히고 S/N비가 높아져 시야가 맑아졌다.

오디오 리서치 프리앰프는 참 많이 사용했다. 특히 6H30, 당시 슈퍼관이라고 불리던 진공관이 투입되기 이전의 프리앰프를 많이 사용했다. 그 당시 모델들은 6DJ8(6922)을 사용했다. 하이엔드 오디오 취향의 사람들은 6H30을 좋아했지만 나의 취향엔 일장일단이 있었다. 때론 구형이지만 6DJ8을 사용한 당시 프리앰프의 더 굵고 진한 사운드가 생각나기도 한다. 확실히 레퍼런스 3를 기점으로 6H30을 적극 사용하면서 한층 더 세련된 사운드로 나아간 오디오 리서치의 모습을 다시 확인해본다. 솔직히 요즘 나오는 오디오 리서치는 디자인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이 당시 디자인과 소리가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