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페이즈가 그리는 사운드 스펙트럼
아큐페이즈의 철학은 ‘정밀(Precision)’이라는 단어 하나로 수렴된다. 요코하마 본사 청음실에서 만난 플래그십 시스템은 그들이 지향하는 기술적 정점이 단순한 수치적 우수성을 넘어, 어떻게 음악적 감동으로 전이되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앞서 1부에서 소개한 아큐페이즈 본관의 청음실은 설계 및 R&D 단계에서 계측과 실험이 과연 어떤 사운드로 귀결되는지 알아보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완성된 각 컴포넌트가 지닌 심층적인 기술 메커니즘이 결과적으로 어떤 사운드로 탄생하는지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C-3900S와 Balanced AAVA의 정점
오디오 시스템에서 프리앰프의 역할은 소스 기기에서 전달된 미세한 신호를 손실 없이 파워앰프로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변 저항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볼륨 방식은 저볼륨에서의 정보량 손실과 임피던스 변화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C-3900S는 아큐페이즈의 독자적 기술인 AAVA(Accuphase Analog Vari-gain Amplifier)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입력된 음악 신호를 전류 스트림으로 변환한 뒤, 16개의 가변 게인 앰프 조합을 통해 볼륨을 조절하는 이 방식은 가변 저항이 신호 경로에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낮은 볼륨에서 커다란 볼륨까지 정확하고 세밀한 볼륨 조절은 물론 해상도 손실 없이 탁월한 S/N비를 보여주며 좌/우 편차가 거의 없다. 더 값비싼 프리앰프에도 이 정도 만족도가 높은 볼륨은 발견하기 힘들다.

특히 C-3900S는 두 개의 AAVA 회로를 밸런스로 구동하는 ‘Balanced AAVA’ 구조를 채택하여, 노이즈 레벨을 이전 모델 대비 30% 이상 감소시켰다. 실제 청음 시 느껴지는 압도적인 적막함과 극소음량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운드 스테이지의 핵심 동력이다.

클래스 A 증폭, 모노블록 A-300의 지배력
A-300은 아큐페이즈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순 A급 모노블록 파워앰프다. 이 기기의 핵심은 ‘리니어리티(Linearity)’와 ‘댐핑 팩터(Damping Factor)’에 있다. 출력 단에는 고출력 파워 MOS-FET을 20개씩 사용해 병렬 푸시풀 구조로 배치하여 8옴에서 125W, 1옴에서 무려 1,000W라는 경이적인 출력을 순 A급으로 뽑아낸다.

주목할 점은 1,000 이상의 댐핑 팩터다. B&W 801 D4 시그니처와 같은 대형기의 우퍼를 이토록 가볍고 기민하게 구동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강력한 제어력 덕분이다. 또한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포머와 100,000μF의 대용량 필터 콘덴서는 어떤 급격한 피크 신호에서도 전압 강하 없는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한다.
디지털 소스: DP-1000/DC-1000 & DC-500
- DP-1000 / DC-1000 분리형 콤비

트랜스포트인 DP-1000은 진동과의 전쟁을 선포한 기기다. 7.2kg의 육중한 베이스 플레이트와 저중심 설계의 SACD/CD 드라이브는 디스크 회전 시 발생하는 미세한 공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읽어 들인 데이터는 독자적인 인터페이스인 HS-LINK Ver.2를 통해 DAC인 DC-1000으로 전달된다.

DC-1000은 ESS 테크놀로지의 ES9038PRO를 채널당 8개씩 병렬 구동하는 MDS++(Multiple Delta Sigma) 방식을 취한다. 이는 변환 오차를 극한으로 줄여 왜율과 노이즈를 혁신적으로 개선한 아큐페이즈의 전매특허다. 최근 필자 역시 SACD를 수집해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 유독 관심이 많이 가는 기기들이다. 확실히 네트워크 스트리밍에서는 도달하기 힘든 적막함과 음악적 흡입력이 돋보인다.

- 뉴 페이스: DC-500 DAC의 존재감
새롭게 등장한 DC-500은 아큐페이즈의 최신 디지털 알고리즘이 하위 모델로 어떻게 트리클 다운(Trickle-down)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모델이다. 특히 이번 시연에서 루민과 오렌더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번갈아가며 DC-500에 연결해 들어보기도 했다. 현대적인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편의성을 수용하면서도, 최종 아날로그 출력 단계에서는 아큐페이즈 특유의 밀도감과 매끄러운 텍스처를 유지한다. 이는 범용 DAC들이 범접할 수 없는 ‘브랜드 튜닝’의 영역이다.
아큐페이즈 DAC의 가장 큰 특징은 범용 칩셋의 한계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병렬 구동 방식에 있다. DC-500 역시 최신 고성능 델타-시그마 DAC 칩셋을 채널당 여러 개 병렬로 배치하는 MDS++(Multiple Delta Sigma) 방식을 취한다. 이는 각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서로 상쇄시켜 왜율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신호 대 잡음비(S/N Ratio)를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DSD 신호 처리에 있어 아큐페이즈만의 MDSD(Multiple Double Speed DSD) 기술이 투입되었다. DSD 데이터를 지연 회로를 통해 복수의 경로로 분산시킨 뒤 필터링함으로써, 별도의 로우패스 필터 없이도 고역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이는 DSD 음원이 가진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아날로그적 질감을 손상 없이 재현하는 핵심 기저다. 이 외에도 풀 밸런스 회로에 완벽한 좌우 대칭 구조를 취했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섹션에 독립된 전원부를 설계해 상호 간섭(Cross-talk)을 최소화하는 등 아큐페이즈의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다.

아직 출시 전이고 처음 마주친 모델이라 아마도 이번 시청실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본 장비일 듯하다. 특히 루민과 오렌더 제품을 렌더러로 사용해 재생했을 때 트랜스포트의 특징도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줄 정도로 정교했다. DC-500 DAC는 기술적 수치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MDS++ 방식의 정밀함과 아큐페이즈 특유의 풍부한 질감이 조화를 이루어, 네트워크 스트리밍 음원조차 고품질 LP를 듣는 듯한 편안함과 깊이를 제공한다. 요코하마 본사 청음실에서 보여준 그 압도적인 사운드 스테이지와 정위감은 DC-500이 하이엔드 디지털 소스기기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전원을 통한 시스템 잠재력의 극대화 : PS-1250
청음실 바닥을 차지한 PS-1250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입력된 교류 전원의 파형을 순수한 사인파(Sine Wave)로 재공급하는 전원 공급 장치다. 오디오 시스템의 모든 에너지는 결국 전원에서 온다는 점을 상기할 때, PS-1250은 시스템 전체의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필수 요소다.

이 완벽한 전원 환경 위에서 B&W 801 D4 시그니처는 극도로 투명한 모니터링 능력을 선보인다. 반면 파인오디오는 동축 특유의 정확한 위상 정위감에 아큐페이즈의 A급 온기를 덧입혀 음악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 두 스피커를 번갈아 들어보면서 느낀 점은, 아큐페이즈 시스템이 스피커의 개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스피커가 가진 최고의 잠재력을 ‘투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사실이다.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다 : DG-68 & DG-78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에서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변수는 ‘청음 공간’이다. 아무리 완벽한 앰프와 스피커라도 방의 크기, 구조, 가구 배치에 따른 부밍(Booming)이나 특정 대역의 딥(Dip)과 피크(Peak)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다양한 공간 보정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 네트워크 플레이어 및 네트워크 앰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큐페이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DG 시리즈를 출시해오고 있다. 이번 탐방에서 DG-68은 물론 신제품 DG-78도 만날 수 있었다.

DG 시리즈는 단순히 음색을 조절하는 일반적인 이퀄라이저를 넘어, ‘보이싱(Voicing)’과 ‘이퀄라이징(Equalizing)’을 통해 스피커가 공간에 완벽하게 안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즉, 기기의 소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기가 놓인 공간의 음향적 결함을 디지털 보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 제품의 존재 이유다.

아큐페이즈가 도달한 음악의 경지
아큐페이즈 메인 청음실의 시스템은 오디오 공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지점 중 하나다. C-3900S의 무손실 제어, A-300의 압도적 구동력, 그리고 DC-1000/DC-500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정밀도는 오디오 파일들이 왜 그토록 아큐페이즈 사운드에 열광하는지를 증명한다. 이 시스템은 단지 소리를 재생하는 기계가 아니라, 연주자의 숨결을 재현하는 정밀 계측기이자 예술적 도구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