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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일본의 레코드 덕후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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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히데야스의 <레코스케>는 ‘귀여운’ 만화책이다. 책표지 정중앙에 위치한 주인공의 표정이 그렇고, 비틀즈의 오밀조밀한 이야기가 그렇고, 결정적으로 음반수집광의 곰살맞은 대화가 그렇다. <레코스케>는 설명대로 일본 음반점을 주무대로 펼쳐지는 수집가의 일상이다. 주인공 이름은 레코스케(RECOSUKE). 레코드(RECORD)와 제법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레코스케표지

레코스케의 서식지는 음반점이다. 그는 쇠심줄 같은 열정으로 레코드를 긁어 모은다. 그가 열렬히 추종하는 음악가는 2001년 세상을 떠난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다. 존 레넌(John Lenn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 조지 해리슨. 여기까지는 내 취향과 일치한다. 필자 역시 비틀즈에서 조지 해리슨의 음악을 가장 즐겨 들으니까.

레코스케 3

수집가와 수집광은 어감의 차이가 존재한다. 수집가란 취미나 연구를 위해 물건이나 재료를 찾아 모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수집광은 어떨까. 간단히 말해 뭔가를 모으는데 미쳐버린 사람이다. 누구 말처럼 미쳐봐서 안다. 수집광이 되면 눈빛이 쎄지고, 어투가 견고해지고, 생활반경 역시 달라진다. 요즘은 수집광의 삶이랑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20~30대에는 증세가 심각했다.

수집광이라면, 음반수집광이라면, 레코스케의 삶을 훔쳐보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을 테다. 레코스케는 ‘골고루 많이’보다 ‘한 놈만 패는’ 수집행위를 선호한다. 조지 해리슨의 똑같은 음반을 중복해서 수집하는 일이 그렇다. 중복도 그냥 중복이 아니다. 같은 음반을 3~4장 이상 소장하다니, 골수수집광이 분명하다. 필자보다 한참은 높은 차원의 공력이다.

일본 레코드점

일본에 가면 반드시 들리는 장소가 있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레코드점이다. 9번의 일본여행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반나절 넘게 10여 군데의 음반점을 들락거린 적도 있었다. 형편에 맞게 ‘사재기’보다 ‘눈요기’에 비중을 둔다. 어떤 취미든 무리하면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줄줄이 터지기 마련이다. 음악에 미쳐 살지만 음악에 체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코스케는 2천 엔이 넘는 음반은 수집대상에서 제외한다. 싸고 많은 음반을 수집하는데 방점을 둔다. 얼핏 합리적인 수집행위로 보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가격이 저렴하면 초반이나 명반을 구하기는 어렵다. 음반 상태 역시 나쁠 확률이 높다. 만화에서 레코스케가 수집한 레코드의 상태는 좋지 않다. 질보다 양을 택한 결과다. 레코스케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레코스케 2

만화 <레코스케>는 일본이라는 음악시장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한국과 달리 아날로그문화를 쉽사리 포기 못하는 그들의 눅진한 속성이 이유다. 지금도 일본에는 음반(주로 CD나 DVD)대여점이 존재한다. 신주쿠에는 장르별로 음반을 판매하는 가게가 성업 중이다. 일본의 음반재발매 열기는 꺼지지 않았다. 그만큼의 관심층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한국에도 10년 전부터 엘피 수집 붐이 일고 있지만 이미 시장은 음원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엘피와 함께 아날로그문화를 대표하는 종이책 역시 여타 미디어의 물결 속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비록 엘피보다 점유율이 높다고 하지만 종이책의 위기는 2021년 6월 반디앤루니스 도산에서 보듯이 순탄치 않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레코스케 4

음반수집광 레코스케는 아날로그형 인간에 가깝다. 그가 음반 수집을 포기하고 음원을 택한다면 비용과 시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레코스케는 음반이라는 고전적인 매체에 집착한다. 끝없이 일본 전역의 음반점을 순회하면서 자신이 찾거나 우연히 발견하는 음반을 긁어모은다. 그에게 수집이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무려 20여 년간 단편 형태로 연재한 만화 <레코스케>는 일본에서 3권의 단행본이 나왔다. 일본어판 <레코스케>를 소장한 지인이 있다. 그 역시 1만장이 넘는 음반을 모았으니 레코스케에 버금가는 수집광이다. 자신의 욕구불만을 수집행위로 해소한다는 심리학적 분석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무엇인가에 미친 이유를 자신만큼 독하고 세세하게 아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레코스케 1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레코스케는 2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레코스케 그대로입니다.”라고. 인공지능이 판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변화를 거부하거나 초월한 자만이 집어드는 금단의 사과다. 사과를 씹는 자는 많지 않다. 그 반대편에 제2, 제3의 레코스케를 꿈꾸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이들은 <레코스케>의 마지막 페이지를 결연한 마음으로 넘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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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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