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의 즐거움과 그 역설
드디어 내게도 독감이 찾아왔다. 2009년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발 신종 플루에 걸려 무려 보름간 끙끌 알아 누웠던 이후 실로 오랜만이었다. 백만년만에 내게 찾아온 독감은 그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막강한 강도로 나를 괴롭혔다. 음악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한 건 사나흘이 지나서였다. 이전엔 음악을 흡수할 나의 촉수마저 힘을 잃어버린 듯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과정은 내게 피나는 노력을 요구했다. 프리, 파워앰프에 전원을 올려야했고 적당한 정신적 이완과 수축을 오가면서 볼륨을 조절해야한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번쩍 들어 올리던 아이패드가 그 동안 체중을 늘렸는지 천근만근이다.
포기했다. 그리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후 애플 TV를 째려보았다. 그래, 나는 애플 빠, 애플뮤직 패밀리다. 그리고 애플 TV가 사무실에 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주로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사용할 요량으로 무려 2십만 원이 넘는 거금을 투척해 손에 넣은 애플 TV 아니던가. 애플 TV를 통해 애플 뮤직을 들었다. 앰프는 AV 리시버인데 HDMI ARC로 연동되게 세팅해놓길 잘했다. 애플 TV를 켜면 자동으로 리시버도 켜진다.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문명의 도그마를 역설하면서도 문명의 종이 되어버린 내가 한심하지만 음악을 이렇게 수월하게 들을 수 있음에 문명에 감사했다. 나라는 그저 평범한 안 인간은 문명의 편의 앞에서 한순간에 설득당하고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스트리밍 스피커가 구원한 음악
가끔은 그저 스마트폰만 들어 클릭 몇 번이면 간단하게 음악을 배경 삼아 고단한 일상을 이겨낼 수 있어야한다. 그 때 나타난 구세주가 있었다. 약 2년 전이었던가. 영국 케프에서 LSX라는 스피커를 출시했다. 이미 케프는 LS50 Wireless를 출시한 상태였지만 그보다 더 작고 앙증맞은 디자인에 패브릭 마감이 예뻤고 무엇보다 책상 위에 얹어놓고 쓰기 좋았다. 그리고 아얘 앰프나 소스 기기 따위를 켜고 끌 일도 없었다. 스피커 안에 그러한 주변 컴포넌트가 모두 사이좋게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사이즈에 앰프와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모두 품을 수 있었을까? 디지털은 축소의 미학이며 그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다.
결국 케프는 LSX 의 대성공을 발판삼아 LSX II를 출시했다. USB 입력이 추가되는 등 성능과 기능 업그레이드를 통해 LSX II는 이젠 케프 뿐만 아니라 액티브 스트리밍 스피커라는 장르의 선봉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제 LSX II LT라는 버전을 마주하게 되었다. 외관은 언뜻 거의 동일해보였다. 케프의 플래그십부터 하위 모델까지 모두 도맡은 마이클 영의 디자인이다. 하지만 기존 마감과 차이점을 보인다. 양 옆을 둘러싸던 패브릭이 빠졌고 무광 버전만 존재한다. 색상도 기존에 투 톤 컬러로 입체감을 주었던 것과 달리 하나의 컬러로 모든 면을 통일한 무광 마감만 존재한다.
인클로저부터 내부 설계를 보면 이 예뻐보이는 작은 스피커는 모두 케프의 음향적 목적을 향해 소실점이 모아진다. 마이클 영의 디자인 바탕엔 유한 요소 분석 기법(FEA)을 통해 음향적 최적화 연구가 있었고 내부엔 더욱 복잡다단한 소자와 기술이 투입된다. 간단해보이지만 스피커와 앰프,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모두 이 작은 몸체에 조화롭게 공존하게 만든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드라이브 유닛은 케프가 수십 년 동안 진화시켜온 동축 유닛이다. UNI-Q로 명명한 이 유닛은 현재 12세대까지 진화했으며 LSX II LT를 11세대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 엔트리급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같은 축 선상에 트위터와 미드/베이스 우퍼가 공존할 때의 시간축, 위상 오류의 최소화라는 위업엔 변함이 없다.
아마도 내부에 과연 어떤 앰프와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어떻게 내장하면 이렇게 작은 사이즈의 스트리밍 스피커가 탄생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경우 이미 축소가 손쉽게 가능할만큼 집적회로 기술이 발전해있다. 광, USB C 입력단이 존재하며 우퍼 사이즈의 한계로 인해 저역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별도의 서브우퍼를 연결할 수 있는 서브우퍼 출력도 마련되어 있다. 게다가 ‘Music Integrity Engine’이라고 명명한 일종 DSP 회로를 내장해 여러 음향적 변화를 개인이 조정할 수 있다.
한편 내부에 내장한 앰프는 트위터에 30와트, 미드/베이스 우퍼에 70와트 앰프가 탑재된다. 기존 LSX II와 동일한 앰프며 출력 수치다. 요컨대 한 쪽에 100와트씩 총 200와트 대출력 앰프가 내장된다. 이 스피커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었던 데엔 이 앰프가 클래스 D 증폭이라는 점이다. 작은 사이즈에서도 커다란 출력을 낼 수 있는 클래스 D의 강점은 여기서도 빛났다. 만일 클래스 AB 앰프로 설계했다면 크기도 커질뿐더러 무게도 한참 증가할 것이다. 게다가 발열 문제는 스피커의 내구성에 치명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앰프 구성은 패시브 스피커를 사용할 경우 모노 블록 파워 앰프를 무려 두 조로 바이앰핑 구성한 것과 같은 것이다. 앰프는 물론 연결 케이블 그리고 출력 두 조를 지원하는 프리앰프까지 호사스러운 구성을 이렇게 작은 사이즈의 스피커 한 조로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놀라운 가격 대 성능을 예상할 수 있다.
한편 기존 LSX II와 차이점이라면 일단 좌/우 채널, 즉 프라이머리 스피커와 세컨더리 스피커에 모두 전원 케이블을 꼽았던 것과 달리 LT 버전은 프라이머리 스피커에만 전원이 들어갔다. 그럼 세컨더리 스피커 작동에 필요한 전원은 어디로부터 공급받는 것일까? 다름 아닌 USB C 케이블로 전원과 음원 데이터가 이동한다. 대신 기존 유무선 LAN 케이블 연결 방식은 삭제했다. 굳이 무선이 필요한 환경이 아니라면 성능 면에선 크게 다운그레이드는 아니다. 한편 3.5mm AUX 아날로그 입력을 제거한 모습.
기본적으로 블루투스, 에어플레이, DLNA/UPnP를 지원하며 ROON 및 MQA의 경우 LT 버전에선 지원하지 않는다. 이 외에 타이달, 코부즈 등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에 모두 대응하며 크롬캐스트까지 지원하는 점 등 기능 면에선 LSX II와 동일하다. 대신 한 쪽 전원 인렛을 삭제하고 USB C 규격으로 좌/우 스피커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의 변화 등이 눈에 띈다. 결론적으로 타협 가능한 인터페이스를 간소화하고 대신 가격은 최대한 낮춘 버전이 LSX II LT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LT는 ‘lite’의 약자가 아닐까?
청음
이 스피커 테스트에 필요한 주변기기는 공유기나 허브 정도밖엔 없다. 그리고 동봉된 전원 케이블과 USB C 케이블이 LSX II LT로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전부다. 일단 에어플레이로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들어보면 처음 LSX를 들었을 때의 감흥이 다시 떠오른다. 기본적으로 소리가 맑고 청아해 마치 300B 삼극관에 풀레인지 스피커로 음악을 드는 듯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해상도는 무척 좋아 보컬의 음색, 토널 밸런스가 정확하고 작은 디테일로 놓치지 않는다.
이 스피커는 작지만 큰 소리도 잘 낸다. 다이내믹스 표현이 생각보다 뛰어나며 저역도 아주 낮은 저역 외엔 단단하고 당차게 표현해낸다. 예를 들어 더 위켄드의 ‘I feel it coming’을 들어보면 피쳐링 아티스트 다프트 펑크의 연주가 빛을 발한다. 특히 리듬감이 뛰어나 빠르고 강력한 비트가 넘실대는 구간들에서 리드미컬하게 치고 나간다. 클래스 D 앰프를 채용한 만큼 과도 응답 특성이 뛰어나 어택과 펀치력이 높고 뒷맛이 개운하다. 이러한 팝 음악에서 LSX II LT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는 모습이다.
역시 저역이 엄청 무겁고 권위적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소형기에서 누구나 그러한 걸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크기를 감안하면 신통방통한 중저역 응집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중, 저역 주파수 구간에 매우 평탄한 밸런스 감각을 보여주어 불편한 구석이 없이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아트 페퍼의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를 들어보면 인터플레이와 패시지 표현들이 섬세하고 재빠르다. 특히 색소폰의 복잡다단한 배음 표현이 뛰어나서인지 오염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싱싱한 사운드를 표출해낸다.
과연 대편성 음악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사실 이 정도 사이즈에 그것도 앰프와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모두 내장한 복합기에서 대단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실제 들어보면 제법이다. 존 윌리엄스 지휘, 빈 필하모닉 연주로 ‘The Imperial March From Star Wars’를 들어보면 기세 좋게 출발하는 악기들의 빠른 어택에 깜짝 놀라게 될 만큼 스피드가 빠르다. 한편 저역 팀파니 등 규모 면에서는 당연히 축소된 오케스트라를 보여주지만 악기들의 정위감은 대단히 뛰어나다. 시간축, 위상 왜곡이 사라진 동축 스피커였기에 작은 사이즈에서도 가능한 포커싱과 정위감이다. 또한 거리에 따른 무대, 토널 밸런스 왜곡이 적기 때문에 데스크톱 등 근거리 시청에도 굉장히 유리한 스피커다.
총평
나는 항상 음악을 듣는 과정의 즐거움을 강변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문장을 기억하는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은 그렇게 하릴없이 뻗은 터널의 마지막에 방점을 찍으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뜬금없이 눈앞에 펼쳐진 설국보다는 검은 터널 안에서 미쳐 볼 수 없었던, 삭제된 터널 밖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여행의 참 의미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그 여행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여행의 과정을 즐길만한 체력과 정신력, 관찰력 등 의지와 힘이 필요한 일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마당에 과정은 귀찮을 뿐이다. 마치 엘피를 올리고 턴테이블을 돌리고 프리와 파워앰프를 켜고 소파에 앉은 이후에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독감에 걸려 비실대는 나는 그냥 음악을 포기하고 말겠다. 케프 LSX II LT는 이런 나의 근황에 찾아온 음악의 구원자에 다름 아니었다. 책상 스피커를 또 바꿔야하나 하는 고민이 불쑥 찾아왔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드라이브 유닛 (스피커당)
Uni-Q 드라이버 어레이:
HF: 19mm(0.75인치) 알루미늄 돔
LF/MF: 115mm(4.5인치)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 콘”
주파수 범위 (-6dB) 85dB/1m에서 측정
49 Hz – 47 kHz
- EQ설정에 따라 다름
주파수 응답 (±3dB) 85dB/1m에서 측정
54 Hz – 28 kHz
- EQ설정에 따라 다름
앰프 출력(스피커당)
LF: 70W
HF: 30W
앰프 등급(스피커당)
LF: Class D
HF: Class D
최대 SPL 1m에서 측정
102 dB
무선 스트리밍 기능 : 에어플레이 2, 구글 크롬캐스트, Roon Ready, UPnP Compatible, 블루투스 5.0
스트리밍 서비스 : 스포티파이 커넥트를 통한 스포티파이, 타이달 커넥트를 통한 타이달, 넥트를 통한 타이달, 아마존 뮤직, 코부즈, 디저, QPlay를 통한 QQ Music,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
- 국가에 따라 서비스 제공 여부가 다름
소스 해상도
네트워크 최대384kHz/24bit
옵티컬 최대 96kHz/24bit
USB C형 최대 192kHz/24bit
HDMI 최대 1.411Mbps PCM
*소스 해상도에 따라 달라짐
인터스피커 연결
무선: 모든 소스 24bit/48kHz PCM으로 리샘플링 가능
유선: 모든 소스 24bit/96kHz PCM으로 리샘플링 가능
지원 형식(네트워크)
MQA, DSD, FLAC, WAV, AIFF, ALAC, AAC, WMA, MP3, M4A, LPCM and Ogg Vorbis
가정 자동화 제어 시스템과 통합 : Elan, RTi, Crestron Home, Savant, Control4
사이즈 (각 스피커 당 HWD) : 240 × 155 × 180 mm
무게(세트 당) : 7.2kg
전원 입력 : 100 – 240VAC 50/60Hz
전력 소비 : 200W (작동 전력), <2.0W (대기 전력)
입력
첫번째 스피커 : HDMI eARC, TOSLink 옵티컬, USB C형, 아날로그 3.5mm 보조, RJ45 이더넷(네트워크), RJ45 이더넷(인터스피커)
두번째 스피커 : RJ45 이더넷(인터스피커)
출력
RCA 서브우퍼 출력
WI-FI 네트워크 표준 : IEEE 802.11a/b/g/n/ac, IPv4, IPv6
Wi-Fi 네트워크 주파수 밴드 : 듀얼 밴드 2.4 GHz / 5 GH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