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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신호탄

에포스 ES-7N

20250121 181847 min

브랜드의 명멸과 재탄생

가끔 오디오 브랜드, 혹은 엔지니어의 역사를 훑어보다 보면 미싱 링크, 그러니까 잃어버린 고리를 발견하게된다. 한창 빼어난 앰프를 만들던 크렐의 단 다고스티노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쫒거냐 한동안 야인처럼 사라져버렸다가 자신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고 신제품을 만들어냈다. 마크 레빈슨은 사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에서 초창기에만 근무했고 이내 첼로로 떠났다가 나중엔 레드로즈, 그리고 갑자기 다니엘 헤르츠로 나타났다. 아발론의 설립자 찰스 한센은 아발론을 닐 퍼텔에게 넘긴 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에어 어쿠스틱스로 완벽히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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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넘어가면 BBC 모니터 스피커를 중심으로 방계 브랜드가 브리티시 사운드의 춘추전국 시대를 열어나가던 시절 많은 브랜드와 엔지니어들의 서사가 함께한다. 1970년대는 로저스, 하베스, 스펜더 등 최정예 군단들이 태어났고 그 외에 차트웰, 굿맨 등 다양한 브랜드가 이 분야에서 군웅할거 하는 세태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사라진 브랜드도 많아 현재까지 건재한 하베스, 스펜더 정도고 이후 차트웰은 그라함이 멋지게 부활시켰으며 스털링, 펠컨, 그리고 그라함이 신진 브랜드로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앰프 등 컴포넌트 부문으로 넘어가면 네임, 린은 네트워크 스트리밍 시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브리티시 사운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한편 쿼드, 오디오랩 같은 브랜드는 IAG로 병합되었다. 사이러스는 한동안 네트워크 스트리밍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블루사운드와 파트너쉽을 맺으며 재기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즈음 되면 우리는 입문 시기 영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한 브랜드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다름 아닌 에포스라는 스피커 브랜드다.

칼 하인츠 핑크
칼 하인즈 핑크(핑크팀)

에포스의 부활

브리티시 BBC 모니터의 불길이 여전하고 PMC 같은 메이커가 저변에서 싹트길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에포스라는 브랜드는 그 서막을 알렸다. 1983년 로빈 마샬이 합리적인 가격대에 BBC 모니터의 대안이 될 만한 스피커를 만들어내며 그 기치를 올린 것이다. 당시 여러 스피커들 사이에서 에포스는 무척 저렴한 가격대에 개성 넘치는 스피커를 만들어내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급변하는 역사 속에서 에포스는 모던 쇼트에 매각되고 1990년대엔 크릭의 품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러나 한동안 신제품 소식이 없던 에포스는 2020년 핑크팀이라는 브랜드 산하로 귀신같이 재탄생하게 된다. 브리티시 사운드르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했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미싱 링크 에포스의 부활이다.

핑크팀 KIM

핑크팀이라는 브랜드는 다름 아닌 칼 하인즈 핑크라는 불세출의 스피커 전문 엔지니어가 2014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미션, 탄노이, 캐슬, Q 어쿠스틱스 등 주로 영국 브랜드의 설계를 외주로 진행해준 엔지니어다. 필자는 이미 핑크팀의 스피커를 테스트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미 여러 브랜드의 스피커 설계를 진행, 자문해왔던 칼 하인즈 핑크의 실력은 자사의 스피커에서 더욱 또렷이 빛난다. 대표적으로 KIM과 BORG같은 스피커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보적인 매력으로 몇 해 전 ‘올해의 스피커’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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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7N

핑크팀의 칼 하인즈 핑크에 의해 보란 듯이 부활한 에포스의 세 개 스피커 중 이번에 ES-7N이라는 엔트리 모델을 만났다. 과거 에포스를 기억한다면 전혀 상상하기 힘든 세련된 디자인이 눈에 띈다. 높이는 29cm 정도로 아담하며 무게는 약 7.6kg으로 꽤 묵직하다. 전면에 두 개의 유닛을 탑재한 2웨이 스피커며 전면에 포트를 만들어놓은 저음 반사형 스피커로 보인다. 스탠드는 별매인데 70cm 정도를 추천하고 있다. 뒤로 좀 길며 후면엔 싱글 와이어링만 지원하는 바인딩 포스트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고 가운데에 패시브 스피커에서 볼 수 없는 토글 스위치가 의문 부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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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트위터는 1인치 하드 돔 방식이다. 본사의 설명에 의하면 알루미늄 진동판에 얇게 세라믹을 코팅한 진동판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미드/베이스 우퍼의 경우 5인치로 꽤 작은 사이즈. 진동판의 경우 마이카 충진, 폴리프로필렌 진동판를 사용했다. 흥미로운 건 트위터와 우퍼가 수직선상에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수평 축을 중심으로 볼 때도 한 쪽으로 치우쳐 배열한 모습이다. 그리고 트위터와 베이스 우퍼 의 수직 축 중간 즈음에 포트를 배열해놓은 형태다. 설치할 경우엔 트위터와 우퍼가 안쪽을 향하게 배치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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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클로저는 8mm MDF를 두 겹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내부가 상당히 간결하다. 캐비닛을 고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단 하나의 버팀목만 좌/우를 가로질러 설치한 모습. 그리고 독특하게 인클로저 내부 상단에 목재 블록을 하나 붙여 놓은 모습이다. 에포스에서 설명하기로는 이를 통해 스테레오 이미징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전면 포트의 경우 밖에서 보면 한 쪽으로 쏠려 있는 형태인데 내부에선 직선이 아니라 구부러진 형태다. 중악에서 측면을 가로질러 구부러지면서 전면으로 포트 에너지를 방사하는 설계로 전면 유닛의 방사 에너지와 합해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피크를 최소화하면서 자연스러운 에너지 방사를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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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에 마련해놓은 토글 스위치의 역할은 알고 보면 매우 창의적이다. 토글 스위치를 위쪽으로 세팅하면 86dB, 하단에 놓으면 89dB로 바뀌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만든 이유가 꽤 실리적이다. 사실 일반적인 청음 환경은 업체나 전문가 등 극히 일부만 사용하는 전용 시청실이 아니다. 따라서 벽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사용하기 힘든 경우도 많고 북셀프라는 말의 어원처럼 실제로 책장이나 선반에 넣고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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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향적으로는 이런 위치에 따른 대역 밸런스 변화로 인해 애초에 설계자가 의도한 소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예를 들어 스피커를 뒷벽에 가깝게 설치하면 음향 출력, SPL 수치 모두 올라간다. 만일 스피커를 벽 모서리에 설치할 경우 더욱 대대적으로 출력이 증가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일부 스피커는 포트를 막을 수 있도록 포트 마개를 제공하며 설치 상황에 따라 포트를 두 종류를 제공하기도 한다. 벽면 장착 용도로 설계한 스피커를 일반적인 세팅에 놓으면 저역이 약해지고 반대로 일반적인 위치에 세팅해서 듣도록 설계된 스피커는 벽에 붙이면 저역이 벙벙거리는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파수 응답 특성
주파수 응답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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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던스 커브 특성

에포스는 ES-7N 크로스오버 설계를 통해 하단으로 토글을 조절하면 감도가 바뀌어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를 셋업 환경에 맞게 적당히 바꾸어준다. 예를 들어 벽에서 30~50cm 정도 거리를 두고 배치할 경우엔 토글을 상단에 놓아 86dB로 듣고 벽에 바짝 붙여서 듣는 경우엔 하단으로 내려 89dB로 듣길 권한다. 그러니까 토글은 크로스오버에서 두 개의 선택지를 두어 중, 고역의 감도를 올리고 내려주는 역할을 하게끔 설계한 것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물론 칼 하인즈 핑크에게서 왔다. 그의 핑크팀 스피커 설계를 탐구하다보면 공명과 내부 구조에 대한 방대하고도 빛나는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되는데 에포스도 그의 품에서 완벽히 재탄생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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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장비는 아래와 같다. 제품 가격이 3백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훨씬 더 높은 가격대 제품을 사용했다. 물론 가지고 있는 제품 중 더 낮은 가격대 제품으로 테스트할 수도 있었지만 이 모델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 레퍼런스 사운드를 들어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성능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 입장에서도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보인다.

네트워크 플레이어 : 오렌더 A1000
DAC : 코드 일렉트로닉스 Hugo TT2
프리앰프 : 클라세 CP-800MKII
파워앰프 : 패스랩스 XA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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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보컬이나 피아노 등 여러 독주 악기들로 운을 뗐다. 일단 전체적인 밸런스 자체는 매우 안정적인 편이다. 작은 북셀프라고 해서 중, 고역 쪽으로 에너지가 몰리는 법 없이 제법 평탄한 대역 밸런스를 보여준다. 특이하게 전체 주파수 응답 구간을 스펙에 표기하고 있지 않은데 약 5~60Hz 정도까지 재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간 저역 부근부터는 감쇄가 일어나는데 무척 단정하고 깨끗하며 딥이나 피크가 없어 자연스러운 균형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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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 고든 – Cheese cake

에포스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대표 주자 중 하나였다. 물론 현재는 핑크팀에 합류했고 칼 하인즈 핑크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톰한 중역대와 절대 냉정하지 않고 따스한 질감이 깊게 새겨져 있다. 더불어 치밀한 중역대 디테일 위에 올려진 고역은 금속 트위터의 시원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심벌 사운드처럼 고역 위주의 악기들에선 마치 드럼 셋이 눈앞에 있는 듯 무척 생생하게 펼쳐진다. 과거 에포스에 비하면 확실히 착색이 급격히 줄었고 해상력이나 SN비는 대폭 증가했다. 이런 곡에선 핑크팀 스피커의 DNA가 조금씩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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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켄드 – Doin’ it right

저역 표현은 이 스피커의 기본기를 잘 드러낸다. 곡의 초반부에서 깊게 떨어지는 저역은 그 깊이가 깊지만 우렁차기보단 단단하고 단정하게 표현된다. 스피커에 비하면 꽤 큰 공간이라서 넓게 펼쳐놓고 시청했는데 개인의 작은 서재에서도 저역이 부스트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특히 86dB로 세팅하면 어떤 공간에서도 반듯하고 용모 단정한 사운드로 품위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는 인클로저 설계와 포트 디자인 등 칼 하인즈 핑크가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설계 노하우로부터 얻은 쾌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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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게르기예프/빈 필 – 베를리오즈 : Symphonie Fantastique

세라믹 코팅 알루미늄 트위터는 매우 빠른 스피드와 함께 음색 부분에서도 화창하고 시원한 전망을 선사한다. ‘March to the Scaffold’를 들어보면 선형성이 뛰어나 쭉쭉 뻗어나가는 관악기들의 움직임에서 빛이 나는 듯 명쾌하다. 하지만 차갑거나 딱딱하지 않고 세라믹 특유의 약간 달콤한 뒷맛도 있어서 듣는 맛이 좋다. 저역은 분명 한계는 있으나 퍼지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편. 대편성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특징과 개성을 당당히 펼쳐내는,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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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1980년 에포스 스피커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성장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오디오 애호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당시 에포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합리적인 가격대에 음악적 울림이 깊은 사운드로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독일 칼 하인즈 핑크의 핑크팀 산하로 자리를 옮긴 에포스는 단순한 리바이벌 차원의 재등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칼 하인즈 핑크는 예전부터 에포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고 이젠 프리랜서 설계 컨설턴트가 아닌 핑크팀의 대표로서 에포스를 인수한 것이기 때문.

핑크팀 인수 후 에포스의 결과물엔 확실히 핑크팀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단지 과거의 에포스를 상상하면 곤란할 정도다. 핑크팀의 KIM이나 BORG를 테스트하면서 깜짝 놀랐던 내게 에포스 ES-7N은 마치 핑크팀의 대중화 버전처럼 다가온다. 에포스는 브리티시 사운드를 기반에 두었으나 핑크팀의 DNA를 흡수하면서 완벽히 새롭게 부활했고 그 결과물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가격대 북셀프 스피커를 원한다면 반드시 고려해볼만한 스피커의 등장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임피던스: 4옴, 최소 3옴(15kHz)
감도: 2.83V
임피던스: 86dB/89dB
우퍼: 130mm 폴리프로필렌
트위터: 28mm 세라믹 코팅 알루미늄 돔
크로스오버 주파수: 2.000Hz
크기: 290 x 200 x 270 mm (HWD)
스탠드: 약 700 mm 추천
무게: 7,6 kg
마감: 오렌지 반무광, 월넛, 화이트 반무광, 블랙 반무광

제조사 : Epos Loudspeakers (독일)
공식 수입원 : 위더스 오디오 (02-6248-1016)
공식 소비자 가격 : 3,3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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