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3부작의 완결, DAC에 한 획을 긋다
내가 사랑한 디지털
최근 CD를 다시 구입해 즐기고 있다. 근처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도 좋고, 좀 더 차를 타고 나가면 오랜 단골 음반숍도 좋다. CD는 언제부턴가 천덕꾸러기가 되었는지 가격도 저렴하고 음질도 좋은 것들이 지천이다. LP를 주로 모으긴 했지만 나 또한 한때 5천 장 이상의 CD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엔 LP가 너무 비싸지고 환율도 올라 해외 주문을 멈추고 CD를 구입해 듣고 있는데, 여전히 숨겨진 보석 같은 타이틀이 많다. 때론 비싼 값에 굳이 LP를 구입할 이유가 없는 CD도 많다. 예를 들어 여러 레이블에서 발매했던 SACD, 혹은 레퍼런스 레코딩스 등에서 의욕적으로 발매했던 HDCD 등이 대표적이다.

생각해보면 CD가 메인스트림이었던 당시 여러 레이블들이 다양한 형태의 녹음, 마스터링에 사활을 걸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에 따라 CDP 또한 브랜드마다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오디오파일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 추억해보면 정말 치열했던 시기였다. 포맷의 변화 틈바구니에서 패권 전쟁이 굉장히 뜨거웠던 시절이다. 나 또한 그러한 시기를 겪으면서 무척 다양한 디지털 시스템을 운영해오며 지나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 브랜드마다 개성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레이블마다 독특한 개성의 음질을 지녔던 CD 시절과 달리,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하나의 통로로 좁혀진 상황에서 몰개성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CDP 시절 지금도 건재한 마란츠를 즐겼고, 에소테릭도 남성적인 사운드로 인기를 누렸다. dCS, 아큐페이즈는 말해 무엇 하겠나. 최고봉이었다. 이 브랜드들 대부분 델타-시그마 방식 변조를 사용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R2R 래더 DAC을 사용한 CDP들도 인기였다. 20세기 전후 천의무봉의 디지털 브랜드였던 와디아는 850, 860, 861 등 레퍼런스급 모델에서 버브라운 PCM1704라는 R2R 칩셋을 채용하는 한편, DigiMaster라는 자체 업샘플링/필터링 알고리즘으로 독보적인 음질을 완성했다. 사실 일본 디지털의 초고봉 아큐페이즈와 에소테릭도 일부 모델은 R2R 칩셋을 사용한 적이 있을 만큼, R2R 래더 DAC은 델타-시그마와 함께 디지털의 양대 산맥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봉우리를 이룬 마크 레빈슨도 예외가 아니었다. No.36S, No.360S 같은 모델 혹은 그 이전의 No.30.6 등 기라성 같은 DAC들에서 PCM1704 R2R 래더 DAC를 사용했다. 네임 오디오도 PCM1704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CD555은 선별 칩셋인 PCM1704U-K 버전을 사용해 성능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지금은 MSB 테크놀로지, 쉬트, 홀로오디오, 데나프립스 등 소수의 브랜드만이 R2R DAC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본래 R2R 래더 DAC는 CDP 시절 델타-시그마와 함께 하이엔드 디지털을 양분하는 존재였다.

반오디오
델타-시그마 방식이나 R2R 래더 DAC 방식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기기들은 소리 경향이 다르다. 필자의 경우 전자도 좋아하지만 후자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R2R 래더 DAC 특유의 에너지감이 좋았고, 또한 악기들의 질감이 좀 더 실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THD나 S/N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마치 날 것 같은 음악적 쾌감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고역을 내주며, 두텁고 단단한 저역으로 감상자를 음악에 깊게 몰입시키는 면이 있다. 마치 잘 세팅된 하이엔드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LP로 음악을 듣는 체험을 디지털에서 느낄 수 있다고 보면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대체로 측정치에서 델타-시그마에 비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낮은 레벨에서의 정확도나 글리치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각 비트마다 R과 2R 저항을 구성해 전류/전압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저항 정밀도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는 결국 높은 생산 비용으로 귀결되며 대량 생산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PCM1704 같은 집적 칩셋은 물론이며 디스크리트 방식 R2R 래더 DAC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일부 의식 있는 제조사에서 R2R 래더 DAC을 살려냈다. 그중 반오디오는 국내 유일, 해외에서도 보기 힘든 R2R 래더 DAC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불새 MK3 Last Dance
그렇다면 불새는 과연 R2R 래더 DAC의 강점을 살려내면서 단점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미 반오디오는 불새 DAC를 여러 번에 걸쳐 업그레이드하면서 새로운 버전을 출시한 바 있다. 오리지널 버전을 시작으로 MK2, 그리고 급기야 MK3까지 만들어냈다. 마지막은 필자가 리뷰 중 충격을 받아 실제 구입한 불새 MK3 Final Evolution이었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으나 얼마 전 반오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불새 MK3 Last Dance라는 버전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Final 그리고 Last, 필자는 솔직히 하나의 모델에 이렇게 많은 버전을 출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섀시 디자인과 내부 설계 변경을 통해 가격을 올려 판매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오디오에선 MK4 이전에 가장 확실한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던 듯하다.

각설하고 전체적인 구성이나 설계는 기존 불새 MK3 Final Evolution과 동일하다. 섀시도 동일해서 겉으로는 큰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RCA 출력 단자가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원래 단자도 성능이 좋기로는 으뜸인 ETI 금도금 단자였는데, 한 발 더 나아가 ETI 순은 단자로 변경했다. 내가 아는 한 전 세계 최고가 RCA 단자로 보인다. 입력은 USB(B), 동축, 광, 그리고 AES/EBU 입력 단자를 마련해놓았다. 전면은 좌측에 LED 디스플레이 창을 마련해 입력 선택 및 샘플링 레이트, 볼륨 수치를 표시해준다. 그리고 우측 하단에 전원 버튼을 마련해놓은 매우 미니멀한 디자인이다.

내부를 살펴보면 디지털 부문과 아날로그 부문 등 신호 패스 부분과 전원부를 격리시켜놓은 모습이다. 우선 디지털 변환부는 아날로그 디바이시스 AD5781와 AD5541이다. 여러 번의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쳐 선정한 R2R 래더 칩셋으로서 18bit와 8bit 조합으로 총 26bit를 얻어낸 구성이다. 반오디오에선 칩셋 방식과 디스크리트 방식을 모두 실험해보았지만 디스크리트로 구성했을 때 글리치(glitch) 현상이 있어 가장 뛰어난 스펙을 보여주는 아날로그 디바이시스로 최종 선택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S/N비나 THD 등 고전적인 R2R DAC에서 항상 델타-시그마에 비해 약점으로 지적되던 측정치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한편 클럭은 크리스텍 CCHD-957이라는 최고급 펨토세컨드 클럭을 사용해 지터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있다. 참고로 오버샘플링은 16배 설계이며 아포다이징 필터를 선택하고 있다.

전원부는 여러 부분에 걸쳐 완벽히 분리 설계해놓고 있는 모습이다. 탈레마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무려 네 개 사용해 분리해놓았는데 이는 해외 수천만 원대에서도 보기 힘든 구성이다. 디지털, 아날로그 단 및 여러 각 부분에 별도의 전원을 설계해 상호 간섭을 최소화하고 순도 높은 최적의 전원 공급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편 아날로그 출력단은 반오디오 불새 DAC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풀 밸런스, 풀 디스크리트 회로다. 모두 까다롭게 선별한 J-FET를 페어 매칭해 사용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데일 저항 등 고급 부품들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다.

이번 Last Dance 버전에서 가장 큰 업그레이드 부분은 다양한 부분에 사용되는 커패시터의 변경, 업그레이드다. 반오디오에서는 불새 MK4로 진화시키기 위한 실험 과정 중 커패시터 변경에 따른 음질 향상 효과가 꽤 컸고, 이를 먼저 불새 MK3에 적용해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무척 고무적이었고 단종 전 마지막으로 Last Dance 버전을 출시하게 된 것이 이번 버전 출시 과정의 전말이다. 내부 설계에서 구체적인 변경 내용은 아래와 같다.
- DAC 변환 아날로그 파트 레귤레이터 전원부 커패시터를 니치콘 최상급으로 업그레이드
- DAC 변환 아날로그 파트 평활 커패시터를 니치콘 최상급으로 업그레이드
- DAC 변환 디지털 파트의 평활 커패시터를 파나소닉 Hybrid Polymer 커패시터로 변경

불새 MK3는 원래도 많은 수의 콘덴서가 사용되는 만큼, 이번 변경은 전원 안정성과 노이즈 제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실제 청음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배경이 더 검고 조용해진 점이다. 리플이 줄면서 각 비트의 전압 정확도가 높아졌고, 그로 인해 낮은 레벨에서의 선형성과 S/N비가 한층 개선된 것으로 추측된다. 디지털 파트의 Hybrid Polymer 콘덴서는 고주파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억제해 고역의 투명도와 트랜지언트를 더 향상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Final Evolution이 이미 뛰어났다면, Last Dance는 그 위에 한 층 더 정제된 윤기와 생동감을 더한 느낌이다.
글, 사진 : 오디오 평론가 코난
DAC Technology :
독자 개발 24bit R2R Multi-bit Ladder
내부 연산은 26bit로 처리
DAC Chip
채널당 Analog Device AD5781+ AD5541
DSP
Xilinx Spartan FPGA with x16 oversampling
Linear Oversampling, Apodising Filter
Data rate
PCM 24bit/384kHz
DoP로 DSD128, Native DSD는 DSD512(ASIO Only)
Digital Input
USB Audio Spec 2.0(Asynchronous) x1
Optical Toslink x1
SPDIF Coax(RCA) x1
AES/EBU XLR x1
Analog Output
Un-Balanced RCA 2.0V, Balanced XLR 4.0V
Power Supply
Talema Transformer Linear Power Supply,
Analog와 Digital 전원 분리
Dynamic Range : 125dB
SNR : 125dB (Un-Balanced RCA) / 127dB (Balanced XLR)
Dimension(WxDxH) : 440x400x90mm(with Foot 115)
Case Material : 100% Aluminum Alloy
Power consumption : 대기시 1W 미만, 동작시 30W 미만
Dynamic Range는 Audio Precision System 2722로 측정한 값
제조사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13,8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