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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포더링게이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9부

haruki room thumb

무라카미 하루키. 매년 노벨상 후보로 떠오르는 현대문학의 상징적인 인물. 국내 출판계에서 천문학적인 선인세 경쟁을 불러일으킨 작가. 자폐적인 일본 문단정치와 척을 두는 문필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순수문학에 집착하던 일문학계를 뿌리채 흔들어놓은 남자. 맥주와 마라톤과 레코드를 사랑하는 일본인.

하루키의 글을 처음 접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처음 맛보는 청량음료처럼 하루키의 글은 달큰한 리듬감이 넘쳐흘렀다. 묵직한 역사의식은 없었지만 사뿐한 글의 폼새가 인상적이었다. 문장과 문장을 찰지게 이어가는 필력도 사뭇 놀라웠다. 결정적으로 그의 작품에서는 쉼 없이 음악이 등장한다.

빌 에반스라이브

2차 대전 패망국 일본은 미국의 간접지배국으로 변신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문화가 일본을 뒤덮는다. 전공투 세대인 하루키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는 그가 수집하는 레코드 목록에서 확인가능하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와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음반이 등장하는 ’하루키 월드‘가 이를 증명해준다.

비치 보이스 Pet Sounds

그의 광적인 음악사랑은 1만5천장에 달하는 레코드 수집욕에서 드러난다. 표지가 멋지다는 이유로 수집한 클래식 음반부터 해외에 체류하면서 방문한 레코드점에서 모은 재즈 음반까지. 인터뷰를 살펴보면 수집한 레코드는 자신의 세상을 떠나면 기증할 것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쯤 되면 레코드가게에 관한 에세이도 등장할 법 하다.

haruki murakamis s listening room

하루키의 음악후일담 중에 눈에 띄는 문장이 있더라. 그는 가격이 미화 기준 50달러를 넘는 판은 구입을 자제한다고 기술한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음반전집을 제외하고는 5만원이 넘는 음반은 구입하지 않았다. 어떤 물건이든 가격에 기가 빨리는 현상이 있다. 구매만족도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가격이라는 장애물 말이다.

언급한 이유로 아무리 탐나는 음반도 기준가를 넘는 경우는 과감히 포기했다. 현명한 소비란 철저히 주관적인 범주에서 머문다. 레코드를 수집하지 않는 이에게 음반 수집가의 일상은 별세상에 속한다. 반대로 수집가들의 세계에서는 과소비의 기준이 레코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의식주에 버금가는 존재가 레코드임이 확실하다.

포더링게이9부

1995년에 구입한 음반 ((Fotheringay))는 구입상한선에 딱 걸린 판이다. 게다가 음반 상태가 썩 괜찮은 초판이었으니 지갑을 열어야만 했다. 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음반점에서 ((Fotheringay)) 중고시디를 3만원이라는 무지막지한 가격에 팔던 때였다. 지금이야 시디의 인기가 별로라지만 당시는 LP에서 CD로 시장이 이동하던 시기였으니.

추천 곡은 (The Way I Feel)이라는 곡을 골라보았다. 이 노래는 캐나다의 전설적인 포크싱어 고든 라이트풋(Gordon Lightfoot)이 196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다.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던 트레버 루카스(Trevor Lucas)의 중저음이 매력적인, 원곡을 능가할만한 리메이크 송이다. 밴드의 홍일점이던 샌디 데니(Sandy Denny)가 자리를 바꿔 백 보컬로 등장한다.

하루키 도서관

이번 달에 열 번째 일본여행을 할 예정이다. 신주쿠에 숙소를 정하고 디스크 유니온 레코드점, 만다라케, 음악카페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와세다 대학에 있다는 하루키 박물관에도 갈 생각이다. 그나저나 하루키는 위에 소개하는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의 엘피 보관장에서 ((Fotheringay))를 발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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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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