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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의 버킷 리스트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31부

론카터
                    

우리 집과 이모네 집은 성북구 장위동이었다. 이모네는 고급 주택이 즐비한 고지대에, 우리는 개천 근처의 저지대에 살았다. 이모네는 우리 집 마루만한 서재에 레코드와 일제 전축이 있었다. 이모네 방문하는 날은 수백 장에 달하는 레코드를 구경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뭔지도 모르고 들었던 음악이 재즈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이모네 집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모부가 임원으로 재직하던 회사가 대기업에 흡수합병이 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었다. 그가 상황을 극복하기엔 정신적인 여진이 컸던 것일까. 이모부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환경을 바꿔보라는 진단을 받는다. 다음 해에 이모는 청계천 거리에 작은 철물점을 차린다.

어머니는 필자에게 이모는 의지가 대단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모부의 병세가 길어지자 이모는 중대결단을 내린다. 이모는 어머니에게 미국 이민을 함께 가자고 제안 한다.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이모네만 캘리포니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모는 한인 타운에 집을 구하고 TV공장과 슈퍼마켓에서 생활비를 벌었다.

이모부와 삼남매를 건사하려고 이역만리의 삶을 택한 이모였다. 그를 만나려고 어머니와 필자는 미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필자의 여름방학을 기다려 40일간 이모네서 체류하기로 일정을 잡는다. 어머니 형제가 모은 돈을 이모에게 전달하고 마루에 잠자리를 폈다. 한국이야기를 해달라는 이모의 청으로 필자는 매일 새벽에야 잠을 청했다.

타워레코드 미국

일주일이 지나서 필자는 준비했던 버킷리스트를 꺼내들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근처 음반점에 방문할 수 있을까요?” 이모는 흔쾌히 동네에서 제일 큰 음반점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새로 이사한 외곽 지역의 이모네 집은 자가용이 필수였다. 20여분이 걸려 방문한 음반점이 타워레코드였다. L.A 외곽에 위치한 타워레코드는 축구장만한 규모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론카터1

태어나서 처음 보는 초대형 음반점이었다. 2시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미친듯이 매장을 돌아다녔다. 제일 오래 머문 음반 코너는 재즈였다. 처음 보는 재즈레코드가 끝도 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음악 좀 들었다고 착각했던 필자에게 타워레코드는 주눅이 들고도 남을만한 음악창고였다.

미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외국이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 가득한 슈퍼마켓도, 곰 동상이 지키고 있던 UCLA대학도, 화려함보다는 공허함이 맴돌던 헐리웃 거리도 놀라운 신세계였다. 론 카터의 ((Blues Farm))은 타워레코드에서 구입한 레코드다. 재즈 베이시스트 론 카터는 무려 2,200회가 넘는 녹음 작업에 참여한다. 이는 거진 7년간 매일 스튜디오에서 베이스를 연주해야만 가능한 기록지다.

론카터 블루스팜

Ron Carter 론 카터 > Blues Farm (1973년)

그는 10세부터 첼로를 배운다. 이후 음악학교에 진학하면서 정식으로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배운다. 론 카터와 함께 연주한 재즈맨은 엄청난 녹음 분량과 정비례한다. 치코 해밀턴을 비롯하여 델로니어스 몽크, 바비 티몬스, 허비 행콕, 잭 디조넷, 빌리 코밤, 리 모건, 프레디 허바드, 토니 윌리암스, 맥코이 타이너 등 무수한 연주자가 그와 합을 맞춘다.

타워레코드에서 론 카터의 ((Blues Farm))을 제일 먼저 챙긴 이유는 ‘Blues’가 들어간 앨범 타이틀 때문이었다. 40일이라는 체류 기간이 꿈처럼 흘러갔다. L.A공항에서 눈물을 쏟아내던 이모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필자도 기내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이다. 다시 이모를 만나면 수록곡 ‘A Hymn For Him’을 함께 들으며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이모부를 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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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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