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 Planar 2, Nd3 & Brio MK7
연속성의 미학과 영국식 실용주의
디지털 스트리밍이 지배하는 21세기 음악 시장에서 아날로그 오디오, 특히 LP 플레이백 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한, 아니 오히려 더욱 강력한 독자적 영토를 구축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나 감성적인 레트로 열풍 때문이 아니다. 디지털이 정량화된 0과 1의 양자화 세계에선 상실하기 쉬운 ‘연속성’의 미학, 그리고 물리적 마찰을 통해 음악을 길어 올리는 촉각적 경험에 본질이 있다. 소리 골을 긁어내는 스타일러스의 미세한 떨림이 음악으로 치환되는 순간의 생동감은 초고해상도 디지털 포맷도 쉽게 흉내 내기 힘든 아날로그 고유의 영역이다.

이러한 아날로그 월드에서 영국의 레가(Rega)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73년 창립 이래 레가는 하이엔드 아날로그 오디오 시장의 과도한 물량 투입 경쟁이나 허황된 신비주의를 철저히 배격해 왔다. 그들의 철학은 명확하다. ‘가장 단순한 설계가 가장 뛰어난 소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레가는 불필요한 진동을 억제하기 위해 무거운 플래터를 얹거나 화려한 서스펜션을 도입하는 대신, 가볍고 견고한 리지드(Rigid) 구조의 베이스와 정밀한 베어링,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톤암 제조 기술에 집중해 왔다. 레가는 하이파이를 사치품이 아닌, 음악을 즐기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정의하는 영국식 실용주의 아날로그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레가 Planar 2: 미니멀리즘 속에 감춘 정밀 공학
레가 턴테이블 라인업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Planar 2는 상급기인 Planar 3의 핵심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식받으면서도 가격적 합리성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외관은 군더더기 없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따스한 목재의 질감을 살린 플린스(Plinth)는 시각적으로 대단히 모던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며, 강성 또한 이전 모델에 비해 대폭 향상되었다. 이 플린스는 단순히 보기 좋은 디자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터와 베어링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진동이 톤암으로 전달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훌륭한 댐퍼 역할을 수행한다.

핵심 설계 요소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새롭게 개발된 24V 저소음·저진동 모터의 탑재다. 이 가격대 턴테이블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세한 모터 험(Hum)이나 진동을 극단적으로 제어하여, 배경의 정숙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결합된 10mm 두께의 유리(Optiwhite) 플래터는 회전 시 안정적인 관성 모멘트를 제공하여 와우 앤 플러터(Wow & Flutter)를 억제한다.

무엇보다 Planar 2의 핵심 가치는 RB220 톤암에 있다. 레가의 상징과도 같은 원피스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파이프 구조를 기반으로 한 이 톤암은 초정밀 베어링 하우징을 적용하여 마찰 저항을 극한으로 낮췄다. 슬라이드 방식 안티스케이팅 조절 기능이 포함되어 초심자도 별도의 복잡한 세팅 없이 안정적인 트래킹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화려한 장식적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오직 ‘정밀한 회전’과 ‘안정적인 트래킹’이라는 턴테이블의 본질적 임무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한 영리한 설계다.

Nd3: MM 카트리지의 한계를 부순 혁신
최근 레가가 야심 차게 선보인 Nd3는 수십 년간 엔트리 시장을 지배했던 오르토폰 등 타사 MM 카트리지 진영에 던지는 레가의 강력한 카운터펀치다. 이 카트리지의 핵심은 모델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현존하는 영구자석 중 가장 강력한 자력을 지닌 네오디뮴(Neodymium) N55 자석을 세계 최초로 MM 카트리지에 대담하게 도입했다는 점이다. 기존 알니코나 페라이트 자석을 사용하던 MM 카트리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강력한 자력 덕분에, Nd3는 내부 코일의 감은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는 곧 발전부의 경량화로 이어져 무빙 매스(Moving Mass)를 대폭 감소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Nd3의 스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출력 전압은 5~6mV 수준으로 표준적인 MM 포노 앰프와 완벽하게 매칭되며, 침압은 1.75g을 권장한다. 스타일러스는 정밀하게 가공된 타원형(Elliptical) 프로파일의 다이아몬드를 채택하여 소리 골의 고역 성분을 섬세하게 긁어낸다. 고성능 네오디뮴 자석과 경량화된 병렬 코일 구조 덕분에, Nd3는 기존 MM 카트리지의 한계로 지적되던 둔탁한 고역 반응을 극복하고, MC 카트리지에 육박하는 기민한 트랜지언트(Transient) 특성과 정교한 스테이징 표현력을 확보했다. 카트리지 하우징 역시 PPS(Polyphenylene Sulphide)라는 초경량 고강성 사출 성형 소재를 사용하여 불필요한 공진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최소한의 세팅, 지오메트리로부터의 해방
아날로그 세팅을 마주할 때 많은 유저들이 좌절하는 지점은 오버행(Overhang), 오프셋 앵글(Offset Angle), 그리고 아지무스(Azimuth)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계산 등 복잡다단한 지오메트리 조절 과정이다. 그러나 레가 Planar 2와 Nd3의 조합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레가 고유의 ‘3점 지지(3-Point Fixing)’ 시스템 덕분이다.
보통의 카트리지는 2개의 나사로 톤암 헤드쉘에 고정되기 때문에, 전용 게이지를 보며 앞뒤 거리와 각도를 미세하게 조정해야만 한다. 반면 레가 톤암과 레가 카트리지의 조합은 헤드쉘과 카트리지 상단에 뚫린 3개의 볼트 구멍을 그대로 맞추어 체결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레가가 설계한 가장 이상적인 오버행과 오프셋 앵글이 물리적으로 자동 고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침압 같은 경우는 Planar 1과 달리 침압계를 사용해 직접 세팅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전기적·역학적 컴플라이언스(순응도)의 완벽한 일치다. 톤암의 유효 질량(Effective Mass)과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 그리고 자체 무게가 맞지 않으면 특정 주파수에서 공진이 발생하여 저역이 롤오프되거나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레가는 자사의 톤암 기하학 구조와 RB220 톤암의 유효 질량에 완벽하게 매칭될 수 있도록 Nd3 카트리지의 서스펜션과 고무 댐퍼의 탄성 계수를 최적화했다. 결과적으로 유저는 복잡한 절차나 세팅 없이도 제작자가 의도한 완벽한 트래킹 능력과 왜곡 없는 평탄한 주파수 응답 특성을 손쉽게 손에 쥐게 된다.

레가 Brio MK7: 하프 사이즈 섀시에 봉인한 고전류
시스템의 심장 역할을 맡은 Brio MK7은 레가의 인티앰프 제조 철학을 대변하는 롱셀러 ‘Brio’의 최신 진화형이다. 이 앰프의 외관은 하프 사이즈의 콤팩트한 섀시로 마감되어 공간 효율성이 극대화되어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정통파 아날로그 설계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Brio MK7은 채널당 8옴 기준 50W, 4옴 기준 73W의 출력을 보장한다. 수치상으로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레가가 자랑하는 고전류 출력단 설계와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포머 기반의 강력한 전원부 덕분에 실제 스피커를 구동하는 장악력은 수치적 한계를 가볍게 상회한다. 특히 신호 경로상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프리앰프부와 파워앰프부의 전원 공급 라인을 철저히 분리시켰으며, 볼륨 단에는 노이즈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격리 회로를 추가했다.

기능적으로는 고품질 전면 헤드폰 출력을 지원함과 동시에, 아날로그 유저들을 위해 특별히 튜닝된 고성능 MM 포노 스테이지를 내장하고 있다. 이 내장 포노 앰프는 단순히 구색만 맞춘 저가형 IC 칩셋 기반 회로가 아니다. 레가의 단품 포노 앰프인 Fono Mini의 회로 설계를 기반으로 대폭 레이아웃을 개선하여 앰프 메인 보드 내에 안착시킨 구조다. 노이즈 차폐를 위해 섀시 내부에서도 철저히 격리되어 있으며,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는 부품 배치로 아날로그 신호의 순도를 극대화했다.
불확실성을 없앤 원 브랜드 매칭
LP 플레이백에서 가장 취약하고 오염되기 쉬운 구간은 카트리지에서 발전된 수 밀리볼트(mV) 전압의 미세 신호가 포노 앰프 입력단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이다. 이때 카트리지의 내부 임피던스와 포노 앰프의 입력 임피던스, 그리고 톤암 내부 선재와 인터케이블이 가지는 정전 용량(Capacitance)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고역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으며 저역의 다이내믹스가 훼손되기도 한다. 타사 제품들을 조합하여 매칭할 때 컬렉터들이 끊임없이 포노 임피던스 매칭 수치를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가 Planar 2, Nd3, 그리고 Brio MK7으로 이어지는 ‘레가 풀 시스템’은 이러한 매칭의 불확실성을 거의 완벽하게 없애준다. Brio MK7의 내장 포노 스테이지는 Nd3 카트리지의 출력 임피던스와 인덕턴스 값을 철저히 계산 공식의 기본값으로 두고 설계되었다. 포노 입력단의 게인(Gain)은 Nd3의 5~6mV 출력을 받아들여 충분히 증폭해 주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S/N비(신호 대 잡음비)와 헤드룸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입력 임피던스는 표준적인 47kΩ이지만, Nd3가 요구하는 정전 용량이 완벽히 매칭되어 있어 고역의 피크나 왜곡 없이 지극히 리니어하고 자연스러운 대역 밸런스를 구현한다.

청음
레가 제품은 종종 사용하면서 그 성능에 항상 감탄하곤 한다. 그리고 엔트리급 모델로 내려간다고 해서 성능 저하가 크지 않다. 예를 들어 Planar 8과 Planar 10이 훌륭하긴 하지만 Planar 3도 여전히 매력적인 소리를 내준다. LP에 담긴 소리를 가감 없이 담백하게 쏟아내 준다는 의미에선 모두 동일한 바탕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번 테스트엔 모든 시스템을 레가로 통일하고 스피커만 바워스 앤 윌킨스(B&W)의 705 S3 시그니처(Signature) 스피커를 사용했다.

일레인 – 1 To 2
최근 나의 청음실에서 있었던 리스닝 세션 행사의 주인공 일레인의 데뷔작을 들어보면 레가의 사운드는 더 깊고 짙게 드러난다. 보컬은 얇지 않고 적당한 두께감을 가지고 표현되어 진한 느낌이 매력적이다. 가위로 오린 듯한 음상이 아니라 적당히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표현하면서 짙게 들린다. 스피커를 바워스 앤 윌킨스로 매칭해 보기도 하고 Jade 20으로 들어 보아도 기본적인 음질적 특성은 공유된다. 그만큼 앞단의 레가 사운드가 전체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허비 행콕 – Chameleon
레가의 특징은 중역대부터 높은 저역대에서 두드러진다. 살짝 도톰하면서 동시에 잔향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어서 담백하게 들린다. 더불어 살짝 텐션이 붙어 있다. 너무 치밀하고 스피드 있게 진행되는 사운드는 아니고 적당한 여유와 리듬감을 동반한 소리다. 덕분에 허비 행콕의 재즈 녹음을 들어보면 적당히 두터운 중·저역이 텐션 좋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리듬 파트는 특히 쫄깃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소리다.

메탈리카 – Enter Sandman
시간축 측면에선 확실히 리듬, 페이스 & 타이밍, 즉 PRAT이라고 일컫는 평가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듯하다. 과격한 더블 베이스 드럼 등 펀치력과 리듬감을 요구하는 녹음에서도 피로하지 않으면서도 녹음이 간직한 펀치력, 두툼하고 넓게 타격하고 자연스럽게 빠지는 중용의 미덕이 있다. 너무 서두르는 구석이 없고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손글씨처럼 패임이 깊고 진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역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단, 중역대 표현력이 워낙 독보적이어서인지 고역은 무척 순하고 부드럽게 들린다.

에이지 오우에/미네소타 오케스트라 – Saint-Saens: Danse macabre
여러 다양한 악기들이 물밀듯이 밀려 나오는 오케스트라 녹음에서 각 악기들은 에너지 넘치게 표현된다. 각 악기들을 분석해서 예리하게 표현하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그것과는 다른 표현 양식이다. 대체로 각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총체적인 하모닉스를 만들어낸다. 무게 중심은 낮은 편이며 중역대에서 특유의 묵직하고 텐션 넘치는 펀치력을 보여준다. 레가라고 하면 항상 해상력은 떨어져도 따스하고 인간적인 음색에 리듬감이 좋은 소리였다. 물론 지금도 그 레가의 맛은 여전하지만 과거 레가를 처음 접했을 때보다는 악기 분리도나 S/N비 등은 확연히 높아진 모습이다.

총평
B&W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해상력이 높으며 모니터적인 성향의 스피커다. 중역대가 도톰하고 순한 레가 시스템이 이 현대적이고 화려한 B&W 스피커를 만나 어떻게 단점을 상쇄하고 장점을 살리는지가 궁금했다. 이번 시청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단지 고역의 피로감을 줄여주고 중역대 힘을 살리는 것과 같은 뻔한 결과 이상이다. 예상보다 더 향상된 S/N비와 핵이 깊은 사운드는 B&W 외에 여타 현대적인 하이파이 스피커와 좋은 매칭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다. 앰프의 출력만 보고 너무 높은 능률에 대구경 우퍼나 혼 스피커보다는 깔끔하고 명료한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들과 더 나은 소리를 들려줄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 시스템이 들려주는 소리는 특정 대역을 강조하여 귀를 현혹하는 착색된 사운드가 아니다. 탄탄하고 밀도감 넘치는 중역대를 중심으로, 아날로그 특유의 따스함과 네오디뮴 자석이 전해주는 현대적인 해상도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사운드다. 매칭의 실패로 인한 시행착오를 원천 봉쇄하고, 오직 ‘레가’라는 하나의 유기체가 뿜어내는 정교하고 음악적인 사운드 스테이지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즐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피커를 제외한 모든 컴포넌트를 레가의 단일 브랜드 라인업으로 채워 넣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