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검색만 하면 전 세계에 못 들을 음악이 거의 없을 정도의 디지털 세상이다. 지금 생각하면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엔 귀한 음반들을 구입한다는 게 거대한 성벽과 같았다. 어렸을 땐 용돈을 조금씩 저축해서 한 달에 한두 장 구입해 가면서 목마름을 달래곤 했다. 때론 음반을 너무 구입하고 싶지만 돈이 없을 경우엔 레코드숍 사장님께 곡목을 적어서 녹음을 부탁하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돈도 안 되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해줄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카세트테이프에 빼곡히 적어 준 곡명만 보아도 가슴이 뛰곤 했다.
https://youtu.be/qo51UEyKFQw?si=AhvJGLX7eEoo3Pur
옛 기억들은 일상의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 월드컵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이긴 후 관중들 사이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나는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었고, 또 하나는 비틀스의 ‘Hey Jude’라는 노래였다.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학생이었다. 정규 앨범이 나오기 이전에 싱글로 출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레코드숍을 찾아갔고, 싱글치고는 꽤 거금을 주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단 한 곡을 듣기 위해서. 비틀스의 ‘Hey Jude’는 당시 아마도 정규 베스트 앨범은 아니고 국내에서 짜깁기한 CD를 구입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두 곡 모두 참 많이 들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FM 라디오 아니면 음반뿐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듣기 쉬워지면서 음악에 대한 집중력은 오히려 쇠퇴한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떨어진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음반으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법 집중력이 올라갔다. 최근에 알게 된 한 음악 모임에 갔다. 주로 지나간 20세기 록이나 포크, 아트 록의 황금기 음악들을 사랑하는 아저씨(?)들의 모임이다. 수만 장의 LP가 꽂혀 있는 수납장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온다.

직업병인지 오디오에 눈이 간다. 탄노이 GRF Memory 스피커에 매킨토시 구형 프리, 파워 앰프가 빼꼼히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위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와디아 CDP가 반갑다.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턴테이블이다. 테크닉스 SP10MK2로 보이는데 톤암은 오리지널 테크닉스 보론 톤암이 아니라 젤코 12인치 롱암이다. 여기에 그라도 카트리지를 달아 록 음악들이 무척 시원하고 힘 있게 재생되고 있었다. 가끔은 오래된 음악들은 이런 빈티지 오디오로 듣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해상력,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정위감 이런 걸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자칫 20세기 중후반 녹음 특유의 맛이 사라진다.

그날 모임에서 받아온 여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만에 순수 동호인들과 만나 평소 많이 듣지 않던 음악들을 잔뜩 들은 날이었다. 특히 중간에 LP 경매를 했는데 내 손에 들어온 음반이 꽤 많다. 한 일주일 동안 듣다 보니 20대 때 음악 듣던 생각도 나고 그때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새삼스럽다. 그때보다는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로워졌지만 어렸을 적 그 열정과 음악에 대한 집중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여유롭게 구입한 LP로 그것을 상쇄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