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봉호
1970년대의 복싱 열기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당시 복싱 붐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은 무함마드 알리였다. 조지 포먼과 아프리카 링에서의 혈투는 지금도 전설적인 시합으로 회자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펀치를 날린다는 그의 입담 역시 대단했다. 1976년에는 일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다. 흑백TV를 붙들고 보았던 시합 내용은 졸전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이 시합은 사전 각본에 의해 이노키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승부로 끝을 맺는다.
레드 갈란드는 반전이 존재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음악가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경우는 흔하게 발생한다. 피아니스트 레드 갈란드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20대 초반에 복싱을 시작한 그는 웰터급에서 무려 35번의 정식 경기를 치룬다. 레드 갈란드는 유명 복서였던 슈거 레이 로빈슨과도 경기를 한다. 시합은 패했지만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게임이었다. 손이 생명인 피아니스트가 권투선수를 했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레드 갈란드는 19살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 감상했던 레드 갈란드 트리오의 레코드는 ((Groovy))였다. 당시는 라이선스로 재즈 음반이 나오면 무조건 수집을 하던 때였다. 아르바이트 월급이나 장학금을 타면 중고 재즈 원반도 가끔 구입했지만 아무래도 중고 라이선스가 비용의 부담이 적었다. 투박한 낙서가 적힌 레드 갈란드 트리오의 음반을 계산하면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처음 감상하는 음악은 기대만큼 실망이 따르는 일이 적지 않았으니까. 턴테이블에 엘피를 올리자마자 은은한 피아노 연주가 펼쳐지더라. 그날부터 레드 갈란드의 팬이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의 음반에 참여한다. 레드 갈란드는 섹서퍼니스트 레스터 영, 찰리 파커, 콜맨 호킨스의 피아노 연주자로 경력을 쌓는다. 하지만 당시까지 주목을 받는 연주자는 아니었다. 이후 재즈의 아이콘인 마일스 데이비스 군단의 멤버로 지명을 받는다. 1950년대에 녹음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4부작인 [Steamin], [Relaxin], [Workin], [Cookin]이 그것이었다. 1956년 단 이틀 만에 완성한 4장의 음반으로 레드 갈란드는 재즈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다. 복싱광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권수선투 출신인 레드 갈란드에게 관심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생각나는 음반들이 있다. 레드 갈란드 트리오가 1958년에 발표한 ((All Kinds Of Weather))는 필자가 두 번째로 수집한 그의 음반이다. 중고 음반으로 구입한 이 음반은 그의 간명한 타건이 사계절의 변화를 노래한다. 레드 갈란드의 연주는 버드 파웰처럼 강렬하지도, 빌 에반스처럼 세련되지도 않은 편에 속한다. 때문에 필자의 30대 이후부터 레드 갈란드 트리오의 음반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과의 협연 작을 제외하고는 자주 즐겨듣지는 않았었다. 그만큼 새로운 재즈 명반들이 즐비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레드 갈란드는 인터뷰에서 카운드 베이시는 자신이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재즈 음악가라고 밝힌다. 카운트 베이시의 연주 테크닉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줬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오랜만에 ((All Kinds Of Weather))를 감상하니 20대 초반의 기억이 들풀처럼 일어났다. 세월이 흘러도 음악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준다. 계절의 다채로운 변화를 레드 갈란드의 부드러운 타건과 함께 감상해 볼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