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 ,

클래스 D, 편견의 굴레를 벗고 하이엔드의 심장으로 – 2부

▲ 하이펙스에서의 성공, 그리고 마주한 벽

브루노 푸제이는 하이펙스에서 UcD를 개량하고 nCORE 아키텍처를 완성하며 클래스 D를 하이엔드 오디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nCORE는 가청 대역 내의 전고조파왜곡(THD)을 수 백만분의 일 단위로 낮추었고, 스피커 부하 임피던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 평탄한 주파수 응답을 구현했다. 오디오 업계와 평론가들은 “클래스 D는 완성되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푸제이 본인의 기준은 달랐다. nCORE가 아날로그 증폭 방식을 위협할 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디오 프리시전 등 최고 수준의 정밀 계측 장비로 분석했을 때 여전히 미세하게 잔존하는 비선형성(Non-linearity)이 포착되었다.

특히 앰프 내부의 출력 필터에 사용되는 인덕터(코일)의 코어에서 발생하는 자기 이력 현상(Hysteresis)과 자성체 자체의 왜곡, 그리고 수동 소자들의 미세한 특성 변화는 기존의 고차 피드백(High-order Feedback) 루프 제어 방식만으로 완전히 억제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였다. 푸제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하이펙스의 플랫폼을 완전히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결단을 내렸다. 더 근본적이고 수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 덴마크 거물들과의 조우

이 무렵 푸제이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상업적·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덴마크 오디오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피터 링돌프(Peter Lyngdorf)와 천재 디지털 오디오 엔지니어 라스 리스보(Lars Risbo)였다.

⦁피터 링돌프 (Peter Lyngdorf): 스타인웨이 링돌프(Steinway Lyngdorf), 링돌프 오디오의 창립자이자 오디오 전문 커머스(HiFi Klubben)를 이끄는 자본가 겸 기획자. 그는 일찍이 세계 최초의 풀 디지털 앰프인 텍트(TacT) Millennium의 상업적 출시를 주도하는 등 디지털/클래스 D 증폭의 미래를 확신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라스 리스보 (Lars Risbo):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풀 디지털 앰프(PCM-to-PWM 변환 기술)의 핵심 아키텍처를 정립한 인물. 그가 설립한 회사는 이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인수되어 그 유명한 ‘PurePath Digital’ 칩셋의 모태가 되었다. IEEE 펠로우이자 수십 개의 오디오 관련 특허를 보유한 디지털 증폭의 권위자였다.

피터 링돌프는 브루노 푸제이와 라스 리스보라는 두 천재가 결합한다면, 오디오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너지가 날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이들에게 자본과 인프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건넸고, 왜곡의 완전한 종식을 원했던 푸제이는 하이펙스에서 과감히 탈피하기로 결심한다.

브루노 푸제이가 하이펙스(Hypex)를 떠나 퓨리파이(Purifi Audio)를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직장 이직이나 창업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클래스 D 증폭 기술이 마주한 ‘마지막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엔지니어링적 집착과, 뜻을 같이한 거물급 파트너들과의 만남이 맞물려 탄생한 하나의 드라마였다.

▲ 퓨리파이(Purifi)의 탄생과 ‘아이겐탁트(Eigentakt)’

2019년, 이 세 명의 거인은 덴마크 로스킬레(Roskilde)에 퓨리파이 오디오(Purifi Audio)를 설립한다. 회사명 ‘Purifi’에서 드러나듯, 이들의 목표는 오디오 신호 경로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오염과 왜곡을 ‘정화(Purify)’하는 것이었다.

푸제이와 리스보는 하이펙스 시절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앰프 회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왜곡 메커니즘을 전자기학적 수준에서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기 시작했다. 특히 푸제이가 오랫동안 골몰했던 출력 필터 자성체의 자기 이력(Hysteresis) 왜곡을 해결하기 위해 독창적인 고차 아날로그 피드백 회로를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아이겐탁트(Eigentakt) 기술이다. 아이겐탁트는 대규모 네거티브 피드백을 걸었을 때 발생하는 고질적인 불안정성을 완벽하게 제어함으로써, 주파수와 출력 크기에 상관없이 전 대역에서 왜곡률을 측정 한계치 미만으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브루노 푸제이가 하이펙스를 떠난 스토리는, 업계 표준이 된 자신의 과거 업적(nCORE)에 안주하지 않고, 덴마크의 기술적·자본적 파트너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수학적으로 완벽한 증폭 기술을 구현하겠다”는 엔지니어로서의 야망이 실현된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설계 특징

퓨리파이(Purifi)의 Eigentakt(독일어로 ‘고유의 리듬/주기’를 의미)는 nCORE를 넘어선 브루노 푸제이의 최신 진화형이다. nCORE가 대규모 피드백을 통해 선형성을 확보했다면, Eigentakt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위칭 회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자기 이력 현상(Hysteresis), 자성체 왜곡, 그리고 수동 소자의 비선형성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여 완벽하게 상쇄하는 알고리즘을 피드백 루프 내에 내장했다.

가장 혁신적인 점은 대규모 네거티브 피드백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리핑(Clipping) 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성이나 과부하 회복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THD+N(전고조파 왜곡)은 주파수와 출력 크기에 상관없이 전 대역에서 고정적인 최저치(0.00017% 이하)를 유지하며, IMD(상호변조 왜곡) 역시 물리적 측정 한계에 도달했다. 클래스 D 특유의 고역 이질감이나 딱딱함을 지워내고, 무색무취에 가까운 극도의 투명성과 아날로그 앰프를 상회하는 리얼리즘을 달성한 것이다. Eigentakt 모듈(1ET400A 등)은 발표 직후 차세대 증폭 마스터피스로 인정받으며 하이파이와 프리미엄 앰프 시장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 적용된 주요 모델

⦁NAD Electronics Masters M33(V2)/M23(V2)/C298: NAD는 퓨리파이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서, 플래그십 인티앰프 M33과 파워앰프 M23에 Eigentakt 모듈을 세계 최초로 커스텀 적용하여 초저왜곡 사운드를 대중화했다.

⦁T+A 200 시리즈: 독일의 하이엔드 제조사 T+A는 A200, M200 같은 파워앰프에서 자신들의 고전압(HV) 아날로그 기술과 퓨리파이 Eigentakt 모듈을 하이브리드 형태로 결합하여 최고 수준의 리니어리티를 구현했다.

⦁마란츠(Marantz) MODEL 10: 기존 nCORE 기반의 PM-10에서 진화하여, 퓨리파이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Eigentakt 모듈을 채널당 1개씩 탑재하여 완전한 듀얼 모노블록 구조를 실현했다. 마란츠 특유의 HDAM-SA3 아날로그 전단 버퍼와 결합하여 고전적인 아날로그 질감과 Eigentakt의 성능을 융합했다.

⦁링돌프 오디오(Lyngdorf Audio) MXA-8400: 링돌프의 고성능 멀티 채널 파워앰프. Eigentakt 모듈을 기반으로 극도의 채널 분리도와 강력한 전원 공급 능력을 결합하여 하이엔드 홈시어터 및 하이파이 시장을 동시 겨냥했다.

⦁아폴론 오디오(Apollon Audio) – Purifi 시리즈 (Premium / Lux): 오스트리아의 하이엔드 커스텀 앰프 명가로서 1ET400A부터 최신 1ET9040BA 모듈까지 적극적으로 수용. 하이펙스의 SMPS 전원부와 결합하되, 자체 설계한 디스크리트 입력 버퍼 보드에 클래스 A 디스크리트 오피앰프(Op-Amp)를 투입하여 모듈이 가진 날 것의 해상력을 음악적으로 승화시켰다.

⦁VTV Amplifier / March Audio: 가성비 중심의 DIY 이미지를 탈피하고 풀 알루미늄 정밀 절삭 섀시와 밀리터리 등급의 배선재, 후루텍 인렛 등을 투입하여 Eigentakt의 극한의 측정치를 훼손 없이 스피커로 전달하는 레퍼런스 파워앰프들을 생산 중이다.

⦁박셈 오디오(Boxem Audio) Arthur : 유럽의 신흥 강자로, 퓨리파이 Eigentakt의 뛰어난 측정치를 왜곡 없는 증폭 특성을 고스란히 스피커로 전달하는 컴팩트 레퍼런스 파워앰프를 선보였다.

▲ 완벽한 측정치, 그 너머의 음악성을 향하여

현시점에서 하이펙스 NCORE와 퓨리파이 Eigentakt는 클래스 D를 변방에서 주류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측정치라는 물리적 장벽을 무너뜨린 이 기술들은 하이엔드 앰프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비평적 시선에서 볼 때, 왜곡률 0.00017%라는 숫자가 음악적 감동의 크기와 정비례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극단적인 피드백과 수학적 제어가 만든 ‘무색무취’의 음향은 완벽한 투명성을 자랑하지만, 때로 아날로그 증폭 고유의 풍부한 배음과 유기적인 질감을 거세한 기계적 냉소주의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클래스 D는 숫자의 전쟁을 넘어 ‘음악적 정체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미 T+A나 마란츠처럼 고유의 아날로그 전단 버퍼나 고전압 회로를 결합해 모듈의 건조함을 지워내려는 시도가 이를 방증한다. Eigentakt가 이룩한 극단적 저왜곡의 성과는 클래스 D의 종착지가 아닌, 아날로그적 감성과 결합해야 할 새로운 출발선이다. 기술적 완성이 예술적 감동으로 전이되는 순간, 비로소 클래스 D는 진정한 하이엔드의 심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3 등의 책을 썼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에소테릭 MagneDrive 턴테이블 T-01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