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의 추구에서 하이엔드로의 진화
클래스 D 증폭의 역사는 흔히 오해받듯 디지털 기술의 탄생과 궤를 같이하지 않는다. A, B, C 다음인 네 번째 순서로 명명된 D일 뿐 그 본질은 아날로그 스위칭 기술에 있다. 1950년대 영국의 과학자 알렉 브리브(Alec Reeves)가 펄스 폭 변조(PWM, Pulse Width Modulation)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클래스 D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후 1960년대 싱클레어(Sinclair Radionics) 등에서 최초의 상용 클래스 D 앰프를 선보였으나, 당시의 반도체 소자(트랜지스터)의 스위칭 속도 한계와 극심한 왜곡률(THD)로 인해 오디오필들의 주류 시장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초기 클래스 D는 고작 ‘효율성은 높지만 음질은 조악한 자동차 카오디오나 서브우퍼용 증폭 방식’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전환점은 1990년대 후반 델타 시그마 모듈레이션의 발전과 고속 MOSFET 소자의 등장, 그리고 결정적으로 ‘트라이패스(Tripath)’사의 클래스 T(Class T) 칩셋 출현이었다. 비록 트라이패스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클래스 D가 오디오 등급의 선형성(Linearity)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어 필립스(Philips)와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의 ICEpower가 가세하며 클래스 D는 고효율·소형화를 무기로 프로 오디오와 컨슈머 마켓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도 잔존하는 고주파 노이즈, 부하 임피던스에 따른 주파수 특성 변화는 하이엔드 아날로그 증폭(클래스 A, AB)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결정적 결격 사유였다.

▲ 브루노 푸제이와 클래스 D의 패러다임 전환
현대 하이엔드 클래스 D의 역사는 브루노 푸제이(Bruno Putzeys)라는 천재 엔지니어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는 클래스 D를 단순한 ‘효율적 스위칭 회로’가 아닌, ‘완벽한 수학적 피드백 루프를 가진 고정밀 제어 시스템’으로 재정의하며 하이엔드 오디오의 지형도를 바꾸었다.

브루노 푸제이의 커리어
벨기에 출신의 브루노 푸제이는 필립스 연구소(Philips Research)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그는 클래스 D의 고질적인 문제인 왜곡과 출력 임피던스를 극적으로 낮출 수 있는 강력한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 루프 제어 이론을 연구했다. 필립스에서 그의 연구는 UcD(Universal Class D) 모듈의 개발로 결실을 맺는다.
이후 필립스가 오디오 모듈 사업에서 손을 떼자, 그는 네덜란드의 하이펙스(Hypex)로 자리를 옮겨 수석 엔지니어로서 UcD를 완성시키고, 이어 nCORE라는 기념비적인 아키텍처를 탄생시킨다. 하이펙스를 떠난 이후에는 몰라 몰라(Mola Mola), 키 오디오(Kii Audio)를 공동 창립하며 자신의 증폭 기술 및 DSP 이론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완제품을 선보였고, 현재는 라스 리스보(Lars Risbo)와 함께 퓨리파이(Purifi Audio)를 설립하여 Eigentakt 기술로 다시 한 번 클래스 D의 정점을 갱신하고 있다.

브루노가 개발에 참여한 제품 및 브랜드
⦁필립스(Philips): 오디오 역사상 최초로 부하 독립적(Load-Independent) 특성을 구현한 UcD 모듈 개발.
⦁하이펙스(Hypex): UcD의 완성 및 현대 하이엔드 클래스 D의 표준이 된 nCORE (NC400, NC1200, NC500 등) 모듈 설계.
⦁그림 오디오(Grimm Audio): 디지털 오디오의 클록 마스터피스로 불리는 CC1 클록 및 LS1 액티브 스피커 시스템 설계 참여.
⦁몰라 몰라(Mola Mola): 자신의 증폭 기술 및 DAC 설계 철학을 투영한 브랜드. Kaluga 모노블록 앰프, Makua 프리앰프, 그리고 독창적인 디스크리트 PWM DAC인 Tambaqui 개발.

⦁키 오디오(Kii Audio): 독보적인 DSP 기반의 지향성 제어 기술을 극대화한 하이엔드 액티브 스피커 Kii THREE 설계.
⦁퓨리파이 오디오(Purifi Audio): 현존 최고의 리니어리티를 자랑하는 Eigentakt (1ET400A, 1ET7040SA) 증폭 모듈 및 저왜곡 드라이버 유닛 개발.
브루노 푸제이가 클래스 D 증폭의 알파와 오메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커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존하는 클래스 D 증폭 기술의 최선단에 선 제품들, 예를 들어 하이펙스 nCORE와 퓨리파이 Eigentakt 등 모두가 바로 그의 손에 마법처럼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이펙스와 퓨리파이에서 만들어낸 클래스 D 증폭 모듈은 이전 세대 그것의 편견으로부터 멀리 달아났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 하이파이오디오 제조사에서 가장 애용하는 기술이 되었다. 그렇다면 하이펙스와 퓨리파이에서 만들어낸 각 모듈은 어떤 설계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모델에 적용되었을까?

▲ 하이펙스 nCORE: 하이엔드 클래스 D의 기준점
설계 특징
하이펙스 nCORE는 UcD 설계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루프 게인(Loop Gain)을 극대화하여 왜곡을 극도로 억제한 아키텍처가 핵심이다. 기존 클래스 D의 치명적인 약점은 스피커의 임피던스 변동에 따라 고역 주파수 응답이 롤오프(Roll-off)되거나 피크가 치솟는 현상이었다. 브루노 푸제이는 이미 UcD에서 출력 필터 이후(Post-Filter) 단계에서 피드백을 받는 방식을 정립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으며, nCORE에 이르러서는 이 루프 게인을 극대화한 고차 피드백 루프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가청 대역 내의 THD(전고조파왜곡)를 측정 불가능한 수준으로 낮추었으며, 출력 임피던스를 극도로 낮춰 댐핑 팩터를 경이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스피커의 부하 임피던스가 2옴으로 떨어지든 8옴으로 치솟든 완벽에 가까운 평탄한 주파수 응답과 강력한 스피커 구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적용된 주요 모델
nCORE는 DIY 유저를 위한 모듈 판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메이저 하이엔드 브랜드의 레퍼런스 파워앰프 심장부로 이식되기 시작했다.

⦁NAD Electronics Masters M22 / M27: NAD의 플래그십 라인업에 nCORE 기술을 대거 투입, 매스 마켓과 하이엔드의 경계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둠.

⦁마란츠(Marantz) PM-10 : 마란츠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nCORE 모듈을 채널당 2개씩 브릿지(Bridge) 방식으로 구성하여 압도적인 출력과 정숙성을 확보하며 이전 세대 마란츠와 결별, 새로운 세대를 열어젖힘

⦁벨 칸토 디자인(Bel Canto Design) Black 시스템/REF600M: nCORE 모듈을 적극 도입하여 컴팩트한 사이즈에서 초고해상도, 고효율 구동을 실현.

⦁몰라 몰라 Kaluga: 브루노 푸제이 본인의 오리지널 nCORE NC1200 모듈을 기반으로 가장 이상적인 디스크리트 버퍼단과 전원부를 결합한 레퍼런스 모노블록 파워앰프.

⦁세타 디지털(Theta Digital) Prometheus: 하이엔드 멀티채널 및 파워앰프의 명가 세타가 NC1200 모듈에 대규모 선형(Linear) 전원부를 결합하여 성능을 극대화시킨 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