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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리티에 대한 노르웨이의 대답

일렉트로콤파니에 ECI 6 MK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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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명기 찾기

연말이면 여러 매체를 통해 올해의 제품 따위의 어워드를 개최한다.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때론 해외 어워드 선정 리스트를 달달 외우고 다닐 때도 있었다. 국내에서야 그리 볼만한 매체도 거의 사라진 지금이지만 해외에선 영미권을 중심으로 여전히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발표하는 리스트를 참고한다. 그들 또한 업계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각 매체마다 꽤 많은 리스트 차이를 보이곤 한다. 그래도 그런 리스트를 통해 한 해의 이슈들을 돌아보고 쓸만한 제품을 다시 상기시켜보곤 하며 가끔은 구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부문에서 명기 리스트가 때론 진부해질 때가 있다. 역대 명기 100선 같은 화석화된 목록 안에 든 브랜드의 제품들은 직간접적으로 꽤 많이 사용해본 것들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색다른 기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리뷰어라는 직업은 무척 장점이 많다. 각설하고 명기 목록에 든 기기 말고 좀 새로운 기기를 개인적인 호기심에 찾아다니는 게 나의 또 하나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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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이다. 가을 바람이 스산하고 온도와 습도 모두 최고였다. 마당이 있는 식당에서 고기라도 구워 먹기 딱 좋은 그런 날씨. 나는 어느 주점에 앉아 있길 마다하고 어딘가로 향했다. 낮에 일하던 와중에 중고 시장에서 본 앰프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 걸 그대로 놔둘 수 없어 직접 구입해보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퇴근길은 멀기만 했고 어쨌든 그 기기는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노르웨이 출신 앰프 일렉트로콤파니에의 초창기 프리앰프 EC-1이었다.

숨은 명기를 찾은 듣한 느낌에 정말 즐거웠다. 요즘 집적 칩셋 등으로 휑해진 내부와 달리 이 당시 앰프는 내부 PCB에 부품이 가득했고 일목요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SMPS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이 모두 리니어 방식 전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얇은 철판에 모노코크 알루미늄 같은 섀시는 구경도 할 수 없던 시절 제품이지만 무척 탄탄한 설계를 보였다. 게다가 엘피를 종종 듣는 내게 MM은 물론 MC 포노단까지 기본 탑재되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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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시 한 번 일렉트로콤파니에를 만나게 되었다. EC-1에 대한 좋은 기억 덕분에 눈에 보이면 구입하려고 하던 참에 AW-75 파워앰프를 우연한 기회에 영입하게 되었다. 모델명에 출력 수치를 적는, 다소 유치한 작명 센스가 남발되던 시대지만 어쨌든 이 앰프로 인해 일렉트로콤파니에 사운드를 더 깊게 알게 되었다. 비교하자면 뮤지컬 피델리티 같은 소릴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더 매끄럽고 윤기가 흘렀다. 게다가 힘도 있으면서 리드미컬한 특성에 더해 무엇보다 음색이 약간 어두우면서 촉촉한 표면 질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나의 숨은 명기 찾기 여행 중 만난 가장 흥미로운 앰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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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일렉트로콤파니에

이제 거의 15년 흘른 듯하다. 오직 소리 하나만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소리꾼처럼 이젠 눈을 감아도 그 소리가 들릴 듯하다. 그리고 다시 일렉트로콤파니에를 기억 속에서 길어올렸다. 리뷰어로 활동하면서 여러 번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다시 이 앰프를 나의 시스템에 끌어들인 건 최근 운용 중인 스피커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매칭 시도를 위해서다. 일단 락포트의 경우 클라세 델타 프리앰프와 패스랩스 XA60.5 모노블럭 파워앰프로 일단락을 지었고 가끔은 이 앰프를 윌슨오디오 사샤에 매칭해 듣기도 한다. 그리고 웨이버사 Wslim Pro로 번갈아 듣곤 하면서 종종 테스트에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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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트랜스로터 ZET-3MKII 턴테이블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시스템을 분리하고 윌슨 사샤에 스피커 케이블을 길게 뽑아 풀 아날로그 시스템을 셋업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엘피를 교체하러 가기에 턴테이블이 좀 멀어서다. 무척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단 앰프도 새로운 매칭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중 일렉트로콤파니에가 들어오게 되었다. 리뷰를 위한 테스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윌슨오디오에 다양한 매칭을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가치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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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I6 인티앰프는 매우 간단한 인터페이스를 가진다. 이전에 ECI5라는 인티앰프의 후속기로서 여러 업그레이드 이후 출시된 모델. 이 모델을 기반으로 일렉트로콤파니에는 ECI6DS라는 모델을 거쳐 이후 ECI6DXMKII라는 모델까지 진화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은 DAC 및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 옵션을 채용한 것을 제외하면 앰프 부문은 동일하다. 내부를 보면 네트워크 스트리밍 관련 기능을 갖는 옵션 보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후면에도 이 옵션 보드를 장창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내게 관심 있는 건 옵션이 아니다. 별도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그리고 굳건한 MSB Analog DAC가 있기 때문이다. 옵션은 옵션일 뿐. 계륵이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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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 부문 설계는 어찌 보면 요즘 하이엔드 앰프에 비하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일체 집적 칩셋이나 클래스 D 스위칭 증폭을 위한 회로가 없고 클래스 AB 증폭 앰프에 걸맞은 리니어 전원부와 정류단 그리고 증폭, 출력단을 가지고 있다. 전원부의 경우 650VA 용량의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포커를 중심으로 88,000uF 용량의 커패시터 뱅크가 전체 무게를 압도하고 있다. 출력의 경우 8옴 기준 채널당 125와트, 임피던스가 절반인 4옴으로 떨어질 경우 200와트 그리고 2옴에선 370와트 출력을 내준다. 임피던스 하강에 따라 두 배의 선형적인 출력을 보장하진 않지만 2옴 기준까지 정직하게 발표하고 있다.

증폭은 트랜지스터로 최근 많은 클래스 AB 증폭 앰프들이 사용하는 바이폴라 소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 출력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 -를 각각 증폭하는 푸쉬풀 증폭 방식이다. 참고로 프리앰프 및 파워앰프 부문 모두 THD+N 수치가 0.004% 이하로 고조파 왜곡이 무척 낮은 편. 프리앰프의 노이즈 플로어는 –135dB, 파워앰프의 채널 분리도는 120dB정로 우수한 편이다. 인터페이스는 매우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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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단의 경우 XLR 입력이 두 조고 이 외에 RCA 입력이 세 조다. 특히 HT, 즉 ‘Home Theater’ 입력은 프리단을 우회에 파워앰프에 바로 입력되어 최대 출력을 내주는 입력단으로 AV 리시버의 프론트 채널 출력과 연결해 ECI6와 셋팅한 스피커를 홈 시어터 시스템의 프론트 채널로 겸용할 수 있다. 더불어 프리앰프 출력도 RCA는 물론 XLR도 지원하고 있다. 스피커 출력단은 좌/우 스피커 한 조만 지원한다. 전면엔 전원 버튼 외에 볼륨 조절, 입력 선택 등 앰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능만 심플하게 마련해놓았다. 게다가 검은 바탕에 고전적인 볼륨 노브가 전혀 없이 미래 지향적인 미니멀 디자인. 그러나 내부는 전통적인 설계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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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이제 윌슨 오디오 사샤와 격전지에서 한 판 붙을 시간이다. 물론 락포트 Atria와 매칭도 진행해보았으나 저역 구간에서 약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애초에 사샤와 매칭을 염두에 두고 데려온 ECI6인지라 예정대로 사샤와 테스트에 집중했다. 참고로 소스 기기는 웨이버사 Wcore를 룬 코어로 사용하고 Wstreamer를 사용해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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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인티에 오스터휴이스/ Human nature

검은 전면 패널의 이미지처럼 차분하면서 뛰어난 대역 밸런스를 보인다. 보컬 포커싱 정확하고 토널 밸런스 왜곡도 별로 없이 본래 보컬의 음정, 음색을 멋지게 표현해낸다. 락포트의 중고역 밸런스가 더욱 맛깔나게 들린다. 윌슨 사샤로 매칭해 들어보면 사샤의 중역대를 마치 마사지한 듯 좀 더 부드럽고 곱게 만들어주며 잔향이 깃들어 있어 기타의 울림이 무척 음악적이다. 본래 녹음 당시의 톤이 이랬을까? 앰프 자체가 공간의 앰비언스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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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로프그렌 / Bass & drum intro

전체적으로 억양은 뚜렷해 뭔가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베이스 기타 피킹에 탄력이 붙어 존득한 맛이 잘 살아난다. 투명하고 깨끗하지만은 않고 약간의 자기 색깔이 있는데 중저역에서도 풍부한 잔향을 표현해 현장감을 북돋운다. 원래 이 레코딩은 마치 연습 현장의 녹음인 듯 투박하고 거칠다. 하지만 ECI6는 다른 앰프들보다 조금 더 곱게 표현해준다. 엄청난 다이내믹스로 스피커를 밀어붙이진 않으며 대신 적당한 선에서 어르고 달래며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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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레온하르트 / Goldberg variations

맑게 갠 창 밖 풍경이 떠오르는 소리다. 그런데 그 풍경이 도시 속이 아닌 푸르른 숲을 연상시킨다. 확실히 트랜지스터 앰프의 단점인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이 상쇄되어 진공관 앰프 같은 배음, 잔향 특성이 입혀진다. 챔발로 사운드는 원래 화사하고 화려한 잔향이 시청실을 가득 메우곤 했는데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로 매칭하자 더욱 더 화려하고 싱싱하다. 한편 역돔 티타늄의 약간은 자극적인 맛을 곱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아마도 윤기를 더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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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심포니 / Short ride in a fast machine

낄끔하고 해상도 좋은 소리지만 동시에 미려한 잔향이 촉촉한 윤기를 만들어주었다. 더불어 온도감이 있는 편인데 예상보다 중고역은 화려한 색채가 가미되어 있다. 관익 파트가 무대를 수놓으면서 붉게 물들인다. 약음 표현력과 다이내믹스도 훌륭하지만 힘으로 억누르는 헤비 복서가 아니라 미들급에서 빠른 반응력과 곱고 화려한 색채감이 매력적인 앰프다. 윌슨 사샤는 무난히 제어하는 모습. 인티앰프치곤 상당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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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이 앰프의 설계자는 앰프를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들을 위해 만들었다. 오랫동안 연구 끝에 과도 응답 특성을 개선하고 TIM, 즉 트랜지언트 인터모듈레이션 왜곡을 낮추는 등 여러 입지전적인 업적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를 자사의 앰프에 탑재해 스튜디오에서 사용되어 마이클 잭슨 등 팝 음악 제작에 활용되기도 하는 등 이슈를 나았다. 실제 들어보면 일렉트로콤파니에는 스튜디오와 가정용 오디오 모두에서 사용되는 앰프와 음향적으로 유사한 특징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필자가 듣기에 일렉트로콤파니에는 설계 관련 업적 및 스튜디오에서의 활용 등의 업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되레 오직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요즘 보기 힘든 음악적인 표현력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앰프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제원

Preamplifier section
Input impedance ( Balanced input ) 47Kohm
Maximum input level 10 Volt RMS
Noise floor ( 1Vrms, 20 – 20 kHz, balanced) -135 dB
THD + N (1Vrms, 20 – 20 kHz, balanced) <0.004%
Gain (Balanced) 0 dB

Amplifier section
Output Impedance < 0,02 Ohm Frequency response 1 – 150 kHz Channel separation > 120 dB
THD ( 20 – 20 kHz) < 0.004%

Maximum peak current >100A
Damping factor 8 ohm load >350
I Input sensitivity 120W output 1.3Vrms
Input sensitivity HT 120W output 1Vrms
Gain HT Input x36 (31 dB)

Rated output power
8 ohms 2 x 125 W
4 ohms 2 x 200 W
2 ohms 2 x 370 W
Power consumption 110 W
Standby 1W
(no load or signal)

Dimensions
Width 470 mm / 18.3 inches
Depth ( with a speaker terminals) 430 mm / 16.9 inches
Height 128 mm / 5 inches
Weight 20.5 Kg / 45 lbs.

제조사 : ELECTROCOMPANIET HQ(노르웨이)
공식 수입원 : ㈜ 샘에너지
공식 소비자가 : 10,4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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