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마흔이 되도록 이런 저런 직장을 전전하던 장사익이 소리꾼으로 데뷔를 하게 된 건 순전히 임동창 때문이라고 한다. 언젠가 공연장에서 피아노 건반이 부서져라 난해한 연주를 하던 임동창을 기억한다면 장사익과 선명하게 연결 짓기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임동창의 여러 작품들 들어보면 장사익만이 가진 힘과 내면에 담겨 있지만 아직 펼쳐내지 못한 컨텐츠에 대한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장사익의 음악 활동은 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열매의 정규앨범과 공식, 비공식 참여 앨범까지 합치면 상당한 수의 녹음이 쌓였다. 아래는 현재까지 발매된 정규 스튜디오 앨범 목록이다.
1집 – 하늘 가는 길 (1995, 예원)
2집 – 기침 (1997, 서울음반)
3집 – 허허바다 (2000, 서울음반)
4집 – 꿈꾸는 세상 (2003, 서울음반)
5집 – 사람이 그리워서 (2006, 서울음반)
6집 – 꽃구경 (2008, 로엔)
7집 – 驛 (2012, 행복을 뿌리는 판/로엔)
8집 – 꽃인 듯 눈물인 듯 (2014, 행복을 뿌리는 판/카카오M)
9집 – 자화상 (2018, 행복을 뿌리는 판/카카오M)
10집 – 사람이 사람을 만나 (2024, 행복을 뿌리는 판/카카오엔터)
30여 년 전부터 발매하기 시작한 스튜디오 앨범을 LP로 재발매하는 일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시대에 따라 녹음 포맷이 다르고 저장 포맷도 다르다. 그에 따라 장비, 녹음, 믹싱, 마스터링 과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스튜디오와 특정 엔지이어가 계속해서 꾸준히 일관된 기준과 과정을 기반으로 제작했다면 좋겠지만 국내 음악 시장이 그렇게 여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어져온 장사익 앨범의 LP 재발매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리마스터링, 그리고 LP 제작까지 일관성 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지난한 과정을 겪은 앨범은 1집 ‘하늘 가는 길’이다. 아날로그 녹음이지만 오리지널 마스터 테잎을 찾지 못해 CD를 기반으로 리마스터링을 진행하던 와중에 장사익 선생님 자택에서 오리지널 마스터 테잎을 찾은 그 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몇몇 의식 있는 전문가들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테잎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마스터링을 거듭하면서 좌/우 채널, 위상이 뒤바뀐 부분, 이런 릴 마스터에서 자주 발견되는 피치(속도) 보정까지 이어지면서 오리지널 마스터 복원의 작업이 끝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고 마스터 커팅 부분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고민했다고 한다. 총괄 기획을 맡은 C&L 담당자는 45RPM까지 생각했지만 LP 개수가 많아지는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해 접어야만 했다. 결국 최상의 음질을 위해 선택한 건 ‘하프 스피드 마스터링’이었다.
여러 산고를 겪고 다시 태어난 이번 LP는 테스트 LP로도 테스트해보았지만 잘 나온 듯하다. 대체로 양산된 LP가 더 나은 경우가 많은데 이번 1집도 마찬가지다. 특히 1집은 장사익 음악의 시발점이자 시그니처 같은 앨범이며 나의 경우 해설지를 쓰게 되어서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한편 이번에 발매된 1집 외에 10집을 함께 담은 박스반도 함께 출시되었다. 이 박스반은 무척 두터운 아웃박스 안에 두 장의 앨범만 들어있고 중앙에 별도의 박스로 막아놓은 모습인데 내부 박스 안은 비워져 있다. 결론적으로 총 열 장의 정규앨범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박스셋을 이번에 제공한 것이다.
발매 현황을 살펴보면 현재까지 1, 2, 3, 6, 9, 10집은 발매를 했고 이제 남은 건 4, 5, 7, 8집 등 네 개 작품이다. 앞으로 총 넉 장을 LP를 더 모으면 이 커다란 박스를 장사익 선생님의 LP로 빼곡히 채울 수 있다. 꽤 큰 스케일의 재발매 프로젝트가 완성을 앞두고 있는 것. 아마도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는 다시없을 듯 한데 향후 발매될 앨범들도 기대가 된다. 아울러 개인적인 욕심엔 김수철 국악 프로젝트, 정태춘/박은옥의 앨범들도 이런 식으로 LP가 발매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