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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를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레가 System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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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러니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따라 연주회에 간다던가 영화관을 찾는 등의 일이 잦은 풍요로운 일상. 이런 것은 나의 유년 시절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일들이다. 그나마 작은 기쁨이라면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 중에 작은 카세트 라디오가 하나 있어 FM 방송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정도다.

CD 세대였지만 LP의 사이즈가 더 크고 브로마이드 등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LP를 선호했다. 그것도 사실 숨은 이유 중 하나는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하는 것. 지금과 완전히 반대 상황이지만 그 땐 그랬다. 우연한 기회에 중학교 시절 미니 콤포넌트는 손에 넣는데 성공하고 이어서 턴테이블을 추가로 구입하기까지 1년은 더 걸린 것 같다.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 십만 원이 약간 넘는 거금(?)을 내고 턴테이블을 집까지 모셔오던 날 밤의 그 적막한 길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수 킬로미터를 마치 밥상처럼 들고 오느라 팔이 떨어질 것 같았던 팔목의 통증도.

어쩌면 결핍이 이후 욕망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개 이런 욕망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무릇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카세트 테잎이 가장 대중적인 매체였고 학생들은 돈 안드는 FM이 음악의 주요 수급 채널이었다. 마이 마이, 워크맨 그리고 파나소닉 등. 그나마 국내 오디오 메이커들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에 대중의 음악에 대한 갈증을 녹여주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에 이어폰 하나면 매월 몇 천 원 정도로도 갈증 정도를 해갈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LP를 듣는 데는 더 많은 돈이 드는 시대다. 시대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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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는 쉽지 않아

LP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데 많은 돈이 드는 건 비단 오디오 때문만은 아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재발매나 신보 LP의 가격은 꽤 많이 비싸다. 기본이 4만원대, 내가 좋아하는 재즈, 클래식 LP는 5~6만원대도 흔할 정도니까. 하지만 LP는 중고가 많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뒤져보면 오히려 재발매보다 훨씬 더 좋은 음질의 중고 LP가 산처럼 많다. 단지 취사 선택의 혜안과 노하우 그리고 음악, 음반에 대한 지식이 뒤따를 때 그 많은 LP의 음악적 수혜를 온전히 받을 수 있다.

LP 감상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 있다. 오디오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처음 LP를 듣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비싼 오디오보다는 소스, 즉 LP에 투자하고 카트리지만 조금 좋은 것을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시중에 마치 장난감 같은 턴테이블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턴테이블 베이스, 톤암, 플래터와 모터 등 턴테이블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구조와 위치, 소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종종 팬시 상품처럼 소비되는 턴테이블을 단지 매우 저렴하단 이유로 구입해서 사용하다가 그 값비싼 LP의 소릿골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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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를 즐기는 가장 간편한 방법

아마도 영국의 레가라는 브랜드는 이렇게 LP 하나 듣겠다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대중들을 위해 고심했던 것 같다. 1973년 설립 후 턴테이블로서 현재 전 세계 가장 인정받는 브랜드를 넘어 존경받은 브랜드 레가다. 그리고 평생 아날로그 대중화를 위해 헌신해온 레가의 대표 로이 간디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공짜로 시스템을 헌납하겠다는 이야긴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대에 고민 없이 간편하게 LP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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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원(System One)이라 바로 레가가 제시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작지만 똘똘한 인티앰프와 LP를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 그리고 스피커 조합이다. 이 모든 것은 다름아닌 레가가 모두 만들어낸 것들이다. 일단 앰프는 인티앰프로서 8옴 기준 30와트 출력을 내는 미니 사이즈다. 하지만 작다고 우습게 볼 앰프는 아니다. 서재나 거실 한편에서 충분한 음량을 내줄 수 있는 앰프다. 입력단은 RCA가 세 조. 한 조는 MM 카트리지에 대응하는 포노단으로서 별도의 포노앰프를 구입해야 하는 데 지출할 예산도 필요 없다.

이 앰프의 모델명은 io. 여러 차례 어워드에서 우승한 Brio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증폭 방식은 클래스 AB 방식이며 리모컨을 지원한다. 더불어 전면에 헤드폰 출력단도 마련되어 있으므로 늦은 밤 스피커로 듣기 힘든 경우 헤드폰을 연결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시스템 원이 턴테이블을 포함하고 있는 LP 전용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머지 두 개의 RCA 입력단에 CD 플레이어나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연결하면 디지털 음원도 물론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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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턴테이블로 시선을 옮기면 레가의 Planar 1이라는 모델로서 전매특허인 직선형 톤암이 눈에 들어온다. 스태틱 밸런스 톤암으로 RB110 이라는 모델이 장착되어 있다. 레가 톤암의 정밀도는 정평이 나 있으며 LP의 추적 능력은 입문기라고 해도 여타 메이커의 중급에 버금간다. 게다가 카트리지가 입문기이긴 하지만 카본 MM 카트리지가 기본 장착된다. MM 방식으로 코니컬 스타일러스에 카본 소재 캔틸레버를 사용하는 카트리지다. 안티스케이팅도 자동이고 카트리지도 기본 장착되어 있으므로 후방의 무게추를 조정해 침압만 맞추어주면 바로 사용 가능하다. 이 정도면 수동 벨트 드라이브 방식으로선 거의 ‘플러그 & 플레이’ 정도 수준으로 간편한 턴테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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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스피커는 카이트(Kyte)가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예전의 레가 스피커와 인클로저가 다르다. 원래 목재를 사용한 인클로저로 만들던 레가가 돌연 수지 계열 인클로저를 채용한 것. 레가 입장에선 좀 더 기능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을 통해 입문기의 가격 대비 성능을 끌어올리려는 듯 새로운 설계를 보이고 있다. 우선 페놀 수지를 사용해 사출 성형 방식으로 매끈하게 뽑아냈고 정재파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선형적인 디자인을 택했다. 내부도 세라믹 브레이싱 등을 통해 강성을 높이고 있는 모습. 이제까지 레가의 전통적인 목재 박스 디자인을 버리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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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트는 공칭 임피던스 6옴, 감도는 89dB로 제어 자체는 어렵지 않아 앰프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웨이 저음 반사형으로 후면에 포트를 설계해놓은 것도 그렇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io 같은 작은 인티앰프로도 균형 잡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역은 ZRR 트위터, 미드/베이스 유닛은 MX-125라는 독자적인 드라이브 유닛을 적용하고 있는데 높이가 325mm에 무게도 3.73kg 정도로 꽤 작고 가벼워 설치도 편리한 편이다. 참고로 스피커 바인딩포스트는 싱글 와이어링만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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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한 세팅, 감각적인 디자인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그냥 레가 자신들이 이미 존해하는 제품들을 그저 조합만 해놓은 입문형 시스템으로 생각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른 메이커의 제품끼리 조합해도 좋을텐데 굳이 꼭 이런 구성으로 사용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매칭이라는 부분이 입문자에겐 상당한 난제로 떠오를 수 있고 레가는 아마도 매칭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들이 그 수고를 덜어주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국내에 시판되는 시스템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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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DO의 Slash3라는 블루투스 리시버를 추가로 포함시켜 디지털 음원도 간단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하나는 장식장이다. 물론 옵션이긴 하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의 전용 오디오랙을 준비해 원하는 경우 함께 구입해 세팅할 수 있도록 했다. 고무나무를 사용한 랙으로 실제 보면 디자인이나 완성도가 꽤 좋은 편이다. 내구성 좋고 습기에 강해 변형이 거의 없는 고무나무를 사용했으며 상단에 서랍, 하단에 LP를 보관할 수 있는 LP랙도 겸하니 시스템 원에 최적화된 랙이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절대 작지 않은 음악적 울림

유재하 horz

레가 시스템 원은 레가의 앰프나 스피커, 턴테이블 무엇이든 하나라도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그들만의 사운드로 채색되어 있다. 일단 중역에 도톰한 살집이 도드라지므로 보컬 음악에서 매력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나 스텔라 장의 ‘Winter wonderland’ 같은 곡에서 남성, 여성 보컬을 가리지 않고 보컬이 앞에서 호소력 짙게 노래한다. 그 표면 질감은 아주 투명하며 냉정한 톤이 아니라 부드럽고 온도감이 두드러지는 소리다. 바짝 긴장하게 만들지 않고 소파에 편안히 앉아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만든다.

stephen horz

특히 어쿠스틱 기타의 울림은 다른 어떤 악기보다 매력적이다. 스테픈 피어링의 ‘Red lights in the rain’을 들어보면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어느 저녁을 연상시키는 듯 서정적인 표정이 멋지게 표현된다. 적당히 두터운 중역대에 더해 잔향이 충분해 차갑지 않고 따스한 기타 울림이 풍부하게 들린다. 이 앨범은 사실 레가의 대표 로이 간디가 프로듀싱하고 녹음에도 참여한 앨범이다. 레가 뿐 아니라 다른 시스템에도 이런 음질 특성을 드러나는데 레가 시스템 원에서 듣는 이 LP는 레가의 사운드 스펙트럼을 더 견고하게 드러낸다.

DO의 Slash3 블루투스 리시버도 요긴하게 사용할만한 기기다. 얼마 전 구입한 아이폰 14PRO로 간만에 블루투스를 페어링하니 빠르게 Slash3를 잡아낸다. 여러 트랙 중 그레고리 포터의 ‘Holding on’ 같은 곡을 들어보면 보컬 외에 백밴드의 연주도 꽤 충실하게 잡아낸다. 확실히 각 악기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으며 기분 좋은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ESS의 DAC 칩셋을 사용한 만큼 그 특징이 묻어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전체적으로는 레가 사운드가 지배하는 소리다. 이 정도라면 거의 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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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유년 시절 LP를 듣는다는 건 내게 힘든 일이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여유도 있었다면 전축이 거실을 차지했을 테고 마음껏 음악을 즐겼을 테지만 그저 쇼윈도에서 커다란 오디오와 턴테이블을 구경만 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절에 LP를 듣기 위한 시스템을 꾸린다는 게 한정된 예산에서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너무 적은 예산에선 오히려 디지털보다 나을 게 전혀 없이 후회와 상처만 남길 수도 있다. 레가가 제안한 시스템 원은 누구나 마음먹으면 LP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LP를 통한 음악 감상 이유의 최소한으로 보인다. 시스템 원은 아날로그를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바친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레가 리서치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2,400,000원 (오디오랙 옵션 : 6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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