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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의 탄생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7부

emily remler thumb

“레코드, 둥그런 그대는 우리가 주문하는 대로 크고 작은 소리로, 낮고 높은 소리로 우리의 시간을 빛내주네. 빙글빙글 돌아라. 정신세계의 회전목마.”

엔리코카루소

시의 주인공은 독일의 신즉물주의 시인 요하임 링겔나츠(Joachim Ringelnatz)다. 20세기 초에 선을 보인 레코드는 조그만 가게에서 재봉틀, 시계, 자전거와 함께 판매하던 인기 없는 상품이었다. 레코드는 최초의 음반스타인 성악가 카루소(Caruso) 덕분에 싸구려 이미지를 청산하고 상류층의 기호상품으로 자리 잡는다.

작곡가 드뷔시(Debussy)는 레코드란 “완전하고 정확한 불멸의 존재‘라고 정의했다. 레코드란 플레이어의 턴테이블에 걸어 소리를 듣게 만든 동그란 판을 의미한다. 유의어는 디스크, 앨범, 음반이다.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LP와 CD를 통칭하는 의미로 레코드를 언급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최초의 재즈 레코드는 무엇일까.

레코드이미지

책 <음반의 역사>에 의하면 1917년 뉴욕에서 등장한 를 최초의 레코드라고 설명한다. 1차 대전의 혼란과 상처의 영향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기류가 미국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당시만 해도 재즈는 감상용 음악이 아니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밴드를 결성하여 1925년 겨울부터 4년간 89곡을 녹음한다.

레코드 판매율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하지 못한다. 라디오의 등장과 경기불황이 원인이었다. 주요 레코드 생산국이던 독일은 제국주의의 물결 아래서 재즈를 방탕한 유대집단의 퇴폐적인 소리라고 규정한다. 억압은 자유의 가치를 확대재생산한다. 2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재즈음반은 암암리에 독일시민의 관심을 받는다.

미국은 2차 대전의 최대 수혜국으로 우뚝 선다. 경제호황과 함께 유럽의 음악가가 미국으로 대거 망명하면서 음악시장이 미국 중심으로 짜여진다.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에 시달리던 미국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1948년 뉴욕의 호텔에서 장시간용 레코드(Long-Playing Record)라 불리는 LP 시연회가 열린다.

emily remler easttowes

1950년대 말에는 모노 레코드와 스테레오 레코드가 동시에 발매된다. 재즈 역사상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로 불리는 음향감독 루디 밴 겔더(Rudy Van Gelder)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최고의 녹음기술을 들려준다. 소개하는 재즈기타리스트 에밀리 레믈러의 음반은 LP가 탄생한지 무려 30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 등장한다. 1988년에 처음 구했던 그의 음반은 ((East To Wes))였다.

타이틀 그대로 전설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의 전매특허인 엄지손가락 주법(Thumb-Picking)을 충실하게 재현한 레코드였다. 에밀리 레믈러는 1982년 잡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뉴저지에서 온 유대인 여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웨스 몽고메리처럼 엄지손가락이 큰 50세의 무거운 흑인 남성”이라고 발언한다.

emily remler firefly

소개하는 음반은 필자가 두 번째로 구입한 ((Firefly))다. 1981년이라는 발매년도가 무색할 정도로 트레디셔널 재즈에 충실한 연주곡이 가득하다. 이 음반은 밴드 리더로서 그가 발표한 첫 번째 결과물이다. ((East To Wes))가 하드 밥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면 ((Firefly))는 차분한 템포의 곡이 여럿 눈에 띈다. 추천 곡은 마지막 트랙인 (In A Sentimental Mood)다.

emily remler transitions

에밀리 레믈러의 콩코드 레이블 3부작을 꼽으라면 ((Transitions))를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다. ((Firefly))처럼 차분한 템포의 연주곡으로 채워진 앨범이다. 재즈초심자에게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음반이다. 모던재즈 레이블인 콩코드(Concord)사의 간판연주자였던 그는 1990년, 지인의 저택에서 30대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사인은 약물중독으로 인한 심부전이었다. 레코드 산업의 후반기에 벌어진 재즈여제의 아쉬운 승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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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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