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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민낯을 보다

제네렉 8381A

8381blog

20대와 30대를 거치며 다양한 스튜디오, 공연장을 경험했었다. 음악 관련 일을 하다보면 경험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일이다. 사실 음향보단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음향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곤 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하는 유명 엔지니어들의 스튜디오는 좀 더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 당시엔 그저 조그만 로컬 스튜디오들이 대다수였다. 기본에 충실하게 녹음 원본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거나 플랫한 주파수 특성을 기반으로 후반 작업을 하는데 최적화되었다는 장비들이지만 내 귀엔 내 조그만 하이파이 시스템보다 못한 소리로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물론 당시 입문형을 갓 벗어난 시스템을 이리 세팅하고 저리 세팅하고 또 바꾸는 등 열정적으로 오디오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유명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동생들이 스튜디오를 놔두고 나중에 내 집으로 음악을 들으러 오기도 했다. 당시 막 후반 작업을 마친 마스터 레코드를 가지고 와서 새벽까지 한참을 듣다가 가서 다시 음원을 수정하곤 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이 최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악을 즐기며 돈을 지불해 그들이 음악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건 소비자이며 따라서 그들이 듣기 좋게 만드는 것도 그들의 의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GLM을 활용한 세팅 2

모니터 시스템에 대해선 가끔 경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바워스&윌킨스를 중심으로 하는 사운드미러 스튜디오의 시스템이 아마도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황감독님 외엔 국악 전문 레이블 악당이반의 스튜디오가 정말 좋았었고. 그 중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 중엔 제네렉이 꽤 괜찮았다. 대개 올망졸망한 사이즈의 스피커를 종종 접했는데 하이엔드 오디오의 개성 넘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스튜디오 마스터의 민낯을 정직하게 들려주는 아이들이었다.

최근 나의 시청실 튜닝을 어느 정도 마치고 음악도 즐기고 제품 테스트도 하고 있을 정도는 꾸려진 상태였다. 종종 유튜브 촬영을 하기도 하는데 요즘들어 부쩍 측정이 필요한 제품들의 의뢰가 들어온다. 최근엔 링돌프 오디오에서 만든 TDAI-3400 스트리밍 앰프와 SDA-2400 파워앰프가 정말 재미있었다. 자체적으로 만든 룸퍼펙트의 성능은 이제까지 홈 오디오에서 봐왔던 공간 음향 보정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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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제네렉이다. 사실 유튜브 영상 촬영도 촬영이지만 나의 청음실에서 프라이빗 쇼케이스가 있었다. 이를 위해 제네렉의 플래그십 신제품 8381A를 설치하자는 제안. 가장 최신의 스튜디오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들의 GLM이라는 보정 프로그램도 궁금했다. 이 스피커는 기존에 보던 작고 앙증맞은 제네렉이 아니다. 1미터 50cm 정도 키에 동축 유닛 하나 그리고 네 개의 미드레인지와 총 세 발의 15인치 우퍼를 채용한 대형 액티브 스피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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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15인치 우퍼를 담은 인클로저는 분리형이었고 앰프도 분리형이었다. 가정용 오디오에서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사요하지 않고 스피콘 단자로 연결되어 총 네 개의 파워앰프 모듈이 동원되어야만 작동한다. 모든 유닛을 바이앰핑 방식으로 구동하는 설계다. 결국 이런 대형 시스템의 완벽한 사운드 구현을 위해선 바이앰핑이 답일 수밖에 없다. 앰프는 클래스 D 증폭으로 5926와트. 전체 주파수 응답은 20Hz에서 35kHz에 이르며 최대 SPL 응답이 무려 129dB. 대부분의 중대형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그렇듯 이 스피커도 가정에선 제대로 된 운영이 어렵다. 단독 대형 평수 가옥이나 지하 전용 청음실 정도 되어야 충분한 실력을 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

GLM을 활용한 세팅 4

흥미로운 건 아무래도 GLM 소프트웨어를 통한 공간 음향 보정 작업이었다. 이건 수입사의 테크니컬 엔지니어 팀원들이 직접 내방해서 진행했고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의문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과정은 대개 비슷해서 마이크로 측정하고 그 측정 데이터를 저장 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공간의 음향 특성에 스피커 작동을 최적화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디락 라이브나 룸퍼펙트보다는 그 운용 측면에서 난이도가 좀 있는 편이다. 세부적인 데이터를 더욱 상세히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그레이드 리포트를 통해 공간 음향 특성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RAM 81 앰프 모듈 1

아무튼 8381A라는 대형 액티브 모니터 시스템으로 듣는 사운드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체로 주파수 특성이나 시간축 반응이나 지향 측면은 모니터 스피커가 좋지만 하이파이 측면에서 보면 건조하고 답답한 구석이 있는 스피커들도 많이 봐왔다. 8381A 같은 경우도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서 보면 음악에 빠져들게 만들기 보단 검열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경험해왔던 스튜디오 액티브 모니터와 차원이 다른 사운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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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역은 Complementary 모드와 Continued Directivity 모드 등을 적용해 비교해보면서 GLM 소프트웨어의 영민한 알고리즘에 감탄하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차이코프스키 ‘1812 서곡’을 재생해보았는데 말미의 대포 소리가 정말 청음 위치에서 발끝까지 전해오는 쾌감이 대단했다. 유유히 퍼져나가는 저역이 아니라 윤곽이 뚜렷하며 펀치력이 최고조로 끌어올려진, 단단한 저역으로 실제 초저역을 이렇게 리얼하게 내주는 스피커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GLM으로 보정 전/후 차이 사운드도 상당히 컸지만 나의 청음실에서 보정 전 주파수 특성도 그리 나쁘진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하나를 고르라면 보정한 후의 소리를 고르겠다. 소리의 민낯을 보았고 주변 기기의 특성을 낱낱이 분석해주었다. 이 스피커 시스템의 소리는 상당히 오래 뇌리에 기억될 것 같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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