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끝단으로
불새 MK3의 설계는 디지털 분야에서 DAC 하나만을 놓고 볼 때 거시적인 측면에서 집중과 선택이 돋보인다. 입력단에서 거의 모든 고해상도 음원에 대응하면서도 전기적 노이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절연에 충실하다. 아마네로 USB 입력단도 훌륭한 선택이며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연결해 사용해보면 동축 등 여타 출력단에서도 충분히 높은 성능을 유지해준다. 채널당 두 개의 R2R 래더 칩셋을 사용한 구성은 칭찬받아 마땅하며 두 발의 클럭 등 현재 이용 가능한 최고 수준의 재료를 모아 정석을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정석을 밟아나간 모습이다. 절대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설계는 아니다.
한편 양자화 오류라는 디지털의 치명적인 약점을 해소하기 위한 오버샘플링은 16배를 적용했다. PCB 회로를 보면 큼지막한 자이링스 FPGA를 통해 대량 데이터를 고속 연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오버샘플링을 통해 아날로그와 유사한 파형을 만들어내되 필연적으로 생산되는 부산물들, 예를 들어 링잉 현상을 필터로 보정해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칩셋에서 이러한 필터 기능을 다양하게 준비해놓고 있는데 불새 MK3에선 아포다이징 필터를 선택했다. 리니어 필터에 비해 프리 링잉 현상을 최대한 억제해 무척 자연스러운 청감을 만들어내는 필터다. 대표적으로 메리디안의 디지털 기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런 음악적 뉘앙스 전달에 아포다이징 필터가 어떤 청감상 강점을 가지는지 상상이 가능할 듯하다.
DAC라는 디지털 기기에서 사람들이 설계상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보다 디지털 섹션이다. 그러나 DAC는 말 그대로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해주는 기기다. 편의상 디지털 신호로 기록된 데이터지만 결국은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어주어야 이후 앰프에서 증폭해 스피커를 통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신호가 된다. 따라서 DAC에서 아날로그 버퍼, 출력단은 디지털 섹션만큼, 아니 때론 더 중요하며 그것이 최종 음질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지배적이다. 고가의 DAC 칩셋을 사용해 디지털 섹션만 강조한 DAC보다는 더 낮은 레벨의 칩셋을 사용하면서도 아날로그 출력단 및 전원부 등에 비범한 노하우를 가진 DAC가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경우와 일맥상통한다.
불새 MK3는 델타 시그마 모듈레이션 방식과 달리 R2R 래더 방식을 사용하면서 최초 이미지 신호가 685kHz 정도 높이의 주파수 대역에서 발생하므로 노이즈 제거가 수월하다. 결국 가청 신호 상당 부분 윗부분에서 간단한 버퍼 앰프로 제거 가능하므로 가청 주파수 대역에서 존재하는 음악 신호에 대한 폐해가 적다. 더불어 불새 MK3의 경우 출력단을 풀 밸런스, 풀 디스크리트 회로로 구성해 그야말로 음질적인 타협이 거의 없는 화려한 설계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피드백이 필요 없을 만큼 선형적인 특성을 가진 도시바 J-FET를 페어 매칭해 사용하고 있다. 도시바 J-FET는 탁월한 성능으로 유명해 앰프 설계의 레전드 넬슨 패스도 무척 많은 양을 미리 구입해놓고 사용하는 소자. 거의 직렬 삼극관에 버금가는 특성을 지녀 극도로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데일 저항 등 모두 선별된 고가의 최고 부품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새 진화의 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회로를 뒤덮고 있다시피한 커패시터들이다. 반오디오 제작진은 여러 종류의 커패시터를 적재적소에 투입했는데 그 개수가 천 여개가 넘는다. 본래 MK3 오리지널도 좋은 부품들을 사용했지만 Final Evolution 버전에선 더 상급의 선별된 커패시터를 조합해 제품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제품 상판을 열면 보이는 디지털 부문 PCB 보드 아래에 아날로그 출력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도 적극 투입된 모습. 절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어서 PCB 보드 뒷면에도 빼곡이 실장된 고신뢰 부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오리지널 불새 MK3도 SN비가 127dB였는데 여기서 더욱 높아진 스펙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청음
약 20여 년간 많은 R2R 및 델타 시그마 방식 DAC를 분석, 테스트해보았지만 필자로선 설계 관련해선 거의 비판할만한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 과연 이런 설계에서 어떤 사운드와 성능을 보여줄 것인가? 테스트에 사용되거나 비교한 제품들은 아래와 같다. 평소 시청실에서 사용하는 레퍼런스 장비들로 수시로 사용하면서 보완, 점검하는 제품들이다.
ROON 코어 : 웨이버사 Wcore
네트워크 플레이어 : 웨이버사 Wstreamer
SACDP : 마란츠 SA10
턴테이블 : 트랜스로서 Zet-3MK2
카트리지 : 다이나벡터 DV20XH, 골드링 1042
포노앰프 : 서덜랜드 PhD
프리앰프 : 클라세 Delta
파워앰프 : 패스랩스 XA60.5 모노
인티앰프 : 라인 마그네틱 LM-219IA Plus
스피커 : 윌슨오디오 Sasha
스피커 : 락포트 테크놀로지스 Atria
리키 리 존스 – ‘Dat dere’
맑고 순수한 청정수 같은 배경 위에 음악이 모습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매우 투명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약음도 아주 잘 들리는데 형언하기 힘든 투명도와 세밀한 음촉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옥타브 구분이 섬세하고 어떤 대역간 불편한 움직임이 없고 특정 대역의 감쇄나 강조도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마치 동축, 풀레인지 스피커 혹은 싱글엔디드 클래스 A처럼 불편한 이음매, 왜곡이 사라진 청정 사운드를 선보인다.
박혜상 – ‘While you live’
음색은 어떤 착색도 거부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냉정하고 차가운 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불새는 잔향을 억제하지 않고 음원에 담긴 그대로 표현해낸다. 스튜디오 모니터링에 사용하는 그런 정직함과는 거리가 있다. 정제된 편안함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앰비언스까지 그대로 여과 없이 토해낸다. 토널 밸런스 측면에서 이것이 진정 뮤지션이 듣고 싶어 한 소리가 아닐까 한다.
뮤지카 누다 – ‘Come together’
중, 저역 쪽으로 이동하면 불새가 이전 버전에서 얼마나 진화했는지 여실히 증명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중역의 디테일이 더욱 상승해 가수의 입 움직임이 연상될 정도다. 한편 저역을 오가는 더블 베이스가 낮은 저역까지 쉽게 표현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 옥타브 구분과 투명도다. 마치 호수의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고 동시에 맑다. 이전 버전의 저역 중량감. 넉넉한 폭과 깊이에 더해 해상도가 더해진 저역 퀄리티다.
아바도/베를린 필 – ‘베르디:Requiem’
R2R DAC가 자연스러운 대역간 이음매와 충실한 배음 및 타이밍 표현에서만 강점이 있고 다이내믹은 떨어져 묽고 힘없는 소리를 내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가장 넓은 다이내믹레인지를 가진 대편성 녹음에서 불새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폭넓은 다이내미즘을 선보인다. 자극 없이 투명한 배경에 음표들이 거대한 파도의 다이내믹 안에서 송어처럼 기민하게 활개 치며 움직인다. 음향적 실체감은 최고조로 올라가지만, 디지털의 피로감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리처드 용재 오닐 – ‘헨델 : Passagalia’
이 녹음은 바이올린이 불타오르는 듯 뜨거운 열정이 넘실댄다. 사실 윌슨 사샤로 들으면 이전에 MSB로 들을 경우 고역이 비교적 점잖게 들린다. 따라서 연주에 인입된 연주자의 감정이 약간 절제되어 들리는데 불새 MK3의 경우 활활 타오르는 감정이 여과 없이 밀물처럼 가슴으로 쓸려와 버린다. 그러나 이런 높은 정보량과 특히 고역의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은 고순도를 유지하는 놀라운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덱스터 고든 – ‘Cheese cake’
아마도 여러 악기군 중 배음 표현이 가장 복잡하고 그 구조가 난해한 것이 관악기일 것이다. 따라서 재생 측면에서도 난이도가 높다. 단지 전고조파 왜곡이 낮다고 해서 전부 충족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새 MK3는 왜곡 없이 선명하면서도 금빛 관악의 표면 질감까지 싱싱하게 드러나는 색소폰 음색을 표현해준다. 녹음에 담긴 특유의 잔향 정보까지 걸러버린 앙상하고 건조한 소린 절대 아니다. 왜곡은 줄이면서도 악기의 음색, 잔향은 고스란히 남아 실제 연주를 눈앞에서 듣는 듯 실체감을 최고조로 유지한다. 이는 색소폰뿐만 아니라 고역의 심벌 터치에서도 일관적으로 포착되는 부분이다.
총평
현대 사회의 산업은 거의 모두 기능성,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일부 분야는 단순히 기능, 채산성 등을 위해서만 흘러가진 않는다. 단순히 기능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진공관이 여전히 살아 있고 시대를 거슬러 엘피가 다시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해상력, 디테일, 전고조파왜곡, SN비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진 않는 것은 무엇보다 감성의 영역과 공학의 영역이 교차되는 부분에 하이엔드 오디오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트랜지스터를 수십 발 탑재해 푸쉬풀 증폭, 수백와트의 출력을 내주는 하이엔드 앰프들의 소리를 듣다가 채널당 단 두 발의 FET를 탑재한 넬슨 패스의 파워앰프가 순도 면에선 훨씬 더 좋은 소리를 내주는 걸 보고 아연실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 모든 트랜지스터 앰프 앞에서 삼극관을 채널당 한 발 사용한 싱글엔디드, 클래스 A 앰프가 훨씬 더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주어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3웨이, 4웨이 등 여러 발로 대역을 나두고 팔뚝만한 크로스오버 보드를 설계한 하이엔드 스피커의 소리가 단 한발의 동축이 내주는 그 네추럴 사운드에 두 손을 든다. 소리를 분해해 복잡한 방식의 회로를 구현해 재생산할 경우 스펙상 SN비는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그 반대급부로서 구간 구간마다 크로스오버 왜곡, 정보량, 에너지 저하가 발생하기도 한다.
반오디오는 불새 시리즈에 R2R 래더 DAC 형식을 끌어들여 집요하게 진화시켜왔다. 요즘 델타시그마 방식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 필터는 최대한 배제했고 대신 음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단순화하면서 동시에 완벽을 기했다. 선택과 집중이다. 더불어 최근 DAC들이 간과하고 있는 아날로그 출력단과 전원부에 하이엔드 앰프만큼이나 정성을 들인 모습이다. 특히 Final Evolution 버전에선 수백 개의 커패시터를 상위 소자로 변경하면서 이전의 아주 작은 약점까지도 개선하고 있는 모습이다.
127dB에 달하는 SN비와 125dB라는 뛰어난 다이내믹레인지 등 불새 MK3의 우수한 스펙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 청감상 드러나는 불새 MK3 Final Evolution의 사운드는 1급 청정수처럼 맑고 전체 해상도, 특히 저역 해상도는 오리지널보다 한껏 더 상승했다. 결국 청감상 SN비와 전체 대역 밸런스, 토널 밸런스의 뚜렷한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에게 인생 DAC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불새 MK3라고 대답할 것이다. Final Evolution 버전은 아날로그와 가장 가까운 디지털 사운드에 바친 불새의 마지막 불꽃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DAC Technology :
독자 개발 24bit R2R Multi-bit Ladder
내부 연산은 26bit로 처리
DAC Chip
채널당 Analog Device AD5781+ AD5541
DSP
Xilinx Spartan FPGA with x16 oversampling
Linear Oversampling, Apodising Filter
Data rate
PCM 24bit/384kHz
DoP로 DSD128, Native DSD는 DSD512(ASIO Only)
Digital Input
USB Audio Spec 2.0(Asynchronous) x1
Optical Toslink x1
SPDIF Coax(RCA) x1
AES/EBU XLR x1
Analog Output
Un-Balanced RCA 2.0V, Balanced XLR 4.0V
Power Supply
Talema Transformer Linear Power Supply,
Analog와 Digital 전원 분리
Dynamic Range : 125dB
SNR : 125dB (Un-Balanced RCA) / 127dB (Balanced XLR)
THD : 미정
Dimension(WxDxH) : 440x400x90mm(with Foot 115)
Case Material : 100% Aluminum Alloy
Power consumption : 대기시 1W 미만, 동작시 30W 미만
Dynamic Range는 Audio Precision System 2722로 측정한 값
제조사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12,0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