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지금도 생각난다. 어렸을 적 TV에서 본 모 국내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의 광고 말이다. 갑자기 쿵쿵 하는 박진감 넘치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카라얀의 지휘 장면이 TV 화면을 가득 메웠다. 그저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것만 알았지 카라얀이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어느 오케스트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만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뇌리 속에 명료하게 남아 있다. 오히려 당시 나왔던 음악보다 그 시각적인 정보가 나의 뇌에는 더 정확히 남아 수많은 기억의 서랍 중에서도 가장 명료하게 기억되는 듯하다.
어렸을 적 음악을 좋아했지만 당시 뮤직 비디오나 콘서트 영상은 구하기 어려웠다. 팝 음악이나 록 음악을 라디오에서 듣거나 또는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는 정도였다. 여유가 있으면 커다란 LP를 구입해 닳도록 들었다. 뮤직 비디오가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꿈도 못 꾸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리 녹록치 못했다. 종종 음악 감상실에서 틀어주던 뮤직 비디오로 갈증을 조금 해소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 보았던 뮤직 비디오, 공연 영상은 지금도 기억날 만큼 충격이 컸다. 단지 음악만으로 경험했던 것보다 몇 배의 감동을 주었다. 눈은 귀보다 더 즉답적이다.

언제부턴가 영상을 즐기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 온라인에서 찾으면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듣던 팝과 록부터 시작해서 재즈, 클래식 음악가들까지 PC 모니터와 스마트폰 위로 얼굴을 내비쳤다. 과거 비디오테이프나 DVD, 또는 블루레이 등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던 미공개 영상도 많다. 어디서 이런 영상들이 숨어 있었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영상은 이제 음악 애호가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청각은 물론 시각 등 공감각을 통해 복합적으로, 입체적으로 즐기는 콘텐츠는 그 즐거움과 몰입감을 몇 배나 더 증폭시키는 힘이 있었다. 바야흐로 음악을 듣기만 하던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뤄졌다.

클래식 음악을 보다
그러나 음악과 영상을 함께 즐기는 일이 오디오파일에게는 그리 녹록치 않다. 과거 작은 화면으로 DVD나 블루레이를 보다가 유튜브 등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보는 영상의 화질은 생각보다 품질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음질은 손실 포맷으로서 타이달이나 코부즈에서 서비스되는 무손실 Flac, 게다가 24bit 음원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대안은 있다. 바로 정식으로 출시된 4K 블루레이를 구입해 전용 플레이어로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블루레이 시장의 축소로 절판된 것이 많고 구입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굴지의 국내 하이파이 메이커 하이파이로즈에서 ‘심포니 프리미엄’이라는 클래식 영상 전용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름 아닌 네덜란드의 스트리밍 서비스 symphony.live를 인수해버린 것이다. 기존의 symphony.live는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정상급 악단들의 공연 실황을 고화질, 고음질로 송출하며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다져온 플랫폼이다. 그리고 하이파이로즈는 이 서비스를 심포니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조해내고 있었다.

하이파이로즈는 이번 인수를 통해 이 방대한 명문 악단들의 독점 라이브 및 아카이브 콘텐츠를 자사 생태계 내부로 고스란히 편입시켰다.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에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장 갈증을 느끼던 ‘검증된 하이엔드 소스’의 통제권을 완전히 확보한 셈이다. 기존에 국내/외에서 어렵게 DVD와 블루레이를 구입해 콘서트 영상을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HD를 넘어 4K UHD 영상까지 서비스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아무런 제약 없이 고해상도 영상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이파이로즈로 즐기는 심포니 프리미엄
그러면 심포니 프리미엄에서 제공하는 영상 스트리밍은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우선 이 서비스를 십분 즐기기 위해서는 하이파이로즈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우선 RS151을 대여해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심포니 프리미엄 앱을 실행하니 여러 카테고리가 보이며 특히 ‘레퍼런스’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다. 그 중 ‘4K UHD’가 가장 눈에 띄었고 이 외에 ‘FHD’, ‘Multi-Ch’ 등의 카테고리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드웨어 세팅의 경우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영상은 TV로 송출하고 음성은 XLR이나 RCA로 출력해 2채널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 물론 좀 더 상급 하이엔드 DAC를 보유하고 있다면 동축 등 디지털 출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영상의 경우 홈 시어터 시스템을 운영해 보지 않은 사람에겐 조금 헷갈릴 수 있다. RS151에는 무려 세 개의 HDMI 규격 단자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HDMI eARC는 TV가 호스트가 되어 영상을 패스스루하고 음향만 RS151에 연결된 앰프 쪽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I2S 전송용 HDMI도 별도의 I2S 입력을 받는 DAC가 없다면 예외다. . 심포니 프리미엄은 RS151이 호스트가 되어 음향, 영상 모두 출력하므로 일반 HDMI 출력단을 활용해야한다.

이번 시청에선 필자의 멀티 채널 시스템을 활용해 심포니 프리미엄의 영상 콘텐츠를 즐겨보았다. RS151의 HDMI 출력단을 활용해 야마하 AV 리시버에 연결했고 영상은 소니 4K 프로젝터로 보냈다. 그리고 음향 신호는 AV 리시버에서 패스스루한 후 프론트, 센터, 리어, 그리고 서브우퍼로 보냈다. 참고로 스피커는 틸 CS2.4 및 MCS1 센터 스피커 등을 사용했다.
빛과 소리로 재구성한 명연의 순간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Grieg – Piano Concerto in A minor)
리카르도 샤이 지휘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북유럽 서정이 넘실거리는 그리그의 투명한 선율을 리카르도 샤이의 정교한 통제와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크트의 서정적인 터치로 조율해낸 수작이다.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음영과 솔로 피아노의 시적 분출이 유기적으로 교차하며 로망스 본연의 생동감을 전달한다. 음향 측면에서는 FLAC 24bit 48kHz, 2채널 무손실 음원을 채택하여 피아노 타격의 명징한 어택부터 공간에 남는 여운까지 왜곡 없이 투명하게 포착한다. 높은 비트 깊이(24bit) 덕분에 건반의 미세한 강약 조절과 게반트하우스 특유의 고풍스러운 잔향이 단단하고 밀도 높게 형성된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Bruckner – Symphony No. 9)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지휘 / 밤베르크 교향악단
거장 블롬슈테트가 생의 깊은 경지에 다다라 펼쳐 보이는 브루크너의 고백록으로, 성 플로리안 바실리카 대성당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숭고한 정신이 돋보인다. 완급 조절의 노련함 속에서 거대한 금관의 포효와 아다지오의 애절한 기도가 일체화되어 세속을 초월한 울림을 만든다. 4K UHD(HEVC) 영상과 결합된 FLAC 24bit 48kHz, 2채널 무손실 오디오는 미세한 피아니시모부터 웅장한 투티까지의 극단적인 다이내믹 레인지를 온전히 담아냈다. 넓은 대역폭이 성당 특유의 긴 잔향감을 뭉개짐 없이 깨끗하고 깊이 있는 음장으로 표출해낸다.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Orff – Carmina Burana)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 발렌시아 관현악단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의 명징한 지휘 아래 칼 오르프 특유의 원시적 리듬감과 원색적 음색이 강렬한 폭발력으로 분출되는 공연이다. 대규모 합창과 강력한 타악기 군이 빚어내는 역동적인 추진력이 무대의 열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음향은 FLAC 24bit 48kHz, 2채널 무손실 포맷을 기반으로 하여 충격적인 주파수 응답과 순간 과도 응답(Transient Response)을 원음 그대로 가감 없이 표현해낸다. 타악기의 날카로운 타격음과 대규모 합창의 순간적인 폭발음에서도 음의 찌그러짐(Clipping)이나 아티팩트 없이 투명하고 선명한 사운드 스테이지를 완성해낸다.

베토벤: 장엄미사 (Beethoven – Missa Solemnis)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시대연주 운동의 거장 아르농쿠르가 입힌 날카로운 원전 연주법의 고찰과 로열 콘서트헤보우의 격조 높은 음색이 만난 베토벤 탐구의 결정체다. 합창과 성악 솔로, 관현악이 빚어내는 극적 긴장감이 시대적 통찰을 통해 종교 음악을 넘어선 인간적 투쟁으로 다가온다. 음원 포맷은 AAC 323kbps, 5.1채널 손실 압축 방식을 취하고 있어 무손실 스테레오 포맷에 비해 고음역의 미세 해상도는 다소 타협되었으나 멀티 채널 음향의 이점을 극대화한다. 5.1채널 서라운드 배치를 통해 무대 위 솔리스트, 합창단, 오케스트라의 공간적 분리감 및 콘서트홀 전체를 감싸는 입체적인 몰입감을 효율적으로 구현해준다.

왜 우리는 클래식을 ‘보면서’ 들어야 하는가
클래식 음악 비디오나 지휘, 연주 영상을 볼 때 느껴지는 특유의 몰입감은 단순히 ‘눈으로 본다’는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선다. 팝이나 재즈와 비교했을 때 클래식 음악이 유독 ‘시각적 현장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이 장르가 지닌 구조적 특징과 미학적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영상을 통해 보면서 음악을 들을 때 얻는 장점은 무엇일까?

우선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실체화를 들 수 있다. 팝이나 재즈에서 밴드의 합주는 연주자 간의 호흡과 리듬감(groove)으로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그러나 100여 명의 연주자가 얽혀 있는 대형 오케스트라에서 거대한 소리의 질서를 창조하는 것은 오직 지휘자의 신체 언어다. 지휘자의 정교한 손짓, 순간적인 눈빛, 템포를 밀고 당기는 몸짓은 오디오 신호로는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음악의 설계도’를 눈앞에 드러낸다. 카라얀처럼 눈을 감고 소리의 형태를 조각하는 지휘자나, 온몸을 던져 음표를 짜내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지휘 모습은 그 자체로 소리가 물리적 형태로 변환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두 번째는 거대한 스케일과 물리적 연주의 서사성에 있다. 클래식 음악은 악기 하나하나가 지닌 물리적 울림이 모여 거대한 파도를 이루는 예술이다. 음향적 배치만 보아도 제1바이올린에서 목관, 금관, 그리고 튜바와 타악기 섹션으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물리적 배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각적 건축물이다. 연주법의 시각화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바이올린 파트의 활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압도적인 통일성,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피아니시모(pp)에서 포르티시모(ff)로 이행할 때의 긴장감은 소리의 강약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킨다.

악보 너머의 생명력, 그리고 심포니 프리미엄
클래식은 완벽히 기호화된 악보를 극단적인 훈련을 통해 재현하는 음악이다. 악보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연주자가 순간적으로 내비치는 호흡,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 팽팽한 긴장감 속에 피어나는 눈빛의 교감은 음악이 단순한 기계적 재생이 아닌 인간의 격렬한 노동이자 생명력의 발현임을 증명한다. 클래식 음악의 영상물은 청각적 감상을 방해하는 덤이 아니다. 소리라는 추상적인 에너지가 인간의 신체와 악기라는 물질을 거쳐 현실로 구현되는 ‘물리적 과정에 대한 완벽한 기록’이다. 이것이 우리가 클래식을 들을 때 종종 눈을 떠 연주자의 모습을 찾게 되는 이유다. 심포니 프리미엄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심포니 프리미엄은 전례 없는 하이엔드 영상 스트리밍을 구현해냈다. 이젠 음악 마니아들이 답할 차례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